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떨고 있는 지자체장 백태

겉으론 보무당당 속으론 전전긍긍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지사의 혐의는 지난 지방선거 때부터 시작됐고, 당선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이 지사가 선거과정서 불거진 의혹으로 경찰수사를 받게 되면서 몇몇 당선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이 지사처럼 선거 당시 제기된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당선인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난 6·13지방선거는 여느 선거 때와 다름없이 혼탁했다. 특히 후보 간 ‘의혹 공방’이 첨예했다. 당선인들은 치열한 선거전 끝에 당선의 기쁨을 맛봤지만 후유증을 남겼다. 선거를 치르면서 고소·고발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선거 이후 수사에 착수했다. 몇몇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일부는 검·경 수사를 받는가 하면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끝나지 않은 선거
고소·고발 난무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된 사건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건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이 지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때 이름을 날렸고, 잠룡으로 불리며 대권 주자로 수직 상승했다. 

이 지사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며 경쟁력을 과시했지만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밀려났다. 이 지사는 6월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재기에 성공했다.

이 지사는 당선 이후 성남시장 시절 선보였던 ‘성남형 복지 정책’을 경기도에 안착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 지사는 선거 과정 당시 불거진 의혹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지사는 ‘여배우 스캔들’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의혹 등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지난 12일 이 지사는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 재직 당시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는 의혹에 따른 수사였다. 경기 분당 경찰서는 이 지사의 자택과 성남시청 통신기계실 등 4개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이 이 지사의 친형 의혹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른미래당 성남적폐진상조사특별위원회의 고발에 따른 것이다. 특위는 지방선거가 열리기 3일 전인 지난 6월10일 이 지사를 허위사실 공표죄 등으로 고발했다. 이 지사가 친형 강제 입원 의혹을 부인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지사는 이날 오전 자택을 나서며 “사필귀정을 믿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지사는 “이명박·박근혜정권 때도 문제가 되지 않은 사건인데, 6년이 지난 이 시점서 왜 이런 과도한 일이 벌어지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경찰은 이번 압수수색이 지난 7월 있었던 압수수색의 연장선이라고 밝혔다. 당시 경찰은 분당보건소와 성남시정신건강증진센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성남남부지사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벌인 바 있다.
 

이 지사는 지난 16일엔 자진 ‘신체검증’에 나섰다. ‘여배우 스캔들’의 당사자인 배우 김부선씨가 제기한 신체 비밀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신체 비밀 논란은 지난 4일, SNS 트위터 등에서 퍼진 김씨와 공지영 작가의 음성파일이 단초가 됐다. 

음성파일에서 김씨는 “이 지사의 신체 한 곳에 큰 점이 있다”며 “법정서 최악의 경우 꺼내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지사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및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진흙탕 선거, 당선 되고도 노심초사
직접 신체 검증…의혹 일축에 안간힘


이 지사는 이날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웰빙센터 진료실서 7분간 신체 검증을 받았다. 신체 검증을 위해 아주대 성형외과·피부과 전문의 각각 1명씩 참여했다. 검증에 참여한 아주대학교 의료진은 “녹취록에 언급된 부위서 점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동그란 점이나 레이저 흔적, 수술 봉합, 절제 흔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용 경기도 대변인은 “오늘 공개검증은 더 이상 불필요한 논란으로 도정이 방해받아선 안 된다는 이 지사의 확고한 결심에 따라 진행됐다”며 “자연인 이재명에게 매우 참담하고 치욕스런 일이지만 공인으로서, 도지사로서 책무를 다하고자 검증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이 명백하게 밝혀진 만큼 소모적 논란이 모두 불식되길 바란다”며 “이 지사가 차분하게 도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이 지사는 ‘혜경궁 김씨’ ‘조폭 유착설’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이 지사는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강경 대응하는 모양새다. 경찰 수사에 따라 불가피하게 입장을 밝히는 것과 다소 결이 다르다. 

