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대선주자 7인 검증 ①출생(가정환경)

  • 이주현 jhjh1313@ilyosisa.co.kr
  • 등록 2012.06.07 1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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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 환경은 다르지만 이제는 같은 대권주자!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 주자들이 치열한 대권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여(박근혜·김문수·정몽준)·야(문재인·김두관·손학규) 6인과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검증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출생과 가정환경을 살펴봤다.


각 주자별 사상과 정치 색깔이 다르듯 검증의 첫 번째 주제로 선정한 출생과 가정환경 또한 판이하게 달랐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부터 대통령의 딸까지 극명한 차이를 보인 것이다. 마치 현재 보이고 있는 지지율 격차처럼 말이다.

자신이 살아오며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는 있지만 출생과 가정환경은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다. 따라서 현재 대중들에게 비쳐지는 모습은 자신이 개척해온 삶의 이미지지만 출생과 가정환경은 숨기고 왜곡하려해도 변할 수 없는 가장 순수하고 근본 된 본질이다.

이것이 대선주자들에게는 ‘스토리’로 활용 될 수도 있는 반면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선주자 7인의 출생과 가정환경을 살펴보자.


‘대통령의 딸’에서 ‘퍼스트레이디’까지

범상치 않은 유년시절 보낸 박근혜
 
먼저 가장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으며 새누리당의 유력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익히 알려진 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1952년 2월2일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에서 육군 정보학교장 박정희 대령(당시)과 부인 육영수의 딸로 태어났다.

육 여사에게는 첫 딸이었으나 박 전 대통령은 이혼경력과 전처의 자제가 있었으므로 박 전 대통령에게는 차녀였다. 형제자매로는 언니 박재옥과 동생 박근령(훗날 박서영으로 개명), 박지만씨가 있다.

박 전 위원장의 본관은 고령박씨로 신라 경명왕의 왕자군 중 한사람인 고령대군 박언성의 후손이다. 조선 후기의 소론 정치인이자 정조 때의 암행어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명했던 어사 박문수는 그의 8대 방조였다.

그 후 그의 가문은 몰락했지만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군 창설과 5·16 군사 정변에 참여해 육군대장에 이르렀다.

육 여사는 소학교 가정교과목 교사였는데 충청북도 옥천군의 대농토와 수많은 하인과 첩을 거느린 대지주 육종관씨의 외손자였다. 외할아버지는 박 전 대통령을 사위로 삼는 것을 반대했으나 외할머니 이경령과 육 여사가 박 전 대통령의 대구 관사로 가서 결혼식을 올렸다.

박 전 위원장이 태어났을 무렵 박 전 대통령은 겨우 여순 사건의 회오리를 벗어나 대구에 집을 마련한 상태였다. 이후 한국 전쟁이 끝나자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유년기를 보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후 프랑스에서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피격으로 사망했다는 급보를 접하고 귀국했다.

육 여사의 사후 박 전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영부인 역할을 대행했고 새마을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서거에 이어 아버지 또한 암살되었지만 박 전 위원장은 의연하게 대응했고 며칠 뒤 청와대를 떠나 동생들을 데리고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이후 남동생인 박지만이 2002년까지 사창가와 여관 등에서 윤락녀와 어울리며 상습적인 마약 투약에 빠져 지낸 것 등으로 인하여 맏딸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평가가 있다.


노동운동으로 해고·고문·구속
입지전적인 인물 김문수

새누리당의 또 다른 대선주자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1951년 8월27일 경북 영천시 임고면에서 평범한 가정의 4남3녀 중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성장했다.

경북 영천초등학교 졸업 후 대구로 유학하여 경북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노동운동을 벌이다 제적됐다.

제적 뒤 고향에서 4H운동, 야학 등 농민운동을 했으며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됐고 80년 광주항쟁의 여파로 회사는 노조해산 정책을 추진해 해고당했다. 이후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해 경찰의 추적을 받다가 체포, 연행돼 고문을 받기도 했다.

