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에 부채질 한 MB ‘기자회견’ 뒷담화

  • 이주현 jhjh1313@ilyosisa.co.kr
  • 등록 2012.02.25 11: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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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 끝난 ‘자화자찬’ 한마당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2일 취임 4주년을 맞아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전격 기자회견에 나섰다. 지난해 4월1일 이후 10개월 만이었다. 연이어 터지는 친인척 비리와 서민생활 악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 등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반성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 국민들은 많은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철저하게 국민적 기대를 저버렸다. 시종일관 자화자찬에 자기 합리화와 변명뿐이었다. 기자회견은 모두발언과 마무리 발언, 8개의 질문을 받는 식으로 63분간 짧게 진행됐지만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친인척 비리’ 질문에 난데없는 ‘시장 할머니’ 이야기만 장황
“할 말이 없다” “이해해 달라”라는 말로 모든 의혹 덮어버려 

이명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온통 자신이 하고 싶은 말뿐, 국민이 원하는 목소리는 없었다는 비난이 계속되고 있다.

각종 비리와 악화된 경제 문제 등으로 국정 전반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개선의 의지는 없었고, 야당을 향한 공격과 ‘나는 옳다’는 고집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나 그 수위가 너무 지나친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임기 말을 맞이하면서까지 소통의 한계를 표출하고 정치적 불씨를 남겼다는 게 세간의 혹평이다.

끝까지 일관된
‘소통의 한계’


먼저 모두발언을 살펴보면 이 대통령 특유의 어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전부터 자주 사용했던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직설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열심히 했다” “~한 심정으로 임했다” “새벽같이 모였다” “모든 사항을 꼼꼼히 점검했다”라며 자신은 모든 부분에서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을 은연중에 자랑했다.

또한 그 결과 “2008년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신용등급이 올라갔다” “그리스 재정위기도 해결의 기미가 조금 보이고 있다”라며 자찬을 해댔다.

하지만 자신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경제위기가 닥친 데 대해 “이러한 일은 세계 경제사에 일찍이 없었다”며 불가항력의 일이었지 절대 자신이 잘못해서가 아니라고 에둘러 말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모두발언에 한 네티즌은 “국민은 대통령 때문에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힘들다고 외치는데, 대통령은 절~~대 자신의 탓이 아니고 세계 경제사에 없었던 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며 “한마디로 나 때문에 이 정도라도 살 수 있었다고 외치는 것 같아 어이가 없다”고 힐난했다.

모두발언에 이어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친인척 비리와 사저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첫 질문을 하자 이 대통령은 난데없이 ‘시장의 한 할머니’ 이야기를 장황하게 소개했다.

할머니를 만난 이야기부터 살아온 이야기, 할머니에 대한 심정 등을 소개하다 갑자기 뜬금없이 “사실 우리 정부는 많은 일도 했다. 열심히도 했다. 국위도 선양했다. 국격이 아주 높아졌다”라며 자찬했다.


그러다 또 할머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할머니가 삶이 나아지는 것이 없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또 할 수도 없다”며 할 말이 없다고만 했다.

측근비리와 관련해서는 “정말 가슴이 꽉 막힌다. 화가 날 때도 있다. 저는 가슴을 칠 때가 있다. 정말 밤잠을 설치고 생각 한다”며 비리와 자신을 분리했고 “제 심정이 이런데 국민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국민 여러분들께 이에 관한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자신도 가슴이 꽉 막히고 화가 날 때가 있다고 밝히며 국민들의 마음은 어떻겠냐고 이해하는 척 했지만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할 말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덮어버린 것이다.

사저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좀 소홀했다”면서 “제가 챙기지 못한 것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건 전적으로 제 탓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챙기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만 했다.

더 중요한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등 사저를 둘러싼 국민적 의혹에 대해서는 역시 일언반구도 없이 함구했다. 마치 자신이 꼼꼼하게 챙겼으면 이런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 보였다는 시각이다.

이어 “30년 이상 살던 옛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 널리 이해를 해 주시면 고맙겠다”며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채 국민들에게 이해만 요구하고 정리해 버렸다.