이 지사는 ‘의혹의 꼬리표’를 잘라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여러 의혹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으면서 도정활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지사가 지난 8일 맞이한 취임 100일에서도 그간의 성과와 함께 각종 논란들이 언급됐다.

당선 후 의혹
수사 받기도

이 지사 외에 지방선거 전후 불거졌던 의혹으로 수사를 받게 된 당선인들이 다소 존재한다. 이 지사처럼 자택 등을 압수수색 당한 경우부터 검찰에 송치되거나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는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김진규 울산 남구청장은 공직선거법위반과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자택 등을 압수수색 당했다. 울산지방검찰청 공안부는 지난 13일 오전 수사관들을 김 구청장의 집무실과 남구에 있는 자택 등에 보내 2시간가량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울산시선관위가 지난 4일 김 구청장과 선거사무원 1명, 선거사무소 자원봉사자 2명을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에 따른 조치다. 김 구청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서 당선된 단체장 가운데 전국서 최초로 선관위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사례가 됐다. 
 

김 구청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 과정서 선거사무원과 선거사무소 자원봉사자 등에게 선거운동의 대가로 1600여만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매수 및 이해유도죄)에 따르면 후보자가 자원봉사자에게 선거운동과 관련해 대가를 제공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매길 수 있다.

회계책임자가 아니었던 자원봉사자 2명은 지난 3∼5월까지 선거운동 물품 제작비 등 총 140여건과 8700여만원에 이르는 선거비용을 지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구청장은 예비후보 당시 회계책임자를 겸임했는데, 이들이 이를 대신해 선거비용을 지출한 것이다. 

정치자금법(선거비용 관련 위반행위에 대한 벌칙)에 따르면 회계책임자가 아닌 자가 선거비용을 지출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김 구청장에 대한 압수수색 소식이 이어지자 지역 야당은 크게 반발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울산광역시당 김종섭 대변인은 김 구청장의 압수수색이 있던 다음날 논평을 통해 “이쯤 되면 김 구청장의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며 “스스로의 사퇴가 답”이라고 잘라 말했다.

울산시 남구의회 한국당 소속 의원들도 김 구청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안대룡 부의장 등 7명은 지난 16일 남구청 프레스센터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구청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직접 해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부의장은 “이 사태가 길어지면 남구민들은 행정에 불신을 느낄 것”이라며 “김 구청장 혐의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달라”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울산시당은 일단 수사를 지켜보자며 조심스러운 모양새다.

김 구청장은 이 외에도 지난 7월 허위학력 게재 혐의를 받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바 있다. 김 구청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행한 선고 공보와 벽보, 명함 등과 SNS에 허위학력을 공표한 혐의를 받았다.

주택 16채를 소유해 화제가 된 백군기 용인시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다가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백 시장을 지난 15일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백 시장에게 유사기관 설치 금지 및 사전 선거운동 혐의를 적용했다. 백 시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지지자 10여명이 참여한 유사 선거사무실을 활용해 유권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등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백 시장은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고 있다. 백 시장은 확정되지 않은 계획을 홍보한 바 있기 때문이다. 백 시장은 올해 5월 ‘세종고속도로에 용인 모현·원삼 나들목을 설치하겠다’고 언론에 알리거나, 선거 공보물에 ‘흥덕역 설치 국비확보’라고 홍보하는 등 확정되지 않은 계획을 공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송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취임 100일
검 들락날락

백 시장은 두 혐의에 따라 경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백 시장은 경찰 조사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이 유사기관 설치 금지와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적용한 까닭은 전 용인시 간부급 공무원 A씨의 조사를 통해서다. 

A씨는 유사 선거사무실서 활동하면서 용인시민의 개인정보 등을 확보해 백 시장에게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다.