기소유예로 석방되어 복직했고 여성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구로2공단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을 지낸 부인을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 후에도 노동운동을 계속해 나갔으며 노동운동가 전태일 기념 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1985년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이 출범하자 그는 심상정(현 통합진보당 의원)과 함께 지도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함께 서울 구로구 구로공단에 노동자로 위장 취업하여 위장 취업노동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노동계몽운동을 하던 고대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을 만나 그로부터 마산수출자유지역, 영등포공장 이야기 등 언론에 보도되지 않던 비화 등을 접하며 한국노동계의 현실을 체험하기도 했다.

1986년에 인천시 5·3직선제 개헌투쟁 주도 혐의 등으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고 2년6개월 형을 선고받아 복역, 1988년 특별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복학해 입학 25년 만인 1994년 뒤늦게 졸업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 6남

보기 드문 엘리트 코스 밟은 정몽준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1951년 10월27일 부산에서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의 8남1녀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기는 서울 장충동 집에서 삼촌과 형제들이 함께 살았다. 워낙 식구가 많은 집안이었기 때문에 단체 생활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치워지고 없는 것이었다.

장충초등학교를 다닌 정 전 대표는 박근혜 전 위원장과 동기생이자 박 전 위원장의 동생 지만씨의 선배다. 1차 지망인 경기중학교 시험에 떨어져 당시 2차였던 중앙중에 입학했고 3학년 때 반장이 되자 부친인 정 회장이 시멘트 1만 포대를 기증했다.

그는 중앙고에 진학했으며 고교 시절부터 축구·농구·복싱·승마를 했다. 승마와 스키 실력은 대학시절 전국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을 정도다.

고2 때 그는 11일이나 결석했다. 사유는 ‘질병’으로 되어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 복싱을 배운 그는 학교 유도부 선수와 싸워 두들겨 팬 적이 있다. 그 뒤 유도부의 보복이 두려워 병을 핑계로 1주일 이상 결석한 것이다.

그는 “이런 일에는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었고 결국 등교해 많이 얻어맞고서 매듭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진학한 그는 ROTC 학군단 13기로 병역을 이행했다.

병역을 마친 정 전 대표는 유학길에 올라 경영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정 전 의원은 유학을 생활을 통해 한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세계의 리더인 미국과 일본을 이해하게 된 것을 최대 성과로 생각하고 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유년시절
유치장서 사법시험 합격통지서 받은 문재인

야권의 유력대선주자 문재인 의원은 1952년 거제도 피란민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함경남도 흥남출신으로 지역 명문인 함흥농고를 졸업한 수재다.

인민공화국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으로 근무하다 흥남철수 때 미군 군용함정에 몸을 실어 북한에서 남쪽으로 피란을 내려왔다. 피난 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막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다.

계란행상을 한 어머니의 걱정은 늘 끼니를 때우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를 갔다.

태풍 때는 지붕이 날아가 뻥 뚫린 천장 아래서 울어야 했던 일화와 이른 새벽 암표장사를 해보려고 어린 문 의원을 데리고 영도에서 부산역까지 걸어갔지만 차마 아들 보는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지 못하고 돌아오며 토마토 한 입으로 허기를 달랬던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문 의원은 “가난은 자신을 강하고 따뜻하게 키운 또 하나의 스승”으로 회고한다.

남항초등학교, 경남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끝에 후기로 4년 장학금을 받고 경희대 법대 72학번으로 입학했다. 대학 재학시절 운동권으로서 총학생회장을 대신해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되어 제적당했다.

