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 본선 진출 쾌거 홍명보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

  • 정혜경 jhk@ilyosisa.co.kr
  • 등록 2012.03.20 10: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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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새로운 전설 써내려가는 ‘영원한 리베로’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지난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한국과 카타르의 ‘2012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최종경기가 0-0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결정적인 골 장면은 터지지 않았다. 그래도 축구팬들의 표정엔 아쉬움이 없다. 우리 대표팀은 이미 지난달 22일 열린 런던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A조 5차전에서 오만을 3-0으로 완파하며 조 1위를 확정해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7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아시아 국가로는 사상 최초다. 이처럼 우리 대표팀이 새로운 역사를 만든  배경엔 홍명보 감독이 있다. 한국축구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에서 명지도자로 거듭난 홍 감독이 걸어온 길을 재조명해봤다.

어린 시절 작은 체구로 감독 요구 부응 못 해 스트레스
볼 컨트롤로 체격 극복하고 탄탄한 기본기 쌓아 주목

홍명보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여동생만 둘인 집안의 외아들이어서 축구에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부모로서는 하나 뿐인 아들이 축구보다는 공부를 해 집안을 꾸려 나가길 바랐던 게 너무나 당연했다. 부모의 반대에도 홍 감독은 결국 축구를 선택했다.

부모님 반대에도
결국 축구 선택

그러나 축구가 늘 재미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어린시절 유난히 작은 키가 문제였다. 늘 교실의 맨 앞자리에 앉을 정도였다. 이런 신체조건 탓에 감독 선생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홍 감독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초등학교는 그럭저럭 지낼만 했다. 경쟁이 덜 치열했기 때문이었다. 키가 여전히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 광희중학교에 입학했다. 감독 선생님이 요구했던 체력과 체격의 수준은 초등학교 때보다 훨씬 커지고 강해졌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몸집이 큰 선수들과 충돌이라도 하면 튕겨져 나자빠지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부상에 대한 공포감이 언제나 따라다녔다. 홍 감독이 작은 체구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볼 컨트롤’에 있다. 볼 컨트롤이 돼야 그 다음 패스도 할 수 있고 상대 선수들이 접근하기 전에 재빨리 패스를 해 신체 충돌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방법으로, 이를 통해 홍 감독은 탄탄한 기본기를 쌓게 됐다.


중학교 때까지 평범한 선수였지만 기본기가 잘 준비돼 있었기에 그는 향후 무럭무럭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축구명문 동북고에 진학한 뒤 키가 자라면서 덩달아 축구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고교 2년과 3년 연거푸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해 고려대까지 진학했다.

미드필더로서 고교와 대학시절 명성을 날리던 홍 감독에게 중요한 기로가 왔다. 당시 남대식 고려대 감독이 주전 수비수가 졸업해 생긴 빈자리를 맡으라고 했다. 대학교 3학년에 포지션을 바꾸는 것은 사실 대단한 모험일 수도 있었다.

당시에 대해 홍 감독은 “수비수 보직 전환에 불만이 있었지만 팀내 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며 “어떻게 하면 수비를 잘 봐야 하는지 그때부터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돌이켰다. 공격 중심의 축구에서 수비로 포지션이 바뀌자 축구 전체를 보는 시각이 더 넓어졌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수비수로 활동하던 대학 4학년, 1990년은 홍 감독이 처음 태극마크를 달던 해였다. 그 해 2월4일 노르웨이 친선경기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한일월드컵 축구가 열렸던 2002년 말까지 13년간 그가 뛴 국가대표팀 간 경기(A매치)는 135차례로 아직도 역대 최다기록이다.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아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강을 이룩한 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상대 공격의 ‘맥’을 읽고 차단해내는 판단력과 지능적인 플레이가 압권이었고, 무엇보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수비라인 및 팀 전체를 통솔하는 리더십이야말로 10년 넘게 홍명보를 ‘한국대표팀 부동의 수비수’로 존재하게 만든 근원이었다.

그라운드 전체를 꿰뚫는 폭넓은 시야와 전방으로 연결하는 날카로운 패스, 노련한 경기운영능력과 적절한 위치선정은 홍 감독에게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라는 호칭을 안겨줬다. 즉, 실상 가장 공격적인 수비수이면서 가장 수비적인 공격수, ‘리베로’의 전형이었다.

