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 검찰 ‘공안라인’ 집중해부

‘지금은 공안시대’…“때가 어느 땐데~”

[일요시사=이해경 기자] ‘공안(公安)’의 사전적 의미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편안히 유지되는 상태. 또는 그런 상태를 지키는 사람’이다. 즉 ‘공공의 안전’을 줄인 말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공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빨갱이를 잡는 집단’과 ‘집권자들의 정적 제거용 집단’이 떠오른다. 그만큼 독재정권 시절 집권여당과 기득권자들에 반하는 민주화세력을 잡아들이는 일을 해온 세력으로 국민들의 뇌리 속 깊이 인식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 시대가 바뀌고 국민정서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안기조를 강화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논란이 일고 있다.

‘성골’로 대우받는 TK·고려대 출신 다수 포진
한 총장 취임할 때부터 ‘종북좌익세력 척결’ 의지 

공적인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기득권층들은 지금까지도 정적제거 또는 압박에 여전히 공안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검찰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최근 여러모로 체면을 구긴 검찰이 공안기조 강화에 나서 더 강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집권 후반기 레임덕에 빠져들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들인 이른바 TK·고려대 출신들을 공안라인에 대거 포진시켜 이 대통령에 반하는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체면 구길대로 구기고
논란 자초하는 검찰

검찰은 지난 10·26 재보선 당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허위사실 유포행위 엄벌 방침을 밝혀 논란을 자초했다.

공안당국은 지난달 7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인터넷상에서 떠돌고 있는 ‘괴담’의 진원지를 파악, 유포자를 구속 수사키로 하는 등 적극 대처에 나선 것이었다.
 
또한 한미FTA 비준 반대 집회·시위 등이 과격양상을 띠면서 국민들의 불안감과 사회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판단, ‘불법행위는 반드시 처벌한다’는 원칙하에 불법 폭력 집단행위 등을 엄단키로 했다.

파급력이 높은 SNS 등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는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키로 했고, 관련기관·단체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엔 소송을 지원, 책임을 끝까지 추궁하기로 한 것이다.
 
신고범위를 넘어선 가두시위, 국회의사당 경계 100m 이내 등 금지장소에서의 집회·시위, 해산명령 불응 등 불법 집단행동의 경우에는 즉시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해 엄벌할 방침을 내렸었다.

특히 불법·폭력 집단행동 주동자, 국회의사당 침입자, 과격 폭력행위자, 상습적 가두시위자 등은 구속 수사하는 한편, 가담자 전원을 색출하고 주동자·배후조종자는 끝까지 추적해 엄단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불법 집단폭력행위,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행위 등을 엄단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이 같은 방침에 여론은 들끓었고 비난이 거세지자 검찰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검찰은 지난달 13일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또 한 번 체면을 구겼다.
 
공안수사 강화 기조에 맞장구를 쳐온 한나라당 내에서도 검찰을 비판하기 시작하자 검찰 지휘부는 당혹해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하지만 검찰은 “검찰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고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무리수” vs “본연의 업무” 논란 끊이지 않아
정권말기 레임덕 방지하는 자물쇠 역할은 안 돼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309일 동안 크레인 농성을 벌인 김 지도위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검찰은 영장 청구가 불가피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검찰 관계자는 “300일 이상 업무방해를 한 사람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과거 사례와 통상적 기준을 감안했을 때 영장 청구가 결코 무리한 조치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특히 “노사 합의와 회사 측의 탄원서 제출 등 기각 요인이 있다고 해서 영장 청구를 포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처럼 원칙대로 처리했다고 강조하지만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각은 호의적이지 않다.  “검찰이 공안본색을 드러내며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검찰 출신인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까지 “김진숙씨 영장 청구는 유감”이라고 어깃장을 놓았을 정도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시를 저해할 수 있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하며 ‘검찰 때리기’에 동참했다. 이 같은 여론 동향을 감지한 검찰은 “허위사실 유포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고 이로 인해 심각하고 중대한 명예훼손 행위가 발생할 경우에만 구속수사 하겠다는 뜻”이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또한 종로경찰서장 폭행사건 가담자의 영장도 기각되어 다시 한 번 논란이 일었고, 최근 한미FTA 반대 시위 참가자를 연행하며 논란을 빚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사안까지 언급하며 사법처리 운운하고, 허위사실 유포로 민사상 손해가 발생할 경우에도 법률적 지원을 하겠다고 검찰이 밝힌 것은 한미FTA 반대 진영에 대한 협박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안기조 강화하는
MB의 수호신(?)들


일각에서는 검찰이 공안수사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한상대 검찰총장을 비롯한 지휘라인의 인적 구성이 공안기조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 정권에서 이른바 ‘성골’로 대우받는 TK·고려대 출신이 공안 라인에 다수 포진해 검찰의 공안 기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려대 출신인 한 총장은 실제로 지난 8월 취임사에서부터 검찰이 ‘체제의 수호자’라고 자처하며,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밝히며 “공안역량을 정비하고, 일사불란한 수사체제를 구축하여 적극적인 수사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장동엽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는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주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검찰을 체제의 수호자라고 주장한 듯 보이는데,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른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활동을 넘어서는 발상은 위험하다”며 “체제의 수호자라는 개념 자체가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써왔던 구시대적 구호로 검찰총장이 할 말은 아니다”라고 비판했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공안사건을 취급하는 서울중앙지검에도 역시 TK·고대 출신의 최교일 지검장이 배치돼 한 총장과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
 
공안업무에 관해 한 총장과 수시로 의견 교환을 하는 권재진 법무장관, 정진영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구 출신에 경북고 선후배 사이로 검찰 내 TK 세력의 ‘대부’로 통한다. 길태기 법무차관 역시 고려대 출신으로 권 법무장관을 보필하고 있다.

또한 서울중앙지검 정점식 2차장검사 경남 출신이며 굵직한 공안사건을 책임지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도 고대 출신의 이상호 부장검사가 지휘하고 있다. 변창훈 공안2부장 또한 경북 예천 출신의 대구 지역 고등학교 출신이다.

임정혁 대검 공안부장은 서울출신에 서울대를 나왔지만 전국 공안수사를 관리하는 이진한 대검 공안기획관도 고대 출신으로 한 총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이 기획관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지휘했다.

이처럼 다수의 TK·고대 출신이 공안라인의 주요 요직을 맡고 있으며 이 대통령의 의중을 잘 수행하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공안수사에 대해 출신지역과 특정 대학을 염두에 두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강조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공안사건이든 특수사건이든 일반 형사사건이든, 정치적 정무적 판단을 배제하고 원칙대로 수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뒷문 걸어 잠그는
자물쇠 역할은 안 돼


검찰의 해명에도 논란과 의혹의 시선은 커지고 있다.

집권후반기 레임덕을 맞이하는 이 대통령이 갖은 비난에도 자신들의 측근을 사정기관 수장으로 임명하고 수뇌부에 배치시키고 공안기조를 강화하는 이유는 레임덕을 최소화 하고 자신의 측근 인사들을 내정해 뒷문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정라인 지휘부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권 말기마다 쏟아지던 최측근 비리에 대해 무게중심을 잡고 대처해야 할 것이지 현 정부의 뒷문을 걸어 잠그는 자물쇠 역할에 그쳐선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정진영 민정수석과 권재진 법무장관, 한상대 검찰총장 등은 공정성에 각별히 신경을 써 ‘법 앞에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 ‘사법권의 위상’을 스스로 지켜나가야 할 것이란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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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