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르까프'란 브랜드로 유명한 스포츠패션 전문기업 화승그룹은 지난달 기준 총 10개의 계열사(해외법인 제외)를 두고 있다. 이중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는 '화승네트웍스'다. 이 회사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대부분의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보통 수백억씩 거래
2006년 7월 설립된 화승네트웍스는 자동차부품 및 철강·IT·고무제품 등을 유통하는 상품 종합 도매업체다. 특히 고객기업에 배송·보관·유통가공 등 두 가지 이상 물류기능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3PL(3자 물류) 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다. 본사는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에 있다.
문제는 화승네트웍스의 자생력이다.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총매출의 80% 이상을 계열사에서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매년 수천억원의 고정 매출을 올리고 있다.
화승네트웍스는 지난해 매출 8280억원 가운데 6724억원(81%)을 계열사와의 거래로 올렸다. 화승네트웍스에 일거리를 준 '식구'들은 화승소재(2693억원)를 비롯해 화승인더스트리(907억원), 화승R&A(541억원), 화승T&C(330억원), 화승엑스윌(165억원), 화승(112억원), 화승비나(32억원), 화승공조(28억원) 등이다.
그룹 계열사가 10개란 점을 감안하면 거의 모두 달라붙은 셈이다. 여기에 베트남(886억원), 미국(419억원), 인도(205억원), 중국(62억원) 등 해외법인과의 거래로 올린 매출도 적지 않다.
2010년엔 더 심했다. 화승소재(1976억원), 화승인더스트리(790억원), 화승R&A(483억원), 화승비나(323억원), 화승T&C(125억원), 화승엑스윌(188억원), 화승(100억원), 화승공조(13억원) 등 계열사들이 총매출 6036억원 중 5527억원(92%)에 달하는 일감을 화승네트웍스에 몰아줬다. 물론 미국(842억원), 중국(208억원), 인도(146억원), 베트남(53억원) 등 해외법인들도 빠지지 않았다.
화승네트웍스의 내부거래액은 설립 이후 매년 증가해 왔다. 이 회사의 계열사 매출 금액은 ▲2006년 160억원(총매출 192억원-내부거래율 83%) ▲2007년 1395억원(1647억원-85%) ▲2008년 1914억원(2844억원-67%) ▲2009년 3136억원(3564억원-88%)으로 나타났다.
화승네트웍스는 계열사들이 '힘'을 실어준 결과 단기간 정상궤도에 안착한 것은 물론 몸집도 크게 불릴 수 있었다. 순이익은 2009년과 2010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다 지난해 40억원의 흑자를 냈다. 영업이익은 2010년과 지난해 각각 200억원을 올렸다.
매출 80% 이상 계열 물량 "작년 6700억 거래"
오너 장남이 대주주…설립 5년만에 몸집 10배↑
총자산은 설립 첫 해인 2006년 199억원에서 지난해 2664억원으로 불과 5년 만에 13배 이상 불었다. 같은 기간 55억원이던 총자본은 551억원으로 10배 가량 늘었다. 그동안 경기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화승네트웍스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황태자'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화승네트웍스는 화승소재(30.5%·158만5617주)에 이어 현지호 화승그룹 총괄 부회장이 지분 27.8%(144만3150주)를 소유한 대주주다. 나머지는 화승T&C(17.7%·91만8950주), 화승엑스윌 (17.7%·91만8950주), 화승(6.4%·33만3333주)등 계열사가 나눠 갖고 있다.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의 장남 현 총괄 부회장은 미국 베이츠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화승에 입사해 화승 이사, 화승R&A 부사장, 그룹 부회장 등을 거쳐 지난해 1월 총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차남 현석호 화승그룹 부회장은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97년 화승T&C에 입사, 화승인더스트리 이사와 화승인더스트리 부사장 등을 역임한 뒤 형이 맡았던 그룹 부회장직을 수행 중이다.
내부거래가 심상찮은 화승 계열사는 또 있다. 바로 화승R&A다. 1978년 9월 설립된 화승R&A는 고무제품 제조업체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계열사 매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다.
화승R&A는 2005년 4447억원, 2006년 5094억원, 2007년 4546억원, 2008년 3939억원, 2009년 3760억원, 2010년 5157억원, 지난해 630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관계사 의존도의 경우 이 기간 각각 14%·17%·20%·22%·27%·27%·25%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일요시사>가 지적한 다른 기업들의 내부거래율과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 금액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화승R&A는 지난해 계열사들과 거래한 금액이 1595억원에 이른다. 주로 미국(698억원), 중국(617억원), 인도(199억원) 등 해외법인과 거래했다. 이외에 화승소재(23억원), 화승T&C(22억원), 화승공조(18억원), 화승엑스윌(9억원), 화승(5억원), 화승네트웍스(3억원) 등 국내 계열사의 일감도 받았다.
황태자 포진
그전에도 매년 1000억원 안팎의 ‘집안 매출’이 발생했다. 화승R&A의 내부거래액은 ▲2005년 641억원 ▲2006년 890억원 ▲2007년 919억원 ▲2008년 864억원 ▲2009년 1005억원 ▲2010년 1412억원으로 조사됐다.
화승R&A도 오너일가의 지분이 있다. 현 회장과 현 부회장이 주인공. 현 회장은 지분 17.92%(115만6890주)로 화승R&A 최대주주다. 현 총괄 부회장도 2.32%(15만주)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