백 시장은 지난 10일 ‘100일 취임 기자간담회’서 각종 의혹들에 대해 해명했다. 백 시장은 이날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선 강하게 부인했다. 백 시장은 “흔들림 없이 시정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역 사회 일각에선 백 시장을 ‘신(新) 적폐’로 규정하며 비판하고 있다. 지난 2일 출범한 ‘용인시민모임’은 이날 시청 브리핑실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백 시장에 대한 공정수사를 촉구했다. 백 시장에 대한 선거법 수사의 단초를 제공한 제보자로 알려진 김현욱 전 경기도의원은 이 모임의 상임대표를 맡았다.

시민모임은 이날 유인물을 통해 “백 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관련한 경찰 조사에서 누락된 부분과 추가 위반 내용에 대한 공정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백 시장의 구속수사 촉구와 법적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 등에 대한 계획도 설명했다. 
 

시민모임은 “민주시민세력, 합리적 진보세력, 야당 등과 연대해 신 적폐세력 퇴진 운동을 펴겠다”며 향후 백 시장에 대한 적극적 비판 활동을 예고했다.

조인묵 양구군수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검찰에 송치됐다. 강원 양구경찰서는 조 군수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조 군수는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직접 쓰지 않은 책을 편저자인 것처럼 출간해 선거에 당선될 목적으로 출판기념회를 연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를 받고 있다.

책 출간을 공모한 B씨 역시 같은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조 군수는 이 같은 혐의로 지난달 6일 경찰에 출석해 3시간30분가량 조사 받은 바 있다. 조 군수와 B씨는 지난 8월부터 9월초까지 양구경찰서에 출석해 조사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 군수는 “단순히 원고를 구입해 출판기념회를 연 것이 아니다”라며 “당초 원고 내용과 개인적 기획 의도(고전 분야)에 맞게 출판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쳤고, 내용도 대폭 수정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 군수는 “검찰에 가서도 있는 사실 그대로 진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조 군수는 지난해 12월 양구군수 출마를 선언하며 지난 2월출판기념회를 가졌다. 당시 조 군수는 <육도삼략-6가지 지혜로 3가지 전략을 얻어라>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출마예정자였던 조 군수는 “공직은퇴를 전후해 고향 양구서의 삶을 계획하고 양구의 미래를 꿈꾸며 평소 즐기던 고전들을 읽게 됐다”며 “그 과정서 만난 지혜들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출판배경을 밝혔다. 

이윤행 전남 함평군수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았다. 이 군수는 지난 2016년 지인들에게 신문사 창간을 제안하고, 창간 비용으로 500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지난 3월 불구속 기소됐다. 이 신문사는 당시 현직이었던 안병호 전 군수를 비판하는 글을 다수 게재했다.

검경 수사부터 당선 무효형까지
공소시효 끝나는 12월까지 주목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합의부 김희중 판사는 지난달 17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군수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언론매체를 선거에 이용해 지지기반을 형성하고 공론화의 장에서 민의를 침해한 범죄로 매우 불량하다”면서도 “다만 금품제공 시점이 6월 지방선거 2년6개월 전이고, 안 전 군수가 선거에 불출마해 영향을 미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직 군수로 군정을 수행해야 하고 형이 확정되지 않은 점, 방어권 보장 등을 감안해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이 군수는 1심 선고 이후 입장문을 통해 “저는 분명히 법을 범하지 않았고, 재판부서도 제 유죄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군수직을 그대로 수행토록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군과 군민만을 바라보며, 제 소임을 다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군수의 항소심은 내달 1일 열린다.

선거 공소시효
얼마 남지 않아

6·13지방선거와 관련된 선거 사범의 공소시효 만료일은 오는 12월13일까지다. 공직선거법 제 268조에 따르면 선거 사범의 공소시효는 선거일 후 6개월이다. 곳곳에선 지방선거 관련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정당국은 공소시효 만료일까지 수사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면서 그 결과에 따라 지역 사회는 한 차례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장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직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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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