홍 감독은 프로선수로서도 성공적인 삶을 보냈다.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던 1992년엔 이회택 감독의 지휘아래 팀 우승에 기여해 신인으로는 K리그 최초로 최우수선수(MVP)에 뽑히며 화려한 출발을 했다.


축구 외에 언어·문화
배우러 일본·미국행

1994~1996년 3년 연속 K리그 베스트11에 뽑힐 정도로 기복 없는 플레이를 펼쳤고, 일본프로축구에서 포항으로 복귀한 2002년에도 역시 베스트11에 선정됐다. 국가대표와 프로축구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자 그의 명성은 국내외에 널리 퍼져나갔다.

국내 프로축구 활동 5년 만인 1997년에는 일본프로축구로 진출하기도 했다. 당시 홍 감독은 모든 것이 권태로워지기 시작한 때였다. 목표의식도 사라졌다. 그 탈출구로 홍 감독은 일본행을 선택했다. 처음엔 J리그의 벨마레 히라츠카로 옮겨 활약하다 1999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해 그 해 J리그컵 우승에 공헌했다.

그러나 진출 초기엔 생각대로 쉽지만은 않았다. 일본에 진출했던 1997년 일본프로축구엔 한국 선수가 2명밖에 없었다. 또 국내에서 정상급으로 뛰던 선수가 잘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너무 컸다. 조언을 해줄 사람도 없었고,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기에 힘든 나날이 계속됐다.

그런데 걱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우로 변해갔다. 선진화된 일본축구를 배우고, 나름대로 성숙한 일본사회의 문화적인 영향도 받았다. 당시에 대해 홍 감독은 “한국처럼 녹초가 되도록 뛰지 않아도 되는, 어느 포지션에서든 협력플레이가 잘 되는 일본축구에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선수와 지도자 간의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또 은연중에 일본을 무시하는 생각들도 바뀌기 시작했다.

국가대표는 물론 프로선수, 지도자로서도 성공적인 삶
아시아 국가 최초로 7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 대기록

이후 홍 감독은 2002년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로 잠시 복귀했다가 2003년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의 로스앤젤레스 갤럭시로 이적했다. LA갤럭시로 진출한 것은 축구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영어공부를 하고 싶었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배움의 욕구가 컸다.

축구선수가 축구만 하지 않는 미국사회에서 홍 감독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운동선수, 기부 등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다양한 문화체험도 했다. 홍 감독은 이런 외국의 경험에 힘입어 역대 한국인 코치로서는 외국인 코칭스태프와 가장 원활한 의사소통을 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홍 감독은 2004년 10월8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프로선수로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2006년부터 A대표팀과 올림픽팀 코치를 거쳐 지도자로 변신했다. 이어 2009년부터는 청소년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본격적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하지만 홍 감독의 데뷔를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들도 많았다. 그러나 2009년 청소년월드컵에서 8강 신화를 작성하며 이런 시선은 불식됐다. 이후 홍 감독은 올림픽팀 감독을 맡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거머쥐는 등 지도자로서 승승장구했다.

특히 홍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은 지난달 2월22일 새벽 끝난 2012 올림픽 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5차전 오만과의 원정 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두면서 남은 경기결과에 상관없이 각조 1위에게 주어지는 본선행 티켓을 잡았다.

이에 따라 우리 대표팀은 7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아시아 국가로는 사상 최초다. 지난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한국과 카타르의 ‘2012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최종경기가 0-0 무승부로 막을 내렸음에도 축구팬들의 얼굴에 여유가 가득한 이유다.

홍 감독의 목표는
올림픽 메달 획득

그러나 정작 한국 축구가 올림픽 본선에서 그동안 거둔 성적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1948년, 2004년 대회에서 8강 진출에 성공한 것이 역대 최고성적이고 나머지는 모두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박주영, 이근호, 기성용, 이청용 등 최고의 멤버들이 나섰던 4년 전 2008년 베이징대회에서도 조별리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금 홍 감독의 목표는 명확하다. 올림픽 메달의 숙원이다. 축구팬들과 관계자들의 바람 역시 마찬가지다. 넘지 못했던 올림픽의 벽을 무너뜨려달라는 것이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슬슬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홍명보라는 존재의 힘은 그렇게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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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