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연말인데…’ 마음 급한 야3당 속사정

'손에 든 패' 모두가 알고 있는데…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야3당의 마음이 급하다. 선거제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거대 양당은 소극적이다. 공식 논의기구인 정개특위 활동기한은 이번 달 종료된다. 야3당이 현행 선거제로 총선을 치른다면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선거제 개편 여부에 따라 정계개편이 시작될 공산이 크다. 때맞춰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일각에선 당의 존폐를 언급하기도 한다.
 

▲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촉구 집회 갖는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원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과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정의당은 선거제 개혁에 가장 적극적이다. 각 당의 수장들이 전면에 나섰다. 바미당 손학규 대표와 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선거제 개혁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의당 역시 일관된 주장을 펼쳤다. 야3당은 지난 10월부터 공조 체제를 본격적으로 구성했다. 이들은 선거제 개혁을 위한 공동기자회견과 행사에 참여, 군불을 지폈다. 최근 야3당은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거세게 압박하며 선거제 이슈를 중앙에 안착시켰다.

선거 개혁
중앙 이슈

야3당이 선거제 개혁에 적극적인 까닭은 다가오는 2020년 총선과 맞닿아 있다. 현행 선거제로 총선을 치르는 건 야3당 모두에게 부담이다. 최근까지의 정당 지지율은 차기 총선 이후 바미당과 평화당의 존립 가능성에 물음표를 찍게 한다. 정의당은 한때 한국당을 제치고 창당 이래 지지율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교섭단체 형성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19∼23일 진행하고 23일 발표한 주간통계표에 따르면 바미당의 지지율은 6.0%, 평화당은 2.2%를 기록했다. 정의당은 8.8%였다. 바미당은 전 주 대비 0.2%p 소폭 상승했고, 평화당과 정의당은 각각 0.2%p, 0.6%p씩 소폭 하락했다. 민주당이 39.2%, 한국당이 22.9%를 기록한 데 비해 상당히 낮은 수치다. 현행 소선거구제로 21대 총선이 실시된다면 양당 체제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2505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응답률은 7.9%다. 이번 조사는 무선 전화면접(10%),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방법과 무선(80%)·유선(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됐다. 통계보정은 2018년 7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기준으로 성, 연령, 권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2.0%p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야3당은 지난달 25일 국회 정론관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했다. 이날 바미당에선 손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 평화당에선 정 대표와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에선 이 대표와 추혜선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참석했다. 사실상 각 당 투톱이 모두 전면에 나선 셈이다.

야3당 투톱들은 “정기국회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완수할 것”이라며 “민주당과 한국당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공표했다. 이어 “민주당과 한국당의 결단만 있다면 내일이라도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가 선거제도 합의안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거제 타령…정개특위 종료 임박
권역별-연동형 여야 치열한 기싸움

이들이 주장하는 선거제 개혁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 수를 배분하는 제도다. 득표율에 비해 지역구 의석이 적다면 비례대표로 나머지 의석을 채우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정당이 정당득표율 10%를 기록했다면 총 10석의 의석을 가져간다. 해당 정당이 지역구서 1석을 가져갔다면 나머지 9석은 비례대표로 채워야 한다. 야3당은 이를 ‘민심 그대로의 선거’라고 주장한다. 사표를 방지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제도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면 소수정당의 의석 수는 가시적으로 증가한다. 반면 거대정당의 의석 수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소극적인 까닭이다.

민주당의 경우 현행 소선거구제가 유리하다.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여타 정당에 비해 압도적이다. 민주당이 현행 선거제로 총선을 치른다면 과반의석 확보가 가능하다. 반면 야3당이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차기 총선서 실시될 경우 과반의석 확보는 어려워진다.
 

▲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야3당은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담판’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날 공동기자회견서 “문 대통령에게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대통령과 5당 대표의 담판회동’을 긴급 요청한다”며 압박했다. 야3당이 대통령을 지목한 것은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기인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약속했다.

민·한 소극적
“대통령 나와라”

권역별 비례대표제란 비례대표 후보를 권역별로 배정해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15년 2월 국회에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 중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따르면 ▲서울 ▲인천·경기·강원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북·전남·제주 ▲대전·세종·충북·충남 등 전국을 6개 권역으로 인구 비례에 따라 나눈다. 이후 각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누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권역을 나누지 않고 순수한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 수를 배분하는 것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서 “그동안 민주당 공약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것은 연계시킨다는 뜻이지 독자적인 하나의 법칙을 갖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가 대통령 국정과제서도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고 했고, 20대 총선서도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도입한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정의당은 즉각 반발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야당들의 주장은 다른 것이 아니다”라며 “득표율과 의석 수가 일치하는 선거제도 도입을 통해 민의를 정확히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변인은 “가장 합당한 선거제도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기초로 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덧붙였다. 

당 대표 취임 이후 연일 선거제 개혁을 내걸고 있는 정 대표 역시 날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중앙선관위가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국회에 제안했을 때 환호했던 정당이 바로 민주당”이라며 “이를 말을 바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하면서 중앙선관위 제출안과 민주당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국민 기만”이라고 쏘아붙였다.   

