[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31년 만이다. 전두환정권 시절 부랑아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설립된 형제복지원에선 끔찍한 인권유린이 발생했다. 공식 사망자 수만 513명. 생존자 한종선씨는 “피해 생존자들의 억울함과 한을 풀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져 달라”고 당부했다. 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피해자들을 위한 배상과 보상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전망이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마침표가 찍힐 수 있을까.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조’서부터 시작됐다. 형제복지원은 1987년까지 운영됐는데 공식 사망자만 500명을 넘어섰다. 감금된 사람은 3500여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사망자와 감금된 사람의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증언한다.
총장의 눈물
지난 9월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비상상고를 권고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찰개혁위의 권고를 수용해 비상상고를 청구했다. 지난 10월엔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정부와 검찰의 사과를 권고했다.
문 총장은 눈물로 사죄했다. 문 총장은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났다. 문 총장은 “과거 정부가 법률에 근거 없이 내무부 훈령을 만들고,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국가공권력을 동원해 국민을 형제복지원 시설에 감금했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과문을 읽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문 총장의 사과를 환영하면서도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통과'를 요구했다. 피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왜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피해자는 “50m 근처에 있는 여인숙이 집이라고 해도 경찰은 보내주기는커녕 차 안에서 감금하고 구타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부산에 있는 오빠 집에 놀러갔다가 경찰에 끌려가 형제복지원에 입소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국회에선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충분한 보상을 명시한 법안이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현 여성가족부장관) 등 73명의 의원은 지난 2016년 7월 ‘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법률안’을 발의했다.
형제복지원 관련 특별법은 지난 19대 국회서도 발의된 바 있는데 이 역시도 진 의원이 앞장섰다. 진 의원 등 55명의 의원은 2014년 3월24일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명은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으로 진상규명과 적절한 보상이 골자였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철회됐다.
당시 해당 법률의 상임위는 보건복지위원회로 결정됐다. 그 연유로 사건의 진상규명보다 피해자 보상을 중심으로 사건이 일단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형제복지원은 당시 내무부 훈령에 따라 설립된 시설이다. 따라서 해당 부처인 안전행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법안은 같은 해 7월15일 재발의됐다. 상임위는 보건복지위서 안전행정위원회로 변경됐다.
법안명은 ‘내무부 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 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 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으로 수정됐다. 부산 이외 지역 수용소의 진상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진 의원 등 54명의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법안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현재 계류 중인 형제복지원 법안은 문 총장의 사과와 함께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31년 만의 사과, 특별법 통과 시급
정상생활 어려워 “충분히 보상해야”
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주목되는 건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문 총장과 만난 자리서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한 피해자는 “8∼9년 가까이 잡혀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찾다 돌아가셨고 가정은 파괴됐다”며 “치료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피해자는 “사과는 감사하지만 사과받을 준비가 안 돼있다”며 “내 인생과 가족이 망가졌고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동생은 자살했다. 살아보려고 수많은 노력을 했지만 트라우마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밖에도 당시의 충격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피해자와 유족들은 상당수이다. 사건의 진상규명만큼 피해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필요한 이유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향후 5년간(2018∼2022년) 제정안에 따른 추가 재정소요는 148억1400만원이다. 위원회 및 사무국 등 설치·운영에 28억7400만원, 사망보조금에 119억4000만원이 소요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위원회 및 사무국 등 설치 운영은 제정안의 제3조·제5조·제7조에 근간을 뒀다.
3조는 형제복지원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설치다. 제정안에 따르면 위원회는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자료 수집 및 분석에 관한 사항과 조사대상 선정 및 조사개시 결정, 피해자 및 유족의 심사·결정, 보상금 등을 심의·의결하게 된다. 제5조는 소위원회 구성이다. 소위원회는 진상규명 등 위원회 업무의 일부를 수행하게 된다. 제7조는 사무국의 설치로 위원회의 사무를 처리하게 된다.
사망보조금은 제정안의 제23조(보상금)에 해당한다. 피해자와 유족의 피해 정도 등을 고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게 된다. 생활 정도를 고려해 보상금을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다만 국회예산처는 위원회와 사무국, 사망보상금에 국한해 소요 예산을 예측했다.
충분한 보상?
해당 제정안의 소관위인 안전행정위원회의 심사정보에 따르면 “제정안에 따른 주된 재정 수반 요인으로는 위원회 등의 설치 운영, 보상금 지급,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 지급, 피해자 주거복지시설 및 의료복지시설 설치, 기념사업의 실시가 있다”고 밝혔다. 또 “국회예산처가 예상한 바에 따르면 위원회 및 사무국 등을 설치·운영하고 사망 피해자의 유족에게 사망보상금을 지급하는 경우, 2018년 28억3500만원을 비롯해 향후 5년간 총 148억1400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