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경제사령탑 ‘홍&김’ 궁합 보니…

닮은 듯 다른 ‘왕실장’과 ‘예스맨’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투톱의 시대가 지고 원팀의 시대가 올까. ‘경제 투톱’ 김동연·장하성 1기 경제팀은 잇단 불협화음을 노출한 끝에 경질됐다. 새로운 2기 홍남기·김수현 팀은 ‘원팀’을 강조했다. 전임 경제팀서 비롯된 엇박자 논란을 의식, 우려를 일찌감치 차단한 셈이다. 여느 때보다 두 사람의 합이 주목을 받고 있다. ‘홍&김’은 낙관론과 비관론을 동시에 받고 있다.
 

▲ 신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내정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동시에 경질했다. 문 대통령은 김 장관과 장 실장의 후임으로 각각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김수현 사회수석을 내정했다. 경제사령탑이 예산정국서 전격 교체된 것이다. 내년도 예산심사가 국회서 진행 중이었다.

교체설 돌다
결국 아웃!

김동연·장하성 경제팀이 동시에 경질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그간 교체설은 번번이 제기됐다. 다만 문 대통령의 결정은 예상됐던 시기보다 앞섰다. 결국 문 대통령의 의지로 해석됐다.

문재인정부는 경제 분야서 좀처럼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을 교체했다. 지난 8월에는 김동연·장하성 경제팀에게 “완벽한 팀워크”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결과에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문정부는 경제 성장 둔화 등 악재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선 경제정책 전환을 주장했다. ‘경제 참사’라는 표현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문 대통령은 3대 경제정책(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을 내려놓지 않았다. 특히 소득주도성장에 있어서 물러서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은 문정부의 경제정책 중 가장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경제팀의 불협화음이었는데 문 대통령은 경제정책에 강한 확신을 보였다. 경제팀은 반대로 마찰을 빚어 논란을 낳았다. 김동연·장하성 경제팀은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으로 지난 5월에 처음으로 부딪혔다.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으나 장 전 실장은 반대였다.

‘고용 참사’를 두고도 엇갈렸다. 김 부총리는 경제 정책 수정의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장 전 실장은 고용상황의 개선을 확신했다.

‘김 부총리 패싱 논란’은 결정적이었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권한을 기재부 장관에게 줬기에 경제부총리라고 한다. 경제컨트롤타워는 경제부총리에게 있다”고 진화에 나섰다.

김 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에 회의적이었다. 반면 장 전 실장은 제일 잘 한 일로 소득주도성장을 꼽았다. 최근엔 경제 전망을 두고 정반대의 입장을 보였다.

김동연·장하성 경제팀의 파열음은 짙어졌다. 경제적 성과가 없는 상황이었다. 문 대통령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경제팀을 경질했다. 투톱 체제의 김동연·장하선 경제팀은 저성장 국면서 경제 정책에 대한 불협화음으로 교체됐다.

예산정국서 경제 투톱 김&장 경질
전임들의 엇박자 의식…원팀 강조

후임으로 내정된 2기 경제팀은 ‘원팀’과 ‘경제 정책지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후보자와 김수현 신임 정책실장은 지난 9일 내정됐다. ‘김&장’ 경질과 같은 날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원팀을 강조했다.

윤 수석은 이날 이들의 임명을 발표하면서 “두 분은 참여정부시절 청와대서 3년,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사회수석과 국조실장으로 지금까지 정무적 판단과 정책조율을 성공적으로 해왔다”며 “원팀으로써 호흡을 맞춰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동연·장하성 경제팀처럼 마찰은 없을 것이란 해석이다.
 

▲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

홍 후보자와 김 실장도 이를 의식한 듯 했다. 홍 후보자는 내정된 날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서 기자들과 만났다. 홍 후보자는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이 1기 팀으로서 잘 해왔는데 외부에 의견이 다른 게 많이 표출되면서 문제가 지적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경제에 대해서는 경제부총리가 중심이 돼 끌고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 후보자는 “경제정책은 경제 부총리가 중심이 돼 경제팀을 ‘원팀’으로 이끌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실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실장은 홍 후보자에게 힘을 실어줬다. 김 실장은 “경제부총리의 활동을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더 이상 ‘투톱’ 같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의 ‘패싱 논란’을 짚은 것이다.

