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해경 기자]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1년여를 앞두고 곤혹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연일 터지는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연루설로 한나라당 내 탈당 요구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탈당 요구는 아예 대놓고 나오고 있다. 그것도 쇄신파와 친박계가 아닌 친이계 출신 의원들이 주장하고 나서 이 대통령을 옥죄고 있는 형국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탈당으로 살펴본 이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을 점쳐봤다.
“차별화론 안 된다. 결별해야” 역대 대통령 임기말과 비슷
청와대, 함구령 속 무응답 “탈당하지 않는 첫 대통령 될 것”
한나라당 내에서 앞으로 재창당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버리고 가자’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왔다.
재보선의 잇단 패배와 여론의 악화로 당이 위기를 맞이하자 임기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본격화 된 것이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론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자칫 여당 내 ‘쇄신경쟁과 권력다툼’이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압박받는 MB
한나라당 초선 쇄신파 모임인 ‘민본21’ 간사를 지낸 권영진 의원은 지난 12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내년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 대통령은 어떤 정파에 속하기보다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선거를 관리하고 국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국민을 위해 옳은 길”이라며 대통령의 탈당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이어 “국민께 ‘왜 한나라당이 싫으냐’고 여쭤보면 제일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 ‘한나라당은 이명박 당, 실패한 이명박 정치를 반복하는 당’이고, 두 번째는 ‘국민통합하라고 했더니 당 내에서 친이계, 친박계 싸움 지긋지긋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 대통령 때문에 한나라당이 국민의 마음을 잃었고, 따라서 신당은 ‘이명박 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야만 떠난 국민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을 지낸 원희룡 전 최고위원도 가세했다. 원 전 최고위원도 같은 날 의원총회에서 “결별할 거 결별하고 반성해야 한다. 헌집에서 새집 갈 때 짐을 다 가져 가야 하느냐. 먼저 이 대통령과의 관계를 버려야 한다. 정리를 해야 한다. 재창당을 하면 집권당이 아니라 야당의 길을 가야 한다. 대신 임기를 잘 마칠 수 있도록 임기 만료까지 관계를 잘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을 버리고 갈 ‘짐’으로 비유한 것이다.
친이계 초선인 장제원 의원도 의총에서 “이 대통령과 단절이 아니고 조용한 정리가 필요하다. MB는 MB 시대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절이라는 표현 대신 정리라고 말했지만 이 대통령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취지는 마찬가지였다.
이는 역대 정권 임기 말에 집권당이 인기 없는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던 것과 사실상 맥을 같이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를 통해 당선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당의 당적을 포기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 앞서 9월에 민자당을 탈당했다.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가 탈당 이틀 전 관권선거 의혹 사건 등으로 부분 개각을 요구한 탓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잇단 권력형 비리로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고 또한 개각 요구를 인사권 도전으로 받아들여 탈당카드로 맞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한 달 전인 11월 신한국당을 박차고 나갔다. 이회창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부패한 3김 정치와 성전’을 선언하자 분개했던 것이다. ‘김대중 비자금 사건 수사 연기’방침을 하달했지만 이회창 후보의 탈당 요구에 굴복했다. 자신이 한 행위가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2년 대선 7개월 전에 민주당과 결별했다. 아들의 비리의혹 등이 빗발치고 당의 원망과 질타가 이어지자 어쩔 수 없이 탈당을 선택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측근비리에 당 의원들의 당 해체시도와 탈당 요구가 이어졌고 2003년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하지만 정권 재창출도 이루지 못하고 당시 여권은 ‘배신과 분열의 정치’라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현재 당 내에서 탈당 압박을 받고 있다. MB의 정책 실패와 측근 부패 등이 원인이다. 정작 친박계는 조용하다. 차별화는 강행하지만 탈당에 대해서는 함구령이 내려졌다는 설도 들려온다.
청와대는 탈당 요구 발언이 이어져 곤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청와대가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여당 내에서 친이계가 사실상 와해됐고 정국의 중심도 청와대에서 국회로 넘어가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직 대통령을 비판해 자신들이 살아보겠다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대통령이 힘을 잃으면 최대 피해자는 결국 여당일 수밖에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탈당은 시간문제?
그동안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1990년대 이래 임기 말에 탈당하지 않는 첫 대통령이 될 것이란 점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친인척·측근 비리가 연일 불거지고 있어 청와대의 입지를 압박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터질 ‘시한폭탄’도 산적해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탈당을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둔 여당 입장에선 이 대통령과 ‘멀어지기’가 불가피한 선택이다. 따라서 임기 막바지에 이르러 당·청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될 경우 대통령이 결국 지난 1987년 이후 모든 대통령이 그래왔던 것처럼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