인사문제에 대해서도 “의식적으로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신 분이 많다면 앞으로 시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제기하는 문제와 자신을 분리시키고 지금 심정을 밝히는 식으로 사과나 해명을 피해 간 것이다.

‘사과’와 ‘반성’
철저히 비켜가

하지만 이 대통령은 한미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 등에 대해선 “전 정부에서 결정했다”고 선을 그었다.

“지금 반대하는 분들도 그때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추진했던 분들이라서 안타깝다”며 참여정부시절 총리를 지냈던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이해찬 전 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발언록까지 들춰가며 공박했다.

이에 대통령이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에는 두루뭉술하게 넘기고 과거 국회 대정부 질의 답변록까지 인용하며 공세를 펼친 것에 대해서도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무슨 정치적 공방을 벌이려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했지만 정치적 공세를 펼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4년을 ‘암흑기’로 주장하는 야당의 공격에 전면적으로 맞서고, 현 정책기조를 고수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동시에 한·미 FTA를 놓고 야당과 대치중인 여당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의중도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기자의 질문에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넘어갔고, 원자력발전소 문제에 대해서는 수치를 언급하면서까지 선진국과 비교했지만 기자회견 후 관련단체들이 이 대통령의 주장은 엉터리라며 비난하고 나서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뭐 상대를 하겠다, 상대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수십 년 간 1년에 몇 번씩 들어오던 말이다”며 북한의 강경태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이 진정한 자세를 가지고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맞을 것이다”는 말로 북한의 태도변화만을 촉구했으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라는 전제조건을 철회할 수 있는지?’란 질문이 나왔지만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 참여정부 인사 발언 비판하는 꼼꼼함도
‘4대강 사업’ 질문, 언급조차 안하고 넘겨버려, 탈당 질문도 못해

이 대통령은 SNS를 통한 “현 정부는 친재벌적이 아니냐?”며 기업상을 묻는 질문에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기업이 세금을 내서 복지를 하고 또 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 기업이 잘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반기업 정서는 아주 나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기업을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생발전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면서도 “대기업들의 빵, 외식업을 들어보니까 순대도 하고 떡볶이도 한다고 하더라. 저는 본적도 없고 먹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또한 “대기업이 스스로 이것을 자제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며 자체적으로 노력해주기만 바랄뿐 규제의지가 없음을 밝혀 많은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마무리 발언에서도 “국가재정이 비교적 튼튼한 편이다. 외환보유고도 충분한 편이다”라며 자랑을 이어 나갔고 “요즘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확실한 재정 뒷받침이 없는 선심성 공약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걱정을 하고 있다”고 발언해 ‘명백한 선거개입’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한 “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며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과대한 짐을 지우는 일도 저는 하지 않겠다”고 말해 임기 말 대형무기 도입과 4대강 사업마무리 등을 추진하고 있는 최근의 행보와 정 반대되는 발언을 해 빈축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남은 1년 하루도 소홀함 없이, 흔들림 없이 일해 나가겠다”고 회견을 마무리했다. 현 정부 지역발전 정책의 문제점과 여당 내 대통령 탈당 요구에 대한 질문은 뒤로 배치돼 시간이 모자라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이에 한 지방지 기자는 기자회견 후 대통령에게 “이명박 정부의 지방 홀대가 기자회견에서도 나타난다”고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 대통령은 “지방은 따로 한번 (기자회견을) 할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농담조로 받아넘겼다.

진정성 없어
국민적 분통

이처럼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성찰할 대목에 자화자찬했고, 사과할 일은 변명으로 피해 갔으며, 정치적 중립 의지를 다져야 할 시점에 정쟁의 불을 지폈다.

예정된 중요한 질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이야기만 늘어놓고 야당을 공격한 그의 기자회견에 ‘실망스럽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룬다.

진정성을 느끼기는커녕 무성의한 그의 태도에 국민들은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 대통령은 이제라도 민심이 뭘 원하는지 파악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남은 1년의 임기를 별 탈 없이 마무리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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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