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이회창’ 보면 ‘2012 박근혜’ 보인다?!

  • 이주현 jhjh1313@ilyosisa.co.kr
  • 등록 2012.05.08 15: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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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와 차별화 ‘NO' ‘창’과의 차별화 ‘YES'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4·11 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대세론’을 확고히 다졌다. 2004년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해낸 바 있는 박 위원장이 100석도 힘들다는 당초 예상을 깨고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이번에도 당을 구해내자 ‘대세론’은 정점에 달했다. 당내에선 ‘경선 무용론’이 나오면서 ‘추대론’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2002년 대선경선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위원장이 이 전 대표의 데자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이회창 데자뷰’ 현상을 낱낱이 분석해봤다.

지난 4·11총선 승리로 새누리당은 완벽하게 ‘박근혜당’으로 변모했다. 박 위원장은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을 공천하며 논란을 잠식시켰지만 친이계 의원 35명 남짓을 가차없이 탈락시켰다.

대신 친박계 원외 인사 50여 명을 공천했다. 지난 18대 총선 ‘친박학살’ 당시 엄청난 분열과 파장을 가져왔을 때와 비교한다면 아주 무난히, 그리고 성공적인 공천을 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분열과 별다른 세력이탈 없이 자신의 계보 인사들을 공천한 박 위원장의 리더십도 높이 평가받았다.

하지만 비난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당이 박 위원장의 ‘대선캠프화’ 됐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묘하게 겹치는
두 대세론자들

이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과 비슷하다는 평가다. 이회창 전 대표도 자신과 대척점에 섰던 인물들을 공천에서 제외시키며 한나라당을 ‘이회창당’으로 만들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김윤환 전 대표 등 거물급 낙천 인사들은 이수성 전 국무총리 등과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지만 지역구와 비례대표에서 각각 1석을 얻는 데 그치며 참패했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낙천한 전여옥 의원 등이 한나라당 출신 박세일 대표가 이끄는 국민생각에 합류했지만 단 한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한 채 참패해 비슷한 결과를 남겼다.


‘경선 무용론’과 ‘추대론’이 나온 것도 묘하게 닮은꼴이다. 16대 총선 이후 정국의 중심은 ‘이회창 대세론’이었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마땅한 대선주자도 내놓지 못했고 김대중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이 후보의 지지율이 견고해졌다.

대세론 속에서 치른 한나라당 경선은 형식적인 과정으로 이른바 ‘이회창 추대식’에 가까웠다.

19대 총선 이후에도 상처뿐인 경선은 무의미하다는 ‘경선무용론’과 그에 따른 ‘박근혜 추대론’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판세에서는 승리했지만 수도권에서 졌다는 점도 여지없이 닮았다. 이 전 대표가 이끈 한나라당은 16대 총선 전체 273개 의석 가운데 133석을 획득해 제1당이 됐다. 하지만 수도권 97곳 가운데 단 40곳에서만 승리해 기대치에 훨씬 못 미쳤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도 과반이상 의석이라는 쾌거를 이뤘지만 수도권 전체 의석 112석 가운데 43석을 차지하며 참패했다. 지난 18대 총선의 절반 수준이다.

16대 대선을 6개월 앞두고 진행된 2002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뒀다는 사실도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새누리당도 대선을 8개월 남은 시점에 압승해 선거 승리 시점도 묘하게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승리에 도취했고 이회창 대세론 속에 안일한 태도로 대선에 임해 정권탈환에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의 새누리당도 총선 이후 김형태·문대성 당선자를 둘러싼 ‘비리 의혹’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역풍에 직면했고 차기 당 지도부 내정설이 떠돌아 논란을 자초했다.

‘한나라당=이회창당’ ‘새누리당=박근혜당’ 만든 제왕적 권한 
막강한 대세론 속 경선무용론에 따른 ‘추대론’ 경선 흥행실패?

새로운 홍보수단의 등장도 비슷하다. 16대 대선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이 보편화되면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활동할 수 있는 공공의 장이 마련됐다.

당시 인터넷 선거운동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게 여기던 한나라당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 20~40대에서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대선에서 패배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새로운 수단이 등장했다. 야권이 SNS를 통해 4·27과 10·26재보선에서 승리하자 위기감을 느낀 새누리당은 공천심사에 SNS역량지수를 추가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현재로서는 야권이 SNS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대선에서 SNS를 통한 선거운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여겨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야권의 강력 대선주자가 두 명 존재 한다는 사실도 흡사하다. 16대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까지 1강(이회창)·2중(노무현·정몽준) 구도로 진행됐다.