강제 징집되어 특전 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수중폭파요원으로 활동했다. 복무 중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미루나무 제거조로 투입되기도 했으며 표창도 수차례 받는 모범병사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사법시험을 준비한 문 의원은 사시 22회에 합격하고 사법시험 합격통지서를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받았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문 의원은 과거의 구속 및 수감의 전력으로 그가 원하던 판사로 임용되지 못하고 변호사의 길로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합격했지만 등록금 없어 대학 포기
형들의 도움으로 학업 마친 김두관

김두관 경남지사는 1959년 4월10일 경남 남해군 고현면 이어마을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5남1녀 중 다섯 째로 태어났다.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농민의 아들로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더욱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며 가세는 더욱더 기울었고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감당했지만 집안 형편은 더욱더 어려워만 갔다. 운동화를 신어 보는 것이 어릴 적 소원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역사책과 위인전 읽기를 좋아했던 김 지사는 고등학교 때 관람 차 들른 <MBC장학퀴즈>에 현장 응모로 참가해 차석을 차지한 수재였다.

국민대에 합격했으나 입학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2년간 마늘 농사를 지었다. 학업의 뜻을 접지 못한 김 지사는 경상전문대학(현재 경북 전문대학) 행정학과 입학 후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했다.

그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세 형들 덕택이었다. 고등학교를 나온 큰형은 서독의 광부로 갔고,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둘째형은 남해의 논밭을 지켰으며, 중학교를 나온 셋째형은 기술을 배워 이라크 노동자로 일했다. 형들이 보내준 돈으로 김 지사는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그는 고려대학교 운동권이었던 친동생의 영향으로 민통련 가입, 간사 활동 중 개헌추진본부 충북지구 결성대회 주도 혐의로 구속됐다.

3개월간의 감옥생활 중 고향으로 돌아가 농민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귀향해 남해 농민회를 조직했고 아내와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끝없는 사회운동과 오랜 수배기간

고문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손학규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1947년 11월22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교사인 아버지를 4살 되던 해 교통사고로 여의고 손 고문과 그의 형제들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매동초등학교와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생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참가했다.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한 손 고문은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2학년 때에는 삼성그룹의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무기정학 중에 데모를 해서 또 무기정학을 받았다.

연이어 무기정학을 받은 손 고문은 강원도 함백탄광에 가서 광부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했다. 학교로 돌아온 손 고문은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당 대표와 더불어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해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대학을 졸업한 손 고문은 육군 병장 만기 제대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고 소설가 황석영과 함께 구로공단에 작은 자취방을 얻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오랜 수배생활 도중 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부음 소식을 접하게 됐다. 하지만 손 고문은 체포될 것을 알고도 주저 않고 어머니의 영정을 찾아 불효의 눈물을 흘렸다.

1979년 부마항쟁 진상 조사시 계엄사령부에 체포되어 김해보안대에 수감. 48시간 취조 없이 구타로 사망 직전에 이르렀다가 박정희 사망으로 유신체제가 붕괴되며 목숨을 건졌다.

'책벌레'의 평범했던 학창시절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 안철수

비정치권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962년 2월2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창 시절에는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고 운동 등 특별하게 잘하는 게 있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도서관의 책을 대부분 다 읽을 만큼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스스로 “활자 난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밝힐 정도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1등을 차지하고 서울대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학교를 졸업 한 그는 1990년에는 당시 최연소인 만 27세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의대 재학 중에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백신 프로그램인 V1, V2와 V3를 만들었다. 이후 7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백신을 무료로 제작·배포했다.

대학생 때 만난 부인은 1년 후배로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다. 처음에는 봉사 진료를 하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같이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는 사이로 지냈고 쉬는 시간에 커피도 마시면서 사랑을 키웠다.

두 사람은 생각과 가치관도 비슷했고, 같은 공부에 같은 의료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

안 원장은 한 TV프로에서 군대에 갈 무렵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려 이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피해가 확산될 것을 우려해 군대 가는 날 까지 만들어 V3 최초 버전을 PC통신으로 전송하고 입대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무반에서 다른 사람들이 입대 전날 가족들과 헤어진 얘기를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들한테 군대 간다는 말을 안하고 나왔다”고 밝혔다.

안 원장의 아내가 “군대 가는 날 아침까지 백신 프로그램 업데이트하더니 허둥지둥 지하철 타고 서울역으로 달려가더라. 기차 태워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데 무지 섭섭했다”고 밝힐 만큼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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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