홍 후보자와 김 실장의 호흡은 전임 경제팀보다 기대할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 후보자는 내정된 날 “김 실장을 개인적으로 잘 안다”며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둘은 지난 노무현정부 때부터 오늘날 문정부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홍 후보자와 김 실장은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서 함께 근무했다. 홍 후보자는 경제수석실 행정관을, 김 실장은 국정과제비서관을 역임했다. 문정부 들어서 홍 후보자와 김 실장은 각각 국조실장과 사회수석을 지냈다.

“우린 하나”
한 목소리

홍 후보자와 김 실장은 정책 이견 우려에 대해서도 “소득주도 성장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홍 후보자는 지난 9일 “소득주도 성장은 논쟁하기보다 우선 추진하되 문제가 발생하면 조정하거나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실장도 지난 11일 춘추관 브리핑서 문정부의 3대 경제정책에 대해 “분리할 수 없이 묶인 패키지”라고 아예 못을 박았다. 김 실장은 “속도와 성과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의 방향은 전혀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경제 진단에 대해서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홍 후보자는 지난 9일 “올해 어려움이 내년에 금방 개선되지 않고 상당 부분 힘들 수 있지만 지금의 경기 상황을 ‘침체’ ‘위기’라고 말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경제는 심리’라는 말을 각인하고 가능한 희망적 관점서 접근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 역시 “경제 하방압력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여러 제반 대외환경도 불확실성이 누적되는 것 또한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위기냐 아니냐’ 말하는 건 적절치 않고, ‘경제 기초가 튼튼하다, 아니다’는 등의 논쟁을 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맥을 같이 했다.

홍 후보자와 김 실장은 김동연·장하성 경제팀이 보인 불협화음을 의식, 발생할 수 있는 우려에 대해 대부분 언급한 셈이다.

한편 일각에선 홍 후보자와 김 실장이 강조한 ‘원팀’이 제대로 운영될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걸어온 길과 현재의 위치 그리고 환경 등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서 현안 간담회 직후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홍 후보자는 ‘성실하고 일 잘하는 공무원’이란 평을 받는다. 홍 후보자의 성실함은 정평이 나 있다. 홍 후보자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인해 정권을 가리지 않고 기용됐다. 정치색이 옅은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는 노무현정부와 박근혜정부에선 청와대서 근무했다. 홍 후보자는 박근혜정부 당시 정책조정수석비서관실 기획비서관과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을 역임했다. 이명박정부에선 기재부 대변인과 기재부 정책조정국 국장을 맡았다. 

결국 홍 후보자의 성실함과 옅은 정치색은 ‘시키면 잘 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홍 후보자를 두고 ‘예스맨’이란 표현이 나오는 까닭이다. 


반면 김 실장은 홍 후보자와 결이 다르다. 김 실장은 노무현정부와 문정부서 중용돼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담당했다. 김 실장은 지난 2005년 노무현정부 당시 ‘세금폭탄’ 논란으로 이어진 종합부동산세를 확대한 장본인이다.

잘 맞을까?
기대와 우려

김 실장은 문재인정부 사회수석 시절 신고리 원전 건설 중단과 대입제도 개편, 부동산 정책 등 핵심 현안을 맡았다. 김 실장은 당시 ‘왕수석’이라고 불렸던 이유다. 김 실장은 신임 정책실장으로 내정되면서 청와대 장악력은 더욱 높아졌다. 김 실장은 문 대통령의 대선서 정책 공약 등을 구상해내기도 했다. 김 실장의 청와대 장악력이 장 전 실장보다 강력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결국 김 실장의 영향력이 가시적인 가운데 홍 후보자가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된다. 정책실장의 강력한 영향력 행사는 김 부총리의 과거를 답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선을 긋는 모양새다. 홍 후보자가 일선서 뛰는 역할을 수행하고 김 실장이 전체적인 그림을 조율한다는 것이다. 

홍 후보자가 청와대 참모와 장관들을 지휘할 수 있을지도 주목할만하다. 홍 후보자가 이끌어갈 청와대 관료 중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윤종원 경제수석비서관은 행시기수로 홍 후보자보다 선배다. 통상 경제부총리가 경제 관료보다 선배지만 홍 후보자의 경우는 다르다. 