하지만 2중의 지지율을 합하면 1강을 앞지르는 상황 때문에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가 진행됐고 결국 노무현 후보가 이 전 대표를 꺾었다.

현재 야권의 잠룡으로 분류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지지율을 합하면 박 위원장을 앞서는 상황이 일치한다.

또한 압도적 대세론 속에서 후발주자들이 경선룰 변경을 요구하고 있는 점도 판에 박은 듯 똑같다. 이처럼 가볍게 웃어넘기기에는 16대 대선과 오는 18대 대선은 흡사한 점이 너무나 많다.

16대 경선과 차이점
15대 경선에서 보여

하지만 16대 경선과 다른 양상도 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이회창, 최병렬, 이부영, 이상희 후보 4명이 경선을 치렀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박 위원장의 대세론 속에서도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97년 15대 대선 경선당시 ‘9룡’의 재현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에도 독주 후보는 이 전 대표였다.

그러나 이홍구, 박찬종, 이수성, 최형우, 김덕룡, 이인제, 김윤환, 이한동 후보가 출마를 강행하며 유례없는 다자구도가 형성됐다.

하지만 9룡 중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오른팔인 최형우 후보는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자마자 중풍으로 꿈을 접었고, 이홍구 후보는 정치에 불신감을 나타내며 후보를 사퇴해 최종적으로 6명이 겨뤘다.

당시 이 전 대표는 경선 내내 1위를 기록했지만 금품살포설과 흑색선전 논란이 벌어지는 등 나머지 후보의 집중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이인제, 이한동, 이수성, 김덕룡 후보는 경선 막바지 ‘반창 연대’를 구성했다.

반창 연대의 영향으로 이 전 대표는 대세론이 흔들려 전당대회 1차 투표에서 40.9%의 득표율에 그쳐 이인제 후보와 2차 결선투표까지 치르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수도권 패배·대선 직전 선거 승리·새로운 홍보수단 탄생도 겹쳐 
대세론 속에서도 후보 난립 현상, 15대 대선 경선 ‘9룡’의 재현

현재 새누리당의 대권 레이스도 이와 흡사하다. 김문수 경기지사, 정몽준 전 대표가 이미 대권 도전 의사를 공식화 했고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역시 속속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또한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도 다음 주 중 출마를 공식화 할 예정이다. 여기에 김태호·정두언 의원 등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고 당외 인사인 정운찬 전 총리 역시 경선에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위원장을 포함해 무려 9명의 주자가 경합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또한 이들은 당시의 반창 연대처럼 ‘비박 연대’를 구성해 박 위원장을 집요하게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김 지사와 정 전 대표가 연일 박 위원장을 비판하며 완전국민참여경선 룰 수용을 촉구하는 등 공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지율 격차가 워낙 현격해 형식면에서는 다자구도이지만 내용면에서는 박 위원장의 독주체제가 분명하다.

비박 후보들이 박 위원장을 추월할 가능성도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막바지 비박 주자들의 후보단일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선주자들이 난립하는 이유로 ‘정치적 노림수’가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8월 경선에서 박 위원장이 선출되더라도 12월 대선까지 수많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넘버2’ 자리를 확보해 놓겠다는 계산과 함께 승패에 상관없이 대선후보 경선을 대선이후 주도권 확보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친박진영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것 아니냐며 ‘청와대 배후설’도 제기됐다.

후보난립 이유는
정치적 노림수?

청와대를 향한 친박진영의 의심의 눈초리는 자연스레 정책 차별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 위원장은 최근 불거진 현정부 핵심 인사들의 부정비리 의혹과 미국 광우병 발생에 따른 미국산 쇠고기 검역중단 여부를 두고 현정부와 완전히 선을 긋고 있다.

따라서 정권말기 이명박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전 대표도 집권말기의 김영삼 정권이 여론의 비판을 받자 김 전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시도하며 탈당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 전 대통령의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극단적인 거리두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극단적 차별화와 탈당요구는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이처럼 박 위원장의 대선행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전 대표와 오버랩 되고 있다. 마치 데자뷰 현상을 보고 있는 듯하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 ‘2002년 이회창을 보면 2012년 박근혜가 보인다’라는 풍문이 떠도는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아 보여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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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