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재판부’ 대법원장의 책임론과 역할론

내 식구 감쌀 수도…남 식구 들일 수도…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사법 농단 사태가 ‘특별재판부’ 설치로 수렴하는 모양새다. 특별재판부는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와 90%에 달하는 법원의 기각률이 충돌하면서 제기됐다. 특별재판부 도입은 정당성 여부를 떠나 법원 스스로 자초했다는 비판과 함께했다. 이를 바라보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속내는 복잡하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 개혁과 사법권 독립의 기로에 서 있다.
 

홍영표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촉발된 사법 농단 사태는 특별재판부 설치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법부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사법부의 신뢰가 추락한 까닭은 법원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검찰은 전·현직 법관들을 상대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했지만 검찰의 압수수색과 구속영장은 연거푸 기각됐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특별재판부 설치가 거론됐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현재 사법 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관련자 가운데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람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뿐이다. 검찰이 사법 농단 수사에 착수한 지 넉 달 만이었다. 임 전 차장은 사법 농단 사태의 ‘키맨’으로 통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임 전 차장은 윗선의 지시에 따라 사법 농단 행위를 실무차원서 총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에 양 전 대법원장과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 전직 행정처장들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사법부 윗선 라인의 조직적 개입 여부가 임 전 차장을 통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구속된 임 전 차장과 달리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고위층을 향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그간 법원은 사법 농단 의혹과 관련된 영장에 대해 ‘줄기각’ 행태를 보였다. 일례로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압수수색 영장을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를 들어 기각하기도 했다.


특별재판부 설치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다만 특별재판부 설치는 입법사항이고 국회를 통과해야 특별재판부가 구성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그리고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특별재판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특별재판부 설치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지난달 25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재판부 도입을 촉구했다.

이날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은 “초유의 사법 농단 사태를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 개입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사법 농단 수사 진행경과를 보면 법원이 과연 수사에 협조하고 사법 농단의 진실을 밝힐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반문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여야 4당 도입 추진 ‘급물살’
개혁이냐 독립이냐 ‘딜레마’

4당 원내대표들은 “국회가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헌법과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당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당에 요청한다. 이번 정기국회서 특별재판부 설치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동참해주시기를 촉구한다”며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당은 특별재판부 설립은 사법권 독립을 훼손시킨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8일 “사건을 담당할 법관 중 동 사건의 피의자 또는 피해자가 있고 사법부의 신뢰가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합리적 의심’만으로 삼권분립을 와해하고 사법부 독립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한국당이 ‘사건 담당 법관 중 사건의 피의자 또는 피해자가 있다’고 밝힌 대목은 주목할만하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사법 농단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판사들이 사법 농단 사건을 관할할 가능성이 높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7개 재판부 중 5개 재판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이미 박 의원은 지난 8월 특별재판부 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지난달 30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사법 농단과 관련된 수사나 조사를 받은 판사들이 80∼130명”이라며 “사법 농단 관련 사건이 기소되면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서 담당하는데 그중 (관련자가)상당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사건을) 무작위 배당하면 관련자에게 사건이 배당된다. 예를 들어 지금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있는 형사부 중에 이런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7개 부가 있는데 그 7개 부 중 5개 부의 부장판사나 배석판사가 이 사건과 관련돼 조사를 받은 피의자거나 조사 대상자였다. 배당을 하게 되면 (확률로)7분의 5”라고 말했다.

기로에 서다
복잡한 속사정

이 같은 배경서 박 의원은 ‘법관 탄핵’까지 주장했다. 박 의원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 농단 의혹에 연루된 법관 6명의 탄핵을 주장했다. 박 의원은 “사법 농단과 관련된 재판관 다수가 사법부에 있는 상황서 사법부의 개혁이나 사법 농단 사건 심리 등 제대로 된 법원의 작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역시 법관 탄핵에 동참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당 소속 의원 5명 전원은 사법 농단 사태에 책임 있는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법관의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탄핵소추안 발의는 의석수 100석이 필요하므로 민주당(129석)홀로 발의할 수 있다. 다만 민주당과 바미당 등은 법관 탄핵보다 특별재판부 도입을 우선적으로 논의할 방침이다.
 

