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주현 기자] 비대위가 구성되며 쇄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또다시 악재를 맞이했다. 고승덕 의원이 소문으로만 떠돌던 전당대회 ‘돈 봉투’ 거래를 폭로한 것이다. 디도스 악재가 가시지 않은 시점에 또 다시 정치권을 흔들만한 대형 사건이 한나라당을 덮쳤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쇄신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4월 총선의 최대 악재로 떠오를 수 있어 한나라당은 좌불안석이다.
박희태 의장·김효재 정무수석 지목 됐지만 완강히 부인
비대위 쇄신역풍 우려 신속히 검찰수사 의뢰, 수사 착수
사실 국회에서는 정확한 팩트가 없었지만 ‘전당대회 돈거래설’은 공공연히 떠돌던 얘기였다. 정치권에서 쉬쉬하며 닫아두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고승덕 의원이 연 것이다.
그의 폭로는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일고 왔고, 그 후폭풍은 가늠키 힘들 정도다. 그것도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당내 혼란과 충격은 배가 되고 있다.
전당대회 돈거래
고승덕 의원은 지난 5일 18대 국회 중 열린 전당대회에서 후보 중 한 명으로부터 300만 원이 든 봉투가 왔고, 자신은 그 봉투에 돈이 든 것을 확인하자마자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고 의원은 한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전당대회 2~3일 전에 의원회관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직원들이 ‘봉투가 와 있다’고 했다. 그걸 전달한 분이 ‘꼭 의원에게 직접 전달해야 한다’고 당부해 직원들도 내용물을 몰랐고, 내가 봉투를 열어보니 돈 300만 원이 있어 깜짝 놀랐다”며 “나는 같은 친이계로서 그 분을 당연히 지지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까지 주실 필요가 있는가 생각이 들어 돌려보냈다”고 설명했다.
고 의원은 “나는 그 분을 지지했고 결국 그 분이 당선됐는데, 이후 그 분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싸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그런 돈을 10원도 안 받았기 때문에 그런 연장선에서 아무 생각 없이 돌려보냈는데, 그것 때문에 봉투를 보낸 쪽에서는 나를 ‘적’이라고 생각을 하시게 된 것 같다”며 “이 일은 정치하면서 내가 입은 상처 중 하나”라고 말했다.
고 의원은 각종 공직선거에서와 달리 당내 선거에서 이런 불법적인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당내 선거도 금전적으로 투명해야 하고 앞으로 19대 국회에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18대 국회 들어 있었던 3차례의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엄청난 숫자의 돈 봉투가 오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그 소문의 일부가 고 의원의 증언을 계기로 드러났다. 정치권에서 쉬쉬하며 닫아두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집권여당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거액의 돈이 오갔다면 이는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자칫 당의 존폐와 관련된 사안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고 의원은 돈 봉투를 줬던 친이계 전 대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으나 홍준표 전 대표가 선출된 지난 7ㆍ4 전대 때의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홍준표 지도부 출범 당시 고 의원은 당 국제위원장을 맡았고, 10·26 재보선 때는 공천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고 의원이 ‘전당대회 이후 관계가 싸늘해졌다’고 언급한 것을 감안하면, 돈 봉투를 돌린 전직 당 대표는 박희태 국회의장과 안상수 전 대표로 압축되는 상황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안 전 대표는 “나는 그런 일이 없다”며 “나는 고승덕 의원을 국제위원장으로 발탁해 중용한 사람”이라고 강조했고 박 의장도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황당해 했다.
지금 시점에 밝히게 된 까닭에 대해 고 의원은 “어제 오늘 갑작스럽게 ‘폭로’한 것이 아니라 지난 달 초 신문 칼럼에 이미 게재한 내용”이라며 “그런데 어제(4일) 방송에서 스크립트(자막)가 내가 돈 봉투를 받았다는 식으로 나갔고, 지역주민들이 사무실로 전화가 오고해서 다시 정확하게 얘기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폭로가 나오자 한나라당 비대위는 “제공자와 받은 자 다 문제될 것”이라며 즉각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 6일 수사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당 대표 선출 전대 때 돈 봉투를 돌린 전직 당대표와, 돈 봉투 살포 역할을 맡은 의원 등의 소환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공공연하게 봉투를 돌린 의원은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지목하고 있다. 김 수석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만약 소환이 이뤄진다면 국회의장과 청와대 정무수석이 검찰의 조사를 받는 초유의 광경이 벌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검찰수사 착수
비대위가 각종 구설수 등을 일으킨 전직 대표 등의 용퇴를 요구하고 있는 시점에 고 의원이 돈 봉투 살포를 폭로하면서 한나라당 인적 쇄신에는 더욱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선 당연히 19대 총선 공천도 불가해 보여, 이 사건은 자연스레 비대위의 인적 쇄신의 한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용퇴를 요구당하고 있는 친이계로서는 ‘엎친데 덮친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