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이 책은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던 채널 제도의 건지 섬에서 벌어진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채널 제도는 영국 자치령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동부 해안에 더 가까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백 년 전부터 독자적인 의회와 화폐를 가지고 있는 특이한 지역이다. 2차 대전 중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유일한 영국 영토이기도 하다.
해안선과 구릉들이 빚어내는 독특한 풍광의 건지 섬은 예부터 유서 깊은 관광지이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가 한동안 머물며 작품을 썼던 집은 환상적인 자연 경관과 더불어 건지 섬의 관광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이 책은 이 아름다운 섬에 살았던 사람들의 아픔과 용기, 우정을 유쾌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책이라고는 성경과 사료 설명서 외에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독서클럽을 만들었다. 그 사정은 이렇다. 엘리자베스와 이웃들은 독일군 몰래 잡은 돼지를 구워 파티를 벌이고 통행금지 시간을 훌쩍 지나 집으로 돌아가다가 순찰대에게 발각되었다. 강제수용소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독일식 정원’에 관한 독서 토론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는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하필이면 독서 애호가인 독일군 사령관이 다음 독서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통보를 했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독서클럽을 급조하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사랑한 독일군 장교의 아이를 낳은 엘리자베스, 독일군 점령 직전에 손자를 본토로 피신시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는 에벤, 닭과 염소를 키우며 남성용 강장제를 만들어 파는 이솔라, 연정을 품은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워즈워스의 시를 암송하는 크로스비, 먹을 게 없으면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 티스비(‘감자껍질파이’를 만들게 한 장본인). 순박하고 매혹적인 건지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읽고 있노라면, 그들이 소설 속 인물들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건지 섬 어느 모퉁이에서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은 독일군 치하에 있던 보통 사람들이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고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을 기지와 유머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리게 한다. 탈출한 소년 노동자를 위하다 수용소로 끌려간 엘리자베스 그리고 홀로 남겨진 그녀의 딸 키트를 보살피는 건지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노라면, 어린 아들을 위해 안쓰러운 연극을 벌이던 로베르토 베니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국군과 인민군이 왜 다투는지도 몰랐던 동막골 사람들의 인정과 순박한 마음을, 건지 사람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기쁨이다. 건지 사람들이 동막골 사람들보다 좀더 영악하지만 그들의 마음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휴머니즘은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더 빛을 발한다는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제2의 IMF가 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2008년 겨울. 날씨도, 주머니도, 사람들의 가슴도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좋은 책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받고 힘든 시기를 버텨낼 힘을 얻곤 한다.
이 책은 전쟁이 강요하는 억압과 결핍 속에서도 사람들 간의 우정과 연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끝없는 배고픔, 언제 수용소로 끌려갈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 고난의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준 문학의 힘. 끌려간 친구를 대신해 홀로 남은 아이를 내 자식처럼 보살피는 이웃들의 인정. 그리고 이 모든 무거운 것들을 감싸 안는 유머 넘치는 문장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입가에는 미소가, 가슴에는 따스함이 번진다. 크리스마스 즈음 독자를 찾아갈 이 책에 36.5도의 온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누군가에게 긴 편지를 쓰고 싶어질 것이다.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저/ 매직하우스 펴냄/ 1만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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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