▲ ▲김명수 대법원장

사법 농단 사태가 특별재판부 도입과 법관 탄핵 문제로 불거지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법원의 추락한 위신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9월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서 자성과 법원 개혁의 뜻을 피력했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진 시기 진행됐던 행사여서 김 대법원장의 입에 관심이 집중됐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사법부에 쌓여온 폐단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이러한 폐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 개혁을 이루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장으로서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다”면서도 “현 시점서도 사법행정 영역에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 스스로 사법개혁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연루 의혹 판사
사법 농단 관할?


그러나 사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입장은 달랐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달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사법 농단 수사 관련한 질의에 “원래 3~4개월 안에 수사를 마치는 게 목표였다”며 “관련 자료를 수집할 방법이 없어 수사가 지연되고 늘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문 총장은 “자료 제출이 늦어 진술에만 의존하는 수사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사법부 70주년 행사서 김 대법원장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졌느냐’는 한국당 주광덕 의원 질의에 대해선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수장이 법원의 행보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적극적인 인사 조치를 주장한다. 사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판사들에 대해 인사 조치를 단행, 불공정한 재판 가능성을 불식시키라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장의 인사 조치에 대해 ‘코드 인사’라는 또 다른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또한 대법원장 인사조치의 적절성 여부도 새로운 논란으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법원 내부의 갑론을박도 김 대법원장에겐 부담이다. 최근 정치권이 특별재판부 도입을 적극적으로 언급하자 법원 내부에선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특별재판부 도입으로 사법권 독립 침해가 우려되는 만큼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24일부터 전국 판사들을 대상으로 의견 청취에 나섰다. 사법 농단 사태를 비롯해 특별재판부 논의가 불거지자 법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내년 1월 법원 인사 전까지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칠 예정이다.

한편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사법권 독립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특별재판부 설립에 반대했다. 안 처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법사위 국감에 출석해 “특별재판부는 전례가 없는 일이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있어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여론-정치권-법원 내부 목소리 제각각
사법부 스스로 자초…법관 탄핵 주장도

안 처장은 “사건 배당이야말로 재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정인이 (재판부를)지정하는 것은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고도 부연했다. 현직 대법관이 사실상 특별재판부 도입에 제동을 건 것이다.

특별재판부 도입을 바라는 여론의 요구도 김 대법원장으로선 간과하기 어렵다.
 

▲ ▲김명수 대법원장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6일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도입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사법부 불신, 공정한 재판)’이 61.9%를 기록했다. 24.6%를 기록한 ‘반대(사법부 독립성 침해, 위헌 우려)’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모름/무응답’은 13.5%였다. 모든 연령대에서도 찬성이 반대보다 높았다. 연령별로 찬성 여론이 가장 높은 곳은 30대(찬성 73.9%, 반대 21.7%)였다. 뒤이어 40대(65.9%, 23.7%), 50대(60.5%, 23.0%), 20대(56.7%, 24.7%), 60대 이상(55.4%, 28.4%) 순이었다.

이번 여론조사는 리얼미터가 지난달 26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7273명에게 접촉해 502명이 응답, 6.9%의 응답률(응답률 제고 목적 표집틀 확정 후 미수신 조사대상 3회 콜백)을 나타냈다. 또한 무선(10%) 전화 면접 및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무선 전화(80%)와 유선 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 통계보정은 2018년 7월말 행정안전부 국가인구통계에 따른 성, 연령, 권역별 사후 가중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정치권서도 김 대법원장을 향한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국회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서 “공정한 재판이 어렵다는 합리적 기초에 기반해 특별재판부가 필요하다면 김 대법원장부터 하루빨리 사퇴시켜라”고 수위를 높였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대법원 국감서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으로부터 ‘용퇴’ 요구를 받기도 했다.

여론은?
찬성>반대

한편 김 대법원장은 지난 1일 대법원서 열린 ‘법조경력 5년 이상 신임 법관 임명식’서 사법부 위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국가든 사회든 위기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데 그 원인이 있다”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전체가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부의 영향이나 내부적 간섭서 벗어나 독립해 재판하라는 헌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법관 스스로 끊임없이 경계하고 노력해야 한다”며 “재판의 독립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법원의 과오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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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