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지효는 영화 <쌍화점>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쌍화점>은 고려말 남색에 빠졌던 공민왕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랑 영화다. 송지효는 그런 작품과 사랑에 빠졌다. 공민왕의 왕비로 아이를 갖기 위해 원하지 않는 남자와 잠을 자야 하는 여인. 더구나 그 남자는 왕이 사랑하는 남자다. 송지효는 두렵고 혼란스럽고 겁이 덜컥 났지만 <쌍화점>에 매달렸다. 그리고 한 꺼풀을 벗었다. 한계를 알게 됐기에 도전할 수 있게 됐고 모자란 부분을 알게 됐기에 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에 빠진 여인은 아름답고, 지독한 사랑에서 헤어난 여인은 성숙해지는 법. 송지효는 아름다워졌고 성숙해졌다. 무엇보다 눈매가 깊어졌다.
갈등의 씨앗 되는 원나라 출신 왕후 역
주진모·조인성과 파격적 삼각 관계 열연
<쌍화점>은 올 연말 충무로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화제작이자 문제작이다. 송지효는 이 영화에서 고려왕(주진모)과 그가 사랑하는 친위부대 수장 홍림(조인성) 사이에서 갈등의 씨앗이 되는 원나라 출신의 왕후를 맡았다. 평온한 궁중을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요주의 인물.
“왕후는 내적으로는 강한 카리스마를 지녔고 외적으로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에요. 그동안 제게 맞는 옷을 입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쌍화점>의 왕후 캐릭터에 굉장히 끌렸죠. 제게도 왕후처럼 도발적이고 당찬 면이 있는데 왕후의 그런 면이 보이는 순간 확 빠져들었죠. 제가 도전정신이 강한 편이라서 하나에 꽂히면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돼요. 그런 뒤의 성취감이 정말 좋거든요.”
송지효는 조인성과 함께 숨 막힐 정도로 격정적인 정사신을 소화해냈다. 극중 정사신은 왕후와 홍림의 육체적인 합일이 선행된 후 사랑이 완성되는 역순차적인 내용으로 진행됐다.
왕의 명령 때문에 합궁을 하게 되지만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게 되는 중요한 장면으로 송지효와 조인성은 극중 베드신에서 죄의식과 쾌감, 고통과 열락이라는 복잡한 심리마저 표현해야 했다.
노출보다 감정표현 힘들어
“노출이 <쌍화점>에서 이슈가 되고 있죠. 관심 받을 만한 것, 인정해요. 베드신이 아니라면 세 사람의 관계가 정리가 되지 않거든요. 전 일단 결정하면 밀고 나가는 성격이라 최선을 다했어요. 베드신에서 몸이 얼마나 나오느냐 보다는, 몸놀림이 중요하다고 봐요. 감독님이 표정을 워낙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눈동자의 흔들림까지 보시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자세도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감정을 보여주는 게 가장 힘들었죠.”
9개월간의 촬영기간이 이야기해주듯 <쌍화점> 촬영은 보통 작품의 세 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유하 감독은 송지효는 물론 함께 출연한 조인성, 주진모에게 “너희들이 고통을 받을수록 관객은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송지효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연기자로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끝나고 나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그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연기 때문에 많이 고민하며 노력했던 9개월의 시간이 제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이제 모든 감정을 제 안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걸림이 없을 정도로요. 그만큼의 깊이와 넓이를 갖게 된 것 같아요. 많이 힘들었지만 얻은 것도 많죠.”
송지효는 아직 가능성만 안고 있는 신인배우다. 지난 5년간 송지효는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낸 적이 없다. <쌍화점>은 그 시작점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송지효에게는 이제 진실성을 연기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시나리오를 다르게 보는 법도 배웠고, 입체적인 생각을 하는 법도 배웠어요. 제 안의 감정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는 법도 배운 것 같아요. 마음은 깊어지고 머리는 넓어진 거죠.”
노메이크업으로 다니면 아무도 몰라요
2003년 영화 <여고괴담3-여우계단>으로 연기를 시작하기 전 3년 동안 CF 모델로만 알려진 송지효는 꽤 발랄하고 상큼한 이미지의 신세대 스타였다. ‘톡톡 튀는’ 캐릭터가 어울릴 만한 하이틴 스타의 전형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그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전혀 딴판이다. 비슷하다 싶은 것은 영화 <색즉시공2>뿐.
하지만 그것도 캐릭터의 일부에서만이지 전반적인 내용에서 송지효는 특유의 이미지와는 달리 감성적인 연기를 펼쳤다. 잘 나가는 CF모델 출신 연예인이 파란만장한 연기 생활을 한 셈. 연예계 데뷔한 지는 벌써 8년째인데 출연작 수는 조만간 개봉 예정인 <쌍화점>까지 고작 6편이다. 활동 기간에 비해 작품수가 적다는 것이 다소 의외로 여겨진다.
“<여고괴담3> 이후 8개월 쉬고, <썸> 하고 1년 쉬고, 드라마 <궁> 하고 6개월 쉬고 그랬어요. 우연찮게 <주몽> 하고 나서부터 <색즉시공2>와 <쌍화점>으로 이어졌죠. 사실 제가 연기를 전공한 게 아니라서 약간의 콤플렉스가 있었거든요. 작품 할 때마다 두려움이 좀 있었어요.”
새침데기, 천생 여자처럼 생겼어도 성격은 남자처럼 털털하다. 여름에는 웨이크보드, 겨울엔 스노보드를 즐기며 평소엔 티셔츠에 운동화 신고 버스를 타고 다닌다. 소속사에서 화장도 하고 멋도 내라고 통사정할 정도다.
“노메이크업으로 다니면 아무도 몰라봐요. 처음엔 ‘이런 굴욕이 어디 있나’ 싶었지만 편하더라고요. 며칠 전엔 막내 동생 휴대폰 사주려고 갔는데 점원이 ‘송지효 닮았다’는 거에요.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다’며 웃었죠. 너무 털털해서인지 아직 스캔들이 없어요. 내심 섭섭해요.”
사진 송원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