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기자도 솔깃했던 신종 '불법 다단계' 유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3.22 08: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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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억8000만원, 당신도 이룰 수 있습니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거마대학생' 사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허황된 꿈을 꾸는 대학생들이 그 덫에 걸려들고 있다. 불법 다단계업체가 신학기를 맞아 서울 송파구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에서 또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법 합숙이 문제되자 이젠 감시자를 붙여 찜질방으로 숙소를 옮기는 수법을 썼다. 미인계까지 등장했다. 고수익과 취업을 미끼로 학생을 유인해 강제로 물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하고 사이비종교에 버금가는 세뇌교육을 시키고 있는 한 불법 다단계업체를 <일요시사>가 잠입 취재했다.

봄철 신학기 맞아 다시 고개 드는 불법 다단계 유혹
취재 내내 달라붙었던 여 매니저, 기자 모텔로 유인

지난 13일 오후 2시 취재기자는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한 다단계업체의 실장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서울 송파구 거여역 인근의 한 커피숍을 찾았다. 가게 안은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은 남녀 2명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아예 없었다. 기자는 그들에게 다가가 "혹시…"라고 말을 꺼냈다. 그들은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더니 이내 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함께 있던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가더니 커피 한 잔을 들고 와 기자에게 건넸다. 남성이 소개를 시작했다.

늘씬한 여성 매니저
화려한 언변에 솔깃

"저는 ○○○○에서 영업총괄을 맡고 있는 김정환(가명)이라고 합니다. 옆은 영업사원 모집을 담당하는 신고은(가명) 매니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취업준비생 000씨 맞으시죠?"

이들은 기자를 지방 모 사립대를 갓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일자리를 찾고 있는 취업준비생으로 알고 있었다. 어수룩한 표정으로 "맞다"고 하자 이들은 기자에게 부모님께 전화할 것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연신 기자가 "괜찮다. 알고 계신다"고 말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래도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은 걱정하실 겁니다. '잘 도착했다. 회사 쪽 사람 만났다'고 전화 한번 하세요."

'지방에서 온 걸로 알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하고 기자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니 전화를 거는 척하고 통화도 혼자 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통화(?)를 끝내자 이들은 이상한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회사 홍보와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이었다.

"서울에 아는 사람은 없어요? 요즘 결혼식도 많은데 예정되어 있는 지인 결혼식은 없나요? 집에는 별일 없죠?"

왜 이런 것을 물어보나 싶어 곰곰이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혹시라도 신분을 의심할까 싶어 성실하게 대답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법적 회사가 아니다'고 안심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실장 옆에 앉아있던 매니저 신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자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불법 다단계업체에서 미인계도 쓴다고 하는 말이 헛소문은 아니었다. 신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호감이 가는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앉아 있을 때는 몰랐지만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왜 이쪽으로 옮겨 앉느냐"고 묻는 것도 이상할 정도로 행동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신씨는 기자에게 찰싹 달라붙더니 회사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00씨가 마트에서 1만원짜리 수박을 샀다고 가정할게요. 그런데 그 수박의 생산지 원가가 1000원이라면 9000원이라는 차액은 어디서 생겼을까요? 바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유통과정에서 생긴 비용이겠죠. 예를 들자면 운송·창고보관·광고 등 중간유통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나는 거죠. 저희 회사에서는 이런 유통과정을 개개인이 담당해요. 회사 직원이 소비자 겸 판매자가 되는 거죠. 00씨가 회사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그 물건을 제3자에게 팔면 제3자는 제4자에게, 제4자는 제5자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식이에요. 그럼 당신은 중간 판매원이 되고 최종 판매원 여럿을 거느린 셈이죠."

종이에 이것저것 쓰고 그려가면서 설명을 하는데 미리 불법 다단계업체라는 사실을 알고 오지 않았다면 '혹'할 수도 있는 설명이었다. 신씨의 말은 너무도 그럴듯했다.

