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주현 기자] 한나라당이 심상치 않다. 쇄신은 물론 해체설까지 제기되며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집권당이자 거대여당의 이러한 위기에는 이른바 ‘오세훈의 저주’가 서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하고 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퇴한 것이 ‘저주’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을 해체수준까지 인도한 오세훈의 저주는 끝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한나라당은 떨고 있다. 오 전 시장의 사퇴가 남긴 것은 무엇인지 집중 조명해봤다.
유승민·남경필·원희룡 동반사퇴에 홍반장도 사퇴 ‘체제붕괴’
FTA 날치기 여파 가시기도 전에 디도스 공격 파문 악재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을 포함한 현 정치권에 남긴 파장은 실로 엄청나다. 단지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로 서울시장이 교체된 것 이상의 의미와 파장을 남기고 있다. 세상을 뒤흔든 ‘핵폭탄급’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잘나가는 변호사 출신이 서울시장 연임에 성공했고 차차기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인물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오세훈 사퇴
‘저주’의 시작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전부터 한나라당과 줄곧 마찰을 빚어왔다. 중앙당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고 이를 이끌어내기 위해 패배시 ‘시장직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다.
이에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티격태격했고 당내 갈등이 심화됐다. 주민투표에서 패배하자 지도부는 오 전 시장의 사퇴를 극구 말렸고 사퇴를 강행하더라도 10·26 재보선 이후로 사퇴시점을 늦춰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오 전 시장은 끝내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고 즉각 사퇴해 버렸다.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서울시장 후보 선정으로 당내 혼란이 일었고 결국 나경원 후보가 고군분투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선거 패배는 물론이고 장래가 촉망됐던 나 후보 부친의 사학비리가 까발려졌고 1억원 피부샵, 고가의 다이아 재산 은닉 의혹, 보좌관의 폭로 등으로 만신창이 돼버렸다.
나 후보는 선거 패배 후 미국으로 건너가 휴식을 취하며 복귀 시점을 저울질 하고 있지만 당의 계속되는 악재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또한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밝혀진 의혹들은 앞으로도 공직생활을 하는데 크나큰 오점과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여겨진다.
‘불똥’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튀었다. 4년을 절치부심하며 자신만의 대권레이스를 구상한 그를 조기등판 시킨 것이다. 박 전 대표로서도 역할론과 책임론에 휩싸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걸로 여겨진다.
박 전 대표도 득보다 실이 많았다. 선거운동기간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총력을 다한 서울시장 선거에 패배하며 ‘선거의 여왕’이라는 이미지에 크나큰 오점을 남긴 것이다.
오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선거 기간 중 안철수 현상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병 걸린 거 아니에요?”라고 답해 막말 파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오세훈 저주가 남긴 것 중 가장 큰 변화는 뭐니 뭐니 해도 시민사회세력의 등장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정치권의 새로운 정치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으로 그 파워를 여실히 드러냈다.
안 원장의 등장은 4년간 대선후보 지지도 1위 자리를 지켜온 박 전 대표를 앞서는 등 엄청난 영향력을 가져왔다.
안 원장은 “학교 업무만으로도 벅차다”며 한발 물러선 듯 했지만 1500억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하며 다시 한 번 국민의 환심을 사 박 전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를 더욱더 벌렸다.
박근혜 전면 복귀 불가피, 당내 잠룡들 주도권 경쟁 치열할 듯
한나라당 공중분해 위기, ‘저주’ 계속 된다면 정권교체 가능성도
오 전 시장은 한나라당의 ‘소통 부재’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시민세력이 강세를 보였지만 이를 가능케 한 것은 SNS의 힘이 컸다는 사실에 이견을 다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층에게 관심을 갖게 하면서 빠른 전달력으로 정보전달을 하는 한편, 이들의 발걸음을 투표소로 향하게끔 했다.
그 정점에는 <나는 꼼수다>라는 인터넷 방송이 있었다. 팟케스트 다운로드 전 세계 1위 기염을 달성한 <나꼼수>는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나 후보의 의혹과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 등을 사실에 입각해 집중 거론했고 투표를 독려했다.
또한 정치라는 딱딱한 주제에 재미를 가미하면서 젊은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승리의 1등 공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말로만 ‘소통’을 강조하며 <나꼼수>와 SNS, 토크콘서트 등을 흉내 내려다 여의치 않자 SNS를 규제하는 법안을 개정하고 이들을 나쁜매체로 규정함으로써 국민적 반감을 샀다.
