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재판부’ 대법원장의 책임론과 역할론

내 식구 감쌀 수도…남 식구 들일 수도…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사법 농단 사태가 ‘특별재판부’ 설치로 수렴하는 모양새다. 특별재판부는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와 90%에 달하는 법원의 기각률이 충돌하면서 제기됐다. 특별재판부 도입은 정당성 여부를 떠나 법원 스스로 자초했다는 비판과 함께했다. 이를 바라보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속내는 복잡하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 개혁과 사법권 독립의 기로에 서 있다.
 

홍영표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촉발된 사법 농단 사태는 특별재판부 설치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법부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사법부의 신뢰가 추락한 까닭은 법원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검찰은 전·현직 법관들을 상대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했지만 검찰의 압수수색과 구속영장은 연거푸 기각됐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특별재판부 설치가 거론됐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현재 사법 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관련자 가운데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람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뿐이다. 검찰이 사법 농단 수사에 착수한 지 넉 달 만이었다. 임 전 차장은 사법 농단 사태의 ‘키맨’으로 통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임 전 차장은 윗선의 지시에 따라 사법 농단 행위를 실무차원서 총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에 양 전 대법원장과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 전직 행정처장들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사법부 윗선 라인의 조직적 개입 여부가 임 전 차장을 통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구속된 임 전 차장과 달리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고위층을 향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그간 법원은 사법 농단 의혹과 관련된 영장에 대해 ‘줄기각’ 행태를 보였다. 일례로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압수수색 영장을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를 들어 기각하기도 했다.


특별재판부 설치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다만 특별재판부 설치는 입법사항이고 국회를 통과해야 특별재판부가 구성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그리고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특별재판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특별재판부 설치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지난달 25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재판부 도입을 촉구했다.

이날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은 “초유의 사법 농단 사태를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 개입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사법 농단 수사 진행경과를 보면 법원이 과연 수사에 협조하고 사법 농단의 진실을 밝힐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반문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여야 4당 도입 추진 ‘급물살’
개혁이냐 독립이냐 ‘딜레마’

4당 원내대표들은 “국회가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헌법과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당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당에 요청한다. 이번 정기국회서 특별재판부 설치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동참해주시기를 촉구한다”며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당은 특별재판부 설립은 사법권 독립을 훼손시킨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8일 “사건을 담당할 법관 중 동 사건의 피의자 또는 피해자가 있고 사법부의 신뢰가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합리적 의심’만으로 삼권분립을 와해하고 사법부 독립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한국당이 ‘사건 담당 법관 중 사건의 피의자 또는 피해자가 있다’고 밝힌 대목은 주목할만하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사법 농단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판사들이 사법 농단 사건을 관할할 가능성이 높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7개 재판부 중 5개 재판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이미 박 의원은 지난 8월 특별재판부 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지난달 30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사법 농단과 관련된 수사나 조사를 받은 판사들이 80∼130명”이라며 “사법 농단 관련 사건이 기소되면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서 담당하는데 그중 (관련자가)상당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사건을) 무작위 배당하면 관련자에게 사건이 배당된다. 예를 들어 지금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있는 형사부 중에 이런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7개 부가 있는데 그 7개 부 중 5개 부의 부장판사나 배석판사가 이 사건과 관련돼 조사를 받은 피의자거나 조사 대상자였다. 배당을 하게 되면 (확률로)7분의 5”라고 말했다.

기로에 서다
복잡한 속사정

이 같은 배경서 박 의원은 ‘법관 탄핵’까지 주장했다. 박 의원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 농단 의혹에 연루된 법관 6명의 탄핵을 주장했다. 박 의원은 “사법 농단과 관련된 재판관 다수가 사법부에 있는 상황서 사법부의 개혁이나 사법 농단 사건 심리 등 제대로 된 법원의 작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역시 법관 탄핵에 동참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당 소속 의원 5명 전원은 사법 농단 사태에 책임 있는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법관의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탄핵소추안 발의는 의석수 100석이 필요하므로 민주당(129석)홀로 발의할 수 있다. 다만 민주당과 바미당 등은 법관 탄핵보다 특별재판부 도입을 우선적으로 논의할 방침이다.
 