30여 분 동안 정신 차릴 새 없는 설명이 끝나고 이들은 기자를 사무실로 이끌었다. 사무실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도 신씨는 기자와 팔짱을 끼면서 회사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거여역 인근 골목길을 따라 5분여를 걸었을까? 이들은 기자를 지상 5층짜리 건물로 안내했다. 응당 있어야만 하는 회사 간판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10여 명의 직원들이 기자를 둘러싸더니 여기저기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반가워요. ○○○씨(지인)친구분이죠? 말씀 많이 들었어요. 강의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가방이랑 겉옷, 그리고 휴대폰은 제가 맡아 드릴게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자는 20평 정도 되는 강의실에 앉아있었다. 가방과 겉옷은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애써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20여 명의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뭔가를 작성하고 있었다. 김씨가 기자에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넸다. A4용지 3장으로 이뤄진 종이는 나이, 군필 여부, 주소,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작성하는 부분부터 부모님의 직업, 월평균 소득, 주거형태, 보유자동차의 종류 등 초등학생 시절 작성했던 가정환경실태조사서를 연상케 했다.

다단계 아니라고?
속지마세요!

사실대로 적었다가는 당장 쫓겨나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이름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허위로 작성하고 제출했다. 주변 연수생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몸에 딱 붙는 투피스 정장을 입은 여성 강사가 들어왔다. 이 강사는 자신의 가방에서 소지품을 모두 책상위에 늘어놓더니 열띤 강의를 시작했다.

"기 있는 모든 물건들 가격을 합하면 1000만원이 넘을 겁니다. 저는 현재 32살 다이아몬드급 이사입니다. 일을 시작한지는 4년째, 초기 투자금 300만원, 현재 월수입 1500만원 이상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저보다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습니다. 300만원이 너무 부담된다면 사측에서 저리로 자금을 융통해드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자금이 준비되면 여러분들에게 사측에서 판매하는 물건을 제공하고 여러분들은 그 물건을 팔아 또 다른 하위판매원을 모집하면 됩니다."

급 1500만원이면 단순계산으로도 연봉이 1억8000만원이다. 1억8000만원은 월 4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이 숨만 쉬고 3년9개월을 모아야 하는 금액. 금액만 보면 로또도 이런 로또가 없었다.

전화·문자 이용제한
회사 내부규정?

기자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몇몇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믿을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강사는 자신의 통장거래내역을 공개했다. 정말 매달 10일에 1500만원 내외가 입금되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이러다가 여기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 때문에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당하는 것 같았다.

이들이 판매하는 물품은 대부분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도 불투명한 중소기업이 만든 기능성 속옷이나 화장품, 의료보조기기, 건강보조식품 등이었다. 하지만 실제 물품들은 돈이 마련되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한참 열변을 토하던 강사가 화이트보드에 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회사의 조직도였다. 사장이 화이트보드의 왼쪽 중앙에 위치했고 두 갈래로 줄이 나눠지고 양쪽으로 다이아몬드가 위치했다. 다이아몬드는 각각 5갈래로 나눠졌고 그 끝에는 골드가 적혔다. 골드 역시 5갈래로 나눠져 레드로 이어졌고 레드 역시 5갈래로 나눠져 블루로 이어졌다. 고개를 왼편으로 꺾어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영락없는 피라미드였다. 

2시간여 동안 정신없지만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강의가 모두 끝났다. 고개를 돌려 연수생들을 둘러보니 대부분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강사의 언변에 모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세뇌교육의 무서움이었다.

강의 2시간 만에 빠져드는 연수생들, 참기 힘든 '고수익' 유혹
알아도 걸려드는 무서운 다단계 '덫'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기자는 중간보고를 위해 처음 만났던 실장을 찾아 가방과 겉옷 그리고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사무실 번호를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는 순간 실장이 기자의 휴대폰을 낚아챘다.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이유를 물었다. 대답이 가관이었다.

"강의가 끝나 휴대폰은 돌려드렸지만 아직 연수는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전화 통화나 문자는 할 수 없어요. 회사 내부규정이라 어쩔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취재 중간보고는 해야 했다. 머리를 굴렸다. 화장실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실장이 따라왔고 "급하다"고 말을 하고 뛰어 들어가 화장실 문을 닫았다. 밖에서 실장이 소변을 보고 손을 닦으며 연신 기자에게 말을 걸었다. 통화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대신 볼륨을 무음으로 낮추고 문자를 보냈다.

