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혜경 기자]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동반성장지수 발표에 대한 재계의 반응이다. 이번 발표로 ‘우수부터 개선까지’ 대기업들의 실명이 공개됐다. 조사대상에 포함된 56개 대기업들은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양분됐다.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기업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여러 가지 ‘특전’이 주어지게 된 때문이다. 반면 하위등급을 받은 기업들의 표정엔 불만이 가득하다. 공정위가 불이익은 없다고 못 박았지만 기업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이 불가피해서다.
실적과 연관
이날 삼성·현대차·포스코는 최고 등급인 ‘우수’를 받으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특히 우수를 받은 6개사 중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계열사가 5곳을 차지했다. 반면 지난해 업황 부진을 겪은 한진중공업·동부건설·STX조선해양·현대미포조선을 비롯해 효성, LG U+, 홈플러스 등 7개사는 최하등급인 ‘개선’을 받았다. 나머지 대우조선해양, 두산인프라코어 등 43개 대기업은 ‘양호’나 ‘보통’ 등 중간등급이 매겨졌다.
동반성장지수 결과는 실적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우수 평가를 받은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매분기 매출·영업이익에서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해왔다. 반면 개선 등급 기업은 한진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 전반적인 업황 부진으로 실적이 나빠졌거나 LG U+처럼 같은 업종 내에서도 후발 주자인 경우가 많았다. 동부건설도 부동산 경기 부진으로 작년에 적자를 냈다.
하위 등급 기업에 대한 불이익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4등급엔 향후 동반성장지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가이드라인 및 상담 등의 조치가 취해질 전망이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은 “최하위 등급을 받은 기업일지라도 아직 평가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다른 기업에 비하면 월등히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가 강한 기업이기 때문에 불이익은 주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현대차·포스코 웃고…조선·건설·중공업 울고
우수기업에 인센티브…하위 등급엔 불이익 없어
공정위는 동반성장지수 산출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고 있다. 동반성장에 소홀했던 기업들이 일종의 ‘창피주기 효과’ 때문에 자발적으로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리란 기대에서다.
유 위원장은 “(전날 등급 통보 이후)낮은 등급을 받은 기업들로부터 전화가 수십통 왔다”며 “이런 것들이 사실상 효과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동반위 측 관계자도 “이번 발표를 앞두고 평가대상 기업들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며 “좋지 않은 등급을 받은 기업들이 개선책을 마련하는 등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재계 “발표 유감”
허창수 전경련 회장도 동반성장지수 발표에 대해 “내용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기업 이름이 공개된 것은 우리 생각과 많이 다르다”고 유감을 표했다. 허 회장은 동반성장위원장을 직접 만나 동반성장지수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허 회장은 동반성장위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동반성장위원장을 만나서”라고 말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도 동반성장지수 ‘개선’ 평가를 받은 것과 관련 서운함을 내비쳤다. 강 회장은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우리가 개선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도 “다만 호황과 불황을 구분하는 등 업종 간의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