여러 사람 울린
‘오세훈의 저주’
최근에는 10·26 재보선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디도스 공격의 범인이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라는 사실이 밝혀져 오세훈의 저주는 정점에 달해있다.
야권과 시민들의 원성은 자자하고 여권 내에서도 확실한 규명을 언급하며 국정조사와 특검까지 논의되고 있는 상항이다. 이번 디도스 사건으로 한나라당은 도덕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었다.
또한 선거 패배 후 책임론에 휩싸인 홍 대표는 줄곧 사퇴압박을 받았고 쇄신안을 내놨지만 지도부는 물론 친박과 친이, 쇄신파 할 것 없이 홍 대표를 압박했다.
홍 대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는 없다고 완강히 버텼지만 지난 7일 유승민·남경필·원희룡 최고위원이 동반사퇴하며 ‘홍반장 체제’는 완전 붕괴됐다.
지난 8일에도 측근들에게 “자리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하게 대안 없이 대표를 그만두고 나가버리면 당에 대 혼란이 초래된다.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는 대표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겠다”고 일축하며 다시 한 번 사퇴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홍 대표는 지난 8일 저녁 “나갈 때가 되면 내 발로 걸어 나가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다음 날인 9일 오전 여의도 당사 대표실에서 김장수 최고위원과 면담을 갖고 “결심을 하겠다”고 말해 사퇴가 임박했음을 내비쳤다.
이어 오후 3시 홍 대표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당원 여러분의 뜻을 끝까지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고 운을 뗀 뒤 “집권여당 대표로서 혼란을 막고자 당을 재창당 수준으로 정비하고 내부정리 후 사퇴하고자 했던 저의 뜻도 기득권 지키기로 매도되는 것을 보고 저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는 것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히며 전격 사퇴했다.
오세훈의 저주가 결국 ‘홍반장’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며 유명세를 떨쳤던 홍 대표까지 무릎 꿇게 만든 것이다.
홍 대표가 사퇴하자 관심은 자연히 박 전 대표의 등판에 쏠렸다. 홍 대표의 퇴진은 당내 최대 주주이자 유력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의 당 전면 복귀를 뜻하지만 박 전 대표의 역할 및 향후 당의 진로를 둘러싸고 비상대책위원회, 선거대책위원회, 재창당위원회, 조기 전당대회 등의 논의가 쏟아져 나오면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현재 소장·쇄신파는 비대위를 구성해 박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수도권 친이계 ‘재창당모임’은 당의 실질적 재창당을 위해 재창당준비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친박은 비대위냐 조기 전당대회냐 등을 놓고 통일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다.
여당 내부의 상황과는 별개로 내년 4·11 총선을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의 여권 지도부 교체, 특히 박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은 총선과 대선 정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여권이 만약 재창당 수순으로 갈 경우 ‘헤쳐모여’ 속에 일부 이탈세력이 발생하면서 여권발 정계개편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부에선 당의 향후 진로를 놓고 권력투쟁이 시작됐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친박계는 특히 ‘포스트 홍준표’ 체제에 대한 당내 논란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선뜻 전면에 나설 경우 정몽준 전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측이 반격을 가할 수도 있어 잠룡들 간에 주도권을 잡기위한 치열한 경쟁 또한 예상된다.
이들은 박 전 대표에게 전권을 넘겨줬다간 자신들의 설 땅이 사라질 것이란 공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박 전 대표를 간판으로 내세우되 공천권 등은 분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MB와의 차별화’에 대해서도 미온적이다.
공천 과정에 자신들이 배제될 경우 이들은 분당도 불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럴 경우 박 전 대표 자신이 상처를 입고 대선가도에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주도권 잡기 위한
잠룡들의 세력싸움
이처럼 오세훈의 저주는 정국을 뒤흔들 만큼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문제는 이 저주의 끝이 여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10·26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그의 저주가 언제 어떤 사건으로 또 다시 터질지 모르는 데다 지금 현재도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을 바짝 긴장케 하고 있다.
만약 한나라당에 오세훈의 저주가 계속된다면 총선 패배는 불 보듯 훤하고 대선 패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마디로 그의 저주가 한나라당 전체를 태풍 속에 몰아넣은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오 전 시장이 원흉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끝나지 않은 오세훈의 저주, 그 끝은 어디일지 사뭇 궁금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