▲ ▲김명수 대법원장

사법 농단 사태가 특별재판부 도입과 법관 탄핵 문제로 불거지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법원의 추락한 위신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9월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서 자성과 법원 개혁의 뜻을 피력했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진 시기 진행됐던 행사여서 김 대법원장의 입에 관심이 집중됐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사법부에 쌓여온 폐단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이러한 폐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 개혁을 이루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장으로서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다”면서도 “현 시점서도 사법행정 영역에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 스스로 사법개혁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연루 의혹 판사
사법 농단 관할?


그러나 사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입장은 달랐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달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사법 농단 수사 관련한 질의에 “원래 3~4개월 안에 수사를 마치는 게 목표였다”며 “관련 자료를 수집할 방법이 없어 수사가 지연되고 늘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문 총장은 “자료 제출이 늦어 진술에만 의존하는 수사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사법부 70주년 행사서 김 대법원장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졌느냐’는 한국당 주광덕 의원 질의에 대해선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수장이 법원의 행보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적극적인 인사 조치를 주장한다. 사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판사들에 대해 인사 조치를 단행, 불공정한 재판 가능성을 불식시키라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장의 인사 조치에 대해 ‘코드 인사’라는 또 다른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또한 대법원장 인사조치의 적절성 여부도 새로운 논란으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법원 내부의 갑론을박도 김 대법원장에겐 부담이다. 최근 정치권이 특별재판부 도입을 적극적으로 언급하자 법원 내부에선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특별재판부 도입으로 사법권 독립 침해가 우려되는 만큼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24일부터 전국 판사들을 대상으로 의견 청취에 나섰다. 사법 농단 사태를 비롯해 특별재판부 논의가 불거지자 법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내년 1월 법원 인사 전까지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칠 예정이다.

한편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사법권 독립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특별재판부 설립에 반대했다. 안 처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법사위 국감에 출석해 “특별재판부는 전례가 없는 일이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있어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여론-정치권-법원 내부 목소리 제각각
사법부 스스로 자초…법관 탄핵 주장도

안 처장은 “사건 배당이야말로 재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정인이 (재판부를)지정하는 것은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고도 부연했다. 현직 대법관이 사실상 특별재판부 도입에 제동을 건 것이다.

특별재판부 도입을 바라는 여론의 요구도 김 대법원장으로선 간과하기 어렵다.
 

▲ ▲김명수 대법원장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6일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도입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사법부 불신, 공정한 재판)’이 61.9%를 기록했다. 24.6%를 기록한 ‘반대(사법부 독립성 침해, 위헌 우려)’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모름/무응답’은 13.5%였다. 모든 연령대에서도 찬성이 반대보다 높았다. 연령별로 찬성 여론이 가장 높은 곳은 30대(찬성 73.9%, 반대 21.7%)였다. 뒤이어 40대(65.9%, 23.7%), 50대(60.5%, 23.0%), 20대(56.7%, 24.7%), 60대 이상(55.4%, 28.4%) 순이었다.

이번 여론조사는 리얼미터가 지난달 26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7273명에게 접촉해 502명이 응답, 6.9%의 응답률(응답률 제고 목적 표집틀 확정 후 미수신 조사대상 3회 콜백)을 나타냈다. 또한 무선(10%) 전화 면접 및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무선 전화(80%)와 유선 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 통계보정은 2018년 7월말 행정안전부 국가인구통계에 따른 성, 연령, 권역별 사후 가중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정치권서도 김 대법원장을 향한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국회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서 “공정한 재판이 어렵다는 합리적 기초에 기반해 특별재판부가 필요하다면 김 대법원장부터 하루빨리 사퇴시켜라”고 수위를 높였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대법원 국감서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으로부터 ‘용퇴’ 요구를 받기도 했다.

여론은?
찬성>반대

한편 김 대법원장은 지난 1일 대법원서 열린 ‘법조경력 5년 이상 신임 법관 임명식’서 사법부 위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국가든 사회든 위기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데 그 원인이 있다”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전체가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부의 영향이나 내부적 간섭서 벗어나 독립해 재판하라는 헌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법관 스스로 끊임없이 경계하고 노력해야 한다”며 “재판의 독립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법원의 과오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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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