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혜경 기자]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은 ‘샐러리맨 성공신화’로 통하던 인물이다. 지난 1998년 대우전자 판매본부장이던 선 회장은 IMF 사태로 대우그룹이 공중분해 되자 하이마트를 설립해 매출 3조원이 넘는 회사로 키워냈다. 월급쟁이들에겐 동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신화’가 사실은 비리로 쓴 ‘막장드라마’였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사방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한 꺼풀 벗길 때마다 새로운 비리가 나오는 모습이 마치 양파 같다.”
최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에 대한 재계의 평가다. 그럴 만도 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만 ▲특수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외국환거래법 위반 ▲부동산거래법 위반 ▲배임수재 ▲조세포탈 등 모두 6가지, 그 규모는 무려 5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납품업체서 상납
검찰에 따르면 선 회장은 자신의 아들을 하이마트 직원으로 올리고 이사회 의결 없이 자신의 연봉을 높이는 등 총 182억 원의 회삿돈을 횡령했으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납품업체로부터 온갖 명목으로 돈을 받아냈다.
선 회장이 하이마트 매장 공사를 한 업체로부터 유명 그림 여러 점을 상납 받는 식으로 챙긴 돈만 10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납품업체는 미대 출신인 선 회장 딸의 그림을 5000만원에 사야 했고 딸의 벤츠 리스료까지 대납해야 했다. 내연녀의 생활비를 조달할 목적으로 납품업체를 설립해 일감을 몰아준 뒤 2003∼2007년 이익금 3억7500만 원을 이 여성에게 건넨 정황도 드러났다.
선 회장은 지난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 M&A를 거쳐 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도 받고 있다. 1차 M&A에선 하이마트 자산을 담보로 제공해 하이마트를 인수하는 이른바 차입매수방식으로
24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 유진그룹과의 2차 M&A에서도 이면계약을 체결해 소액주주들에게 602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
선 회장은 또 2차 M&A 과정에서 유진그룹이 인수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주는 대가로 현금 400억 원과 하이마트 주식 40%를 액면가로 취득한 혐의(배임수재)도 받고 있다. 유진그룹은 당시 경쟁업체인 GS리테일보다 입찰가를 2000억 원이나 낮게 제시하고도 최종 인수업체로 선정됐다.
횡령·배임·조세포탈 등 걸린 혐의만 모두 6가지
현재 입원한 상태…시간끌기·동정여론 조성용?
선 회장은 이렇게 만든 돈 가운데 1509억원 가량을 자녀들에게 불법 증여해 증여세 760억원을 포탈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8년 미국 LA 베벌리힐스의 고급주택을 아들에게 사준 것도 그중 하나다.
그야말로 비리백화점이 따로 없다. ‘양파회장님’이라는 재계의 비아냥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게 재계의 견해다. 선 회장의 성공신화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차명주식 등을 ‘세탁’해 가로챈 데서 시작된 때문이다. 비리 위에 탑을 쌓은 형국. 선 회장의 몰락이 예견된 일이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현재 선 회장은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지난달 29일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직후부터다. 과거 재벌기업 회장들의 행보가 묘하게 오버랩된다. 실제 그동안 범죄혐의를 받은 회장들은 빠짐없이 환자복을 입었다. 시간을 벌 수 있는 데다 동정 여론도 기대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검찰과 법원은 환자를 가장한 읍소형 범죄 혐의자들에게 과거처럼 관대하지 않다는 점이다. 뻔히 보이는 수법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탓이다. 선 회장으로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원행을 결정했겠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내연녀에 생활비
선 회장은 어떻게든 철창행을 면하기 위해 아등바등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음엔 과연 어떤 행보가 이어질까. 전례를 보면 초호화 법조인단을 꾸린 뒤 재직시절의 성과와 우리 경제에 공헌한 점을 내세우며 선처를 구하는 순서가 유력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혐의만 봐도 감옥행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 결국 선 회장의 성공신화는 막을 내리게 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과연 선 회장 인생드라마의 다음 막이 열리는 건 감옥에서일까, 회장실에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