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박상미 기자]배슬기는 지난 시간에 감사할 줄 아는 배우다. 예능인으로 화려하게 시작한 연예계 생활에 이어 푸른 꿈을 안고 나섰던 해외 활동 등 지난 몇 년간 아플 일도 많았지만, 그저 고마움으로 추억하며 신발끈을 동여맸다. 지난 6월 종영한 드라마 <최고의 사랑>으로 오랜만에 얼굴을 내비치는가 싶더니 11월에는 영화 <커플즈>로 국내 스크린 신고식도 치렀다. 그뿐인가. MBC <심야병원>에서는 비밀의 키를 가진 여인으로 분해 깊이 있는 연기를 펼치는 등 그야말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맹활약 중이다.
브라운관 이어 스크린 도전, 2011년 연기자로 본격 행보 시작
스케줄 틈틈이 모니터 삼매경, 연기하는 사람으로 오래 남고파
그저 촬영 현장이 좋았어요. 카메라가 움직이는 순간, 묘한 긴장과 그들의 감정이 뒤섞여 완성된 배우의 ‘향기’로 가득찬 공간이었죠.”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행복했던 이름 없는 단역이었던 10대 소녀는 10년 후 자신이 기웃대던 카메라를 오롯이 차지한 배우가 됐다. 그렇게 ‘구경꾼’으로 시작한 배우의 길이 이제 배슬기의 업이 됐다. 드라마에 이어 영화, 그리고 다시 드라마로 배슬기의 종횡무진 활약이 2011년 희망찬 첫 포를 터트렸다.
슬기는 지금 공부 중
이제 20대 중반이다. 소녀와 여자의 중간 즈음에 서있는 배슬기가 연기자로 팬들 앞에 다시 섰다.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최고의 사랑>으로 신고식을 마친 후 영화 <커플즈>와 MBC 드라마 <심야병원>을 통해 쌍끌이를 노리고 있다. 올 하반기만 벌써 세 번째 작품이다. 공백기가 없는 활동 탓인지 체중이 많이 줄어 걱정이지만, 그보다는 연기를 한다는 즐거움이 더 큰 요즘이다.
“지금은 많이 배워야 하는 때라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제 연기의 폭이 많이 좁다고 느껴요.”
배슬기는 소위 말하는 ‘자세’가 되어있는 신예다. 호기심에 시작한 연기 수업이 재미가 되고 그녀의 꿈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언젠가는 꼭 연기를 하겠다’던 소녀는 고인 물이 되고 싶지 않아 가수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고, 다시 연기자로 무대를 옮겼다. 수년에 걸친 고군분투가 새싹 특유의 열정에 겸손을 적당히 버무려 신인 연기자 배슬기를 완성했다.
배슬기는 현재 출연 중인 <심야병원>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심야병원>은 5명의 작가와 PD가 각각 2인 1조, 5개의 팀을 이뤄 2회씩 로테이션 되는 독특한 방식의 드라마다. 드라마를 이끄는 선장이 바뀌다 보니 촬영 현장의 분위기도 타 작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촬영장에서는 제작진, 출연진 할 것 없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화면을 완성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어느 촬영장보다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 같아요. 비중이 작은 역할을 맡은 저까지 제작진이 많이 신경을 써줘서 캐릭터를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배슬기가 연기하는 이광미는 유명 대학 출신 간호사이지만, 어쩌다 폭력조직 보스와 얽혀 ‘심야병원’으로 흘러들어왔다. 극을 뒤흔들 비밀을 간직한 회심의 캐릭터다. 전작인 <최고의 사랑>에서 맡았던 한미나에 좀 더 깊이를 더하고 한 꺼풀 더 베일을 덮은 모양새다.
비밀스러운 캐릭터이니 만큼 분석이 쉽지 않았을 터. 배슬기는 “혼자서 다 해결해야 했다면 많이 어려웠을 것 같다. 다행히 제작진이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예시를 들어주면서까지 정성스럽게 상담을 해줘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서 “전에는 캐릭터를 가지고 큰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 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한층 넓은 시각을 가지게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매일매일 반성의 의자에 앉아 있는 느낌이에요.”
배슬기는 모든 공을 제작진에게 돌렸지만 모든 성장세의 기본바탕은 본인의 노력이다. 최근 그녀는 취미생활도, 지인과의 만남도 제쳐둔 채 모니터 삼매경에 빠져있다. 촬영장에서는 자신의 연기를 꼼꼼히 모니터 하고, 촬영 일정에 없는 날이면 다른 선배들이 연기했던 종영 드라마를 몰아보며 연기 공부에 한창이다. 이제는 제법 연기의 흐름을 읽는 눈도 생겼다.
흰색 아닌 무색
배우의 향기를 좇아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배슬기는 이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촬영 현장에 가득한 그네들의 것이 아닌 본인만의 향기,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짐을 꾸렸다. 오랫동안 신기하리만치 자신을 믿어주는 팬들과 10년 후, 2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 발 한 발 단단하게 내디딜 각오다. 그렇게 ‘연기를 하는 사람’으로 대중의 곁에 남고자 한다.
“지금은 내 색깔을, 내 이야기를 내세울 주제가 못 돼요. 그 때 그 때 주어지는 역할에 충실하다보면 알아주시겠죠? ‘아, 배슬기는 이런 배우구나’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