정 대표는 지난달 27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여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정 대표는 “지난 9월19일 문 대통령의 능라도 연설 이후 호텔로 돌아와 (민주당)이 대표와 (정의당)이 대표와 함께 셋이 평양소주를 한잔했다”며 “그때 (민주당) 이 대표가 ‘선거제도를 바꾸면 우리가 의석을 많이 손해 본다. 하지만 한국사회 개혁을 위해서 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이제 와서 당내서 반발이 있고 계산해보니 좀 손해 본다고 말을 바꾸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야권이 여당을 압박하면서 사실상 문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언급을 요구한 셈이다. 여야 간 선거제 공방이 치열하던 당시 문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참석 차 출국한 상태였다. 문 대통령이 귀국 이후 따로 입장을 발표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한국당 역시 민주당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6일 기자들과 만나 ‘선거제 개편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우리는 우리대로 안을 내겠지만 여당도 확고한 안을 내줘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여당도 분명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며 한 발 물러섰다.


한국당 일각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중대선거구제를 주목한다. 중대선거구제란 한 선거구에 2∼4인의 대표를 뽑는 것을 뜻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서 1위를 확신하기 어렵지만 2위는 확신할 수 있다는 속내”라며 “어떻게든 국회의원 자리를 지켜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행에 따른 의원정수 확대 문제도 복병이다. 여론은 비례성을 확대하는 선거제 개편에는 찬성하지만 국회의원 정수 증원에는 반대 입장이 분명하다.

비례성 확대에 따라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득표율만큼 의석 수를 가져가기 때문에 현행 300석을 넘게 된다. 문제는 여론이다. 여당은 선거제 개혁에 따른 국회의원 증원으로 여론의 역풍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야당은 여론이 원하고 있는 선거제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야가 선거제 개혁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달 7일 진행해 같은 날 발표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국민여론’에 따르면 ‘비례성 확대’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찬성이 58.2%로 가장 높았다. 반대는 21.8%, 모름·무응답은 20.0%를 기록했다. 지역별로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전 지역서 찬성이 반대보다 높았다. 모든 연령대서도 마찬가지였다.

제각각 해석
갈등에 기름

다만 비례성 확대에 따른 국회의원 정수 확대엔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선거제도 개혁 목적’ ‘세비·특권 대폭 감축’이란 전제가 붙었지만 반감은 가시적이었다. 찬성은 34.1%를 기록한 반면 반대는 59.9%였다. 모름·무응답은 6.0%에 불과했다. 지역별 조사에서도 반대가 찬성보다 많았다. 다만 서울의 경우는 찬성 43.4%에 반대 43.5%로 팽팽했다. 연령대별 조사 역시 반대가 찬성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30대의 경우, 찬성 44.7%에 반대 44.8%였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502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응답률은 6.8%다. 이번 조사는 무선(80%)·유선(20%) 자동응답 방식과 무선(80%)·유선(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됐다. 통계보정은 지난 7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기준 성별, 연령, 권역별 사후 가중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 ±4.4%p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기득권 양당 문제를 제기하며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는 야3당 대표 및 의원들

선거제 개혁을 논의 중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는 감감무소식이다. 정개특위 소속 위원들의 당론이 반영되는 만큼 여야의 입장차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개특위는 민주당 8명, 한국당 6명, 바른미래당과 비교섭단체가 각각 2명으로 구성됐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반대한다면 합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정개특위의 시한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활동기한은 이번 달 말까지다. 공식 기구의 활동이 이번 달 종료돼 선거제 개혁의 바퀴 한쪽이 빠지게 되는 셈이다. 

급기야 야3당은 벼랑 끝 전술을 펼치기도 했다. 야3당은 선거제 개혁과 예산안 처리 연계를 시사하며 여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여당이 크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대치 국면이 형성되기도 했다. 

거대 양당 소극적 태도에 예산안 무리수
이대로 총선 치른다면…정계개편 가동? 

야3당의 공동기자회견이 있던 날 장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야3당이 빠지고 151석을 채울 방법을 찾을 수 있겠느냐”며 “예산안이 정부·여당이 원하는 대로 처리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예산안 합의 불발 시 본회의 직권상정을 위해선 의석 과반수가 필요하다. 장 원내대표는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민주당은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다음 날 “예산은 헌법에 정해진 법정 기한이 있는 것이고, 선거법은 각 당의 내부적 논의나 국민적 의견을 수렴하는 여러 가지 절차가 있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여야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야3당 입장서 선거구제 개편은 상당히 절실하고 절박하다. 예산안과 연계한 심의가 무리한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온도차를 보였다.

선거제 개편이 무산된다면 국회 안에선 제각각 ‘정치셈법’을 따질 전망이다. 현행 소선거구제로 2020년 총선을 맞이한다면 정계개편이 불가피하다는 해석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선거제 개혁 불발 시 바미당과 평화당 소속 의원들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바미당은 당내 노선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일례로 손 대표와 바미당 이언주 의원은 ‘정체성’을 두고 공개적으로 한 차례 설전을 치렀다. 평화당에선 소속 의원들의 탈당설이 불거진 바 있다. 김경진·이용주 의원이 그 중심에 있다. 이 의원은 선거제 개편 여부에 따라 탈당 논의가 가시화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의원에 따르면 김 의원 역시 같은 맥락인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제 개편 무산 시 야3당은 저조한 지지율로 총선을 치러야 한다. 바미당과 평화당은 창당 이후 지방선거만 한 차례 치렀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본선으로 여겨지는 총선서 바미당과 평화당이 현재의 의석 수를 유지할 가능성은 가시적이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선거제-예산
연동 시사도

바미당은 현재 야3당 중 유일한 원내 교섭단체다. 그러나 21대 총선 이후 바미당의 교섭단체 유지 가능성은 다소 낮을 전망이다. ‘호남 정당’인 평화당도 차기 총선서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13지방선거서 호남은 평화당이 아닌 민주당을 택했다. 정의당 역시 현행 선거구제로 교섭단체 지위를 획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선거제 개혁에 사활을 거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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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