특히 김 실장은 윤 수석에게 힘을 실어줄 예정인 만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실장은 “경제수석이 내각과 좀 더 소통하고 협의할 수 있도록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며 “현안은 현안대로 각 수석이 챙기고, 정책실장은 미래를 위한 성장과 혁신 과제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경제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홍 후보자와 김 실장 간 미묘한 신경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물론 홍 후보자의 업무 스타일에 따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홍 후보자는 팀워크, 협의 등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홍남기 신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홍 후보자가 장관을 어떻게 지휘할 수 았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홍 후보자의 지휘를 받게 될 정치인 장관들 역시 정부 내 영향력이 상당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장관, 홍종학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대표적이다.

김 실장의 경제 분야 전문성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홍 후보자에 비해 김 실장은 경제 전문가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연유로 일각에선 홍 후보자와 김 부총리의 공감대 형성이 다소 어려울 것으로 본다.

오랜 시간 한솥밥 “개인적으로 잘 안다”
말 잘 듣는 홍·영향력 강한 김…호흡은?

김 실장은 문 대통령이 지난 시정연설서 언급한 ‘포용국가’를 사실상 진두지휘하게 된다. 포용국가의 틀 안에서 경제정책은 영향을 받을 공산이 크다. 경제를 총괄하게 될 홍 후보자와 정부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릴 김 실장 간 협의가 어떻게 이뤄질지 주목된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는 시각과 관련, “제가 경제전문가가 아니라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다. 다만 경제학을 했다 안 했다 식의 논의는 부적절하다”며 “청와대에도 경제수석, 일자리수석, 등 경제전문가들이 있다. 저는 이분들이 과감하게 내각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뒷받침하면서 전체 국정과제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우려하는 분들에게는 걱정을 더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동연·장하성 경제팀에 이어 홍 후보자와 김 실장이 내정된 것을 두고 야당의 반발이 거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야당은 홍남기·김수현 경제팀에 대해 정반대의 평가를 내렸다.

지난 11일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홍남기·김수현 경제팀을 향해 “경제가 짙은 먹구름 상황에서 문재인정부는 국면 전환 능력이 매우 의심스러운 2기 경제팀을 국민들께 내놓았다”며 포문을 열었다.

윤 대변인은 홍 후보자에 대해 “노무현정부 청와대서 문 대통령과 일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를 보좌했다. 또 임종석 비서실장의 대학동문으로서 현 정권 핵심들과 밀접한 관계”라며 코드인사 비판을 이어갔다. 김 실장에 대해선 “도시공학 전공자로서 경제에 문외한이고, 경제 전반을 거시적으로 총괄하는 식견도 능력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같은 날 홍 후보자와 김 실장이 내정된 것에 대해 “걱정스럽다. 안쓰럽다”며 자신의 SNS 페이스북에 글을 게재했다. 손 대표는 “대통령이 남의 말 안 듣기로 유명하다는 말이 근거 없는 말이기를 바랐는데, 이번 인사를 보면 대통령의 고집이 대단한 것 같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도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지난 9일 “경제부총리와 정책실장 경질은 예산정국 한 가운데에 있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하다”며 “두 사람 간의 갈등이 교체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개운치 못하다”고 밝혔다.
 

▲ 물 들이키는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

반면 정의당은 2기 경제팀에 대해 반기는 모양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같은 날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이를 튼튼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적임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최 대변인은 “정의당은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를 통해 개혁의 적임자인지 꼼꼼하게 검증할 것”이라며 송곳검증을 예고했다.

홍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11월 말로 예상됐다. 그러나 민주당은 속도조절에 나섰다. 민주당은 홍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내년도 예산안 처리 이후 열기로 했다. 시기는 12월 초다.

통상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 대상자를 지명하고 2∼3일 안에 인사청문요청안을 국회로 보낸다. 국회는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요청안을 접수한 날부터 20일 안에 인사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이후 국회는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 대통령에게 송부한다. 따라서 홍남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예산심사 법정기한인 오는 12월2일 이전에 열린다. 민주당은 그 이후 청문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청문회 두고
여야 기싸움

기존대로라면 예산정국이 펼쳐지면서 인사청문회가 진행된다. 민주당은 시기를 미뤄 야권의 ‘청문회-예산안 연계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야권이 홍 후보자의 청문회 과정서 불거질 수 있는 도덕성, 자질 논란 등을 예산안과 연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야권은 “정치적 속셈”이라며 불쾌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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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