10분 정도가 흐르고 실장이 문을 두드리며 기자를 재촉했다. 실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연수생들이 먼저 가 있다는 호프집으로 향했다. 실장은 자신이 골드등급이라며 월 500만원 이상을 번다고 했다. 호프집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니 20여 명의 연수생들이 여기저기 나눠 앉아 있는 테이블에는 이미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테이블당 한명 꼴로 실장이나 매니저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화장실 등의 이용을 위해 자리를 뜨는 연수생들에게 여지없이 맨투맨으로 따라붙었다.

기자도 신씨와 함께 자리를 잡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기자를 데려온 실장은 연수생들의 주의를 끌더니 숙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 사측에서 마련한 숙소가 있는데 오늘 유난히 연수생들이 많이 몰렸어요. 회사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일이지만 숙소가 비좁을 듯해요. 그래서 여성 연수생들은 사측이 마련한 숙소로 가고 남성 연수생들은 찜질방을 이용하도록 할게요. 물론 찜질방 비용은 사측에서 부담합니다."

설명이 끝나자 실장과 매니저들은 게임을 주도하면서 연수생들에게 술을 먹이기 시작했고 기자의 술잔도 비워지기 무섭게 채워졌다. 이런 저런 핑계로 술을 거절한지 2시간쯤 지났을까? 매니저로 보이는 여성들이 남성 연수생들과 짝을 맞춰 한 커플씩 호프집을 나가기 시작했다. 어깨동무를 하거나 팔짱을 끼는 등 오래된 연인사이를 연상케 했다.

그때 기자 옆에서 연신 술을 마시던 신씨가 노골적으로 기자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아니 유혹을 하는 듯했다. 가뜩이나 짧은 치마는 스타킹 끝 부분이 보일 정도로 올라가 있었으며 기자에게 몸을 기대왔다. 기자가 별 반응(?)이 없자 기자의 손을 이끌었고 못 이기는 척 신씨를 따라나섰다. 5분여를 걸었을까? 신씨가 한 모텔로 들어갔다. '이건 아니다' 싶어 신씨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기자가 "찜질방으로 가겠다"고 하자 기분 나빠할 줄 알았던 신씨가 안내를 해주겠다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찜질방에 도착해 신씨가 매표소에 "○○에서 왔어요"라고 하자 직원이 표 2장을 건넸다. 신씨와 헤어지고 대충 몸을 씻고 찜질방으로 들어서니 그곳에서도 역시 '네트워크 마케팅' 찬양 일색이었다. 여자 연수생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성 매니저 여럿과 남자 실장들이 보였고 찜질방으로 들어서는 기자를 발견한 실장 한 명이 기자에게 다가와 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보관함 열쇠를 가져갔다.

"내일 아침에 다 같이 이동해야 되는데 한 분이라도 열쇠를 잊어버리면 늦어지니까 통합 보관 할게요."

구석진 곳으로 가 자리를 잡고 누웠다. 헤어졌던 신씨가 찜질방으로 들어서더니 기자를 발견하고 다가왔고 남자 실장 한명도 기자 옆에 누웠다. 무슨 '포로수용소'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12시30분. 이제 슬슬 '수용소'를 탈출할 준비를 해야 했다. 기자가 자는 것이 확인돼야 이 둘도 잠에 들것 같았다. 일단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말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내 고요해졌다.

모두들 자는 듯 했다.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00씨 어디가세요?"

아직 잠이 들지 않은 것인지 뒤척임에 깼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찌됐든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용변을 보러간다 말하고 일단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문을 열면 신씨와 실장이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자리로 와 누웠다.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이 지났을까? 찜질방 내부 누군가의 휴대폰에서 새벽 3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찜질방을 빠져나오는 동안 다행히 아무도 기자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카운터로 가 옷장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말한 뒤 1만원을 지불하고 예비열쇠로 옷장을 열어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노력해도 깊게 빠져드는
마약 같은 '검은 유혹'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자의 휴대폰이 무섭게 울어댔다. 총 3개의 번호를 수신 거부하니 더 이상 전화는 울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리고 노력한 만큼 얻는 것이 세상사다. 하지만 종종 들려오는 불법 다단계 피해사례를 보면 빠져나오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가 겪은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다단계 체험은 잠시 기자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빠져들 만큼 솔깃하게 사람을 세뇌시켰다. 지금이라도 불법 다단계의 늪에 빠져있는 사람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단 빠져나와 관계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다시는 불법 다단계의 검은 유혹에 빠져들지 말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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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