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여야가 본격 대선정국으로 돌입하며 잠룡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대선출마를 공식화하며 행보를 넓혀가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물밑에서 움직임을 가속화 하는 후보들도 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대권을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이들에게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전·현직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에 너도나도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이번 대선을 앞두고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란 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선을 반년 남짓 앞둔 시점 대권 주자들이 너도나도 앞다퉈 전·현직 대통령 지우기에 나선 속사정을 파헤쳐 봤다.
임기말 대통령은 집권 여당으로서는 그야말로 ‘계륵’과 같은 존재다. 잘해야 본전인 대통령의 자리를 감안할 때 ‘공’보다는 ‘과’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를 안고가자니 부담이고 그렇다고 내치자니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시각으로 비춰질까 부담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주자들은 후자를 택한 것 같다. 안고 가서 함께 몰락하느니 제 살길을 찾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임기말 대통령은
‘계륵’ 같은 존재
새누리당은 임기 말 인기가 떨어진 이명박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와 선을 긋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민주통합당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데 몰두하는 모습이다.
여야가 모두 선을 긋고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데는 이들의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지지층 확장이 어렵고 이들의 부정적 이미지가 고스란히 자신들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인 이유가 크다.
따라서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되 버릴 것은 버린다’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대선 주자들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한참이고 유권자들의 인식 속에 각인된 전·현직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중대한 선결 과제로 꼽고 있다.
새누리당은 과거 한나라당 당시 연일 터지는 친인척 측근비리로 국민들이 등을 돌리자 이 대통령을 ‘버리고 가자’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그것도 친박계가 아닌 친이계 출신 의원들이 주장해 이 대통령을 당혹케 만들었다.
당시 친이계 의원들은 “결별할 거 결별하고 반성해야 한다. 헌집에서 새집 갈 때 짐을 다 가져 가야 하느냐. 먼저 이 대통령과의 관계를 버려야 한다. 정리를 해야 한다”며 이 대통령을 버리고 갈 ‘짐’으로 비유하기 까지 했다. 또한 대통령의 탈당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탈당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박 전 위원장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박근혜의 이명박 버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반MB’의 대명사로 통하는 인물들을 대거 영입했기 때문이다.
비대위는 출범하자마자 현 정부 정책노선 수정과 친인척 측근비리에 대한 특별검사 도입과 정권 실세에 대한 퇴진을 요구하며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가속화 했다.
당시 황영철 대변인은 “중요한 것은 이제는 대통령의 친인척비리 등의 부분에 대해서 바람막이 역할을 더 이상 안 하겠다”고 아예 못 박기까지 했다.
새, 이명박 ‘부정적 이미지’와 선 긋기 안간힘
민, ‘노무현 그림자’ 벗어나 넘어서기 몰두
하지만 친이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자 섣부른 선긋기와 차별화는 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계산하에서 한 발 물러섰었다.
그러나 박 전 위원장도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어 보인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부른 파이시티인허가 로비 사건과 불법 민간인사찰건, CNK 주각 조작 사건 등 자원외교 비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 등과 내곡동 사저, 4대강 사업 관련 의혹이 직접 이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사안들은 이명박 정부의 악재들로 대선국면에서 봇물처럼 불거질 경우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박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로 부정적 후폭풍 완화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또한 박 전 위원장은 최근 ‘7인회 논란’에 휩싸이자 “(7인회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고 일축했다. 7인회의 보수적 이미지도 문제였지만 이명박 정권 창출의 주역이었던 6인회를 떠오르게 한다는 점이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6인회의 일원이었던 이상득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등은 검찰 수사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유권자가 박 전 위원장의 7인회와 이명박 대통령의 6인회를 동일시할 경우 표심이 멀어질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부정적 후폭풍
완화에 안간힘
민주통합당도 방향은 다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지우기가 한창이다. 지난 4·11 총선 구도에서 굳어진 ‘친노무현·비노무현’ 구도의 틀을 깨려는 것이다. 또한 ‘노무현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도 한창이다.
‘3년 탈상’을 한 친노 인사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동안 ‘노무현’이라는 존재는 친노 세력에 정치적 자산이자 버팀목이었지만 추모 열기가 서서히 잦아들고 있고 여권의 노 전 대통령과 친노 세력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공과를 논하는 과정에서 친노가 감수해야 할 비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때문에 친노 진영의 대선주자들 사이에서는 노무현을 뛰어 넘어 ‘포스트 노무현’과 ‘비욘드 노무현’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높아지고 있다.
친노계의 유력 대권 주자인 문재인 의원은 앞서 노 전 대통령 3주기를 마친 뒤 “정치인 문재인으로 다시 시작한다”며 대선 도전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노무현의 그림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그가 “이제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놓았다”며 “정치인 문재인은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서겠다”고 다짐해 이목을 끌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만하고 ‘노무현의 그림자’로는 정권교체에 한계를 느껴 자신만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리틀 노무현’이라고 불리는 김두관 경남지사도 노 전 대통령이 아닌 “한국의 룰라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의 블로그에 노 대통령과의 차이점을 언급하며 차별화도 꾀했다.
김 지사는 “내가 행정가의 길을 걷다가 정치에 입문했다면 노 대통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인으로 살았다”고 강조했으며 자신이 이장부터 시작해 남해군수, 도지사를 거치며 지방자치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과 비교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어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노 대통령이 ‘비주류의 주류’였다면 나는 ‘비주류의 비주류’였다”며 “주류사회와 네트워크가 없다는 것은 나의 약점이자 강점이다”고 밝히며 그동안 “노무현 비욘드”에 목소리를 높여 왔다는 점도 노 전 대통령을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대통령 거리두기 작업, 대권 주자 선과제
“탈당 요구 관행 계속” 비난 목소리 높아
하지만 김 지사는 “‘리틀 노무현’이 그런 정신과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며 ‘리틀 노무현’으로서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 받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친노계의 대선주자 2인은 노무현 정신을 계승은 하되 그를 넘어서겠다고 밝힌 반면 범 친노계로 분류되는 정세균 의원은 공개적으로 ‘노무현을 잊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정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치개혁모임 주최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이제 노무현은 잊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며 “탈상도 했으니 친노·비노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친노가 어디 있고 비노가 어디 있느냐”며 “정말 무의미하고 민주당의 힘을 약화시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와 선긋기가 본격화 되자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선이 200여 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정책 구상은 뒤로하고 이미지 구축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역대 정권 임기 말에 집권당이 인기 없는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던 것을 예로 들며 나쁜 정치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비난도 높아지고 있다.
후보자들은 어느 정도의 정책적 차별화는 필요하겠지만 정치적으로 대립할 경우 대권 행보에 누가 될 가능성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실제 과거 유력 대선주자들이 ‘레임덕(권력 누수)’ 국면을 활용해 임기 말 현직 대통령과 대립했다가 결국 손해를 본 선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 대립 아닌
정책 대결 돼야
또한 민주통합당 후보들도 자칫 ‘친노-비노’ 대립이 격화된다면 새누리당의 ‘친이-친박’구도처럼 ‘한 지붕 두 가족’사태가 발생해 당의 고질적인 계파갈등으로 심화될 염려가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현직 대통령보다 더 나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는 국민들에게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을 위한 정책 분야가 아닌 자신들만의 기득권과 계파 챙기기에 급급 한다면 국민들은 표로서 심판 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점점 과열되고 있는 대선 정국의 결과가 궁금 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