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농단’ 몸통 4인방 수사 관전포인트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0.08 10:12:17
  • 호수 1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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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못 먹어도 고’…법원은 ‘쇼당’?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검찰이 사법 농단 몸통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관들을 향한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그동안 답보상태였던 사법 농단 수사에 물고가 텄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사를 받게 될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혐의를 살펴봤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달 3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차량, 박병대 전 대법관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사무실, 고영한 전 대법관의 서울 종로구 주거지, 차한성 전 대법관의 법무법인 태평양 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 차량에 대해서만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고 주거지 부분은 기각됐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주거의 안정성과 증거가 남아있을 개연성이 적다는 이유를 기각 사유로 든 것으로 전해졌다.

[양승태]
[정치판사 노릇?]

양 전 대법관은 사법 농단의 몸통이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양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를 통해 일선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준 의혹이 있다. 허위 증빙 서류를 통해서 수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단서가 검찰에 적발됐다. 

박근혜정부의 요구에 따라서, 대법원 재판 결과를 결정해줬던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도 있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고 검찰이 이를 집행한 것은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전직 대법관들이 이번 사건의 피의자로 공식화됐음을 뜻한다. 검찰에 피의자로 소환돼 조사를 받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해 이날 압수수색을 당한 세 대법관이 받는 혐의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대법관들 사상 초유 정조준
수사선상 오른 4명 의혹은?

양 전 대법관은 ‘정치 판사’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그는 실제로 반헌법행위자열전에 헌법 파괴자 명단에 올랐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에 따르면 양 전 대법관은 박정희정권 시절 6건의 간첩 조작 사건 재판을 주관했고, 12건의 긴급조치 위반 사건 판결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편찬위원회는 양 전 대법원장을 대한민국 사법사상 ‘최악의 대법원장’으로 선정했다.  

양 전 대법관은 1970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같은 해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법관으로 임용돼 1975년 11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법복을 입은 후 대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제주지방법원, 사법연수원, 법원행정처, 부산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서 판사로 근무했다.
 

1998년 IMF 구제금융사건 당시 서울지방법원 파산부 수석부장으로 재직했고, 2002년 부산지방법원장 등을 거쳐 2003년 특허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2005년 2월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2009년 2월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이 됐으며, 2011년 9월25일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대법원장에 올랐다. 2017년 9월24일 퇴임했다.


[박병대]
박 비선 챙겼나

박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비선 진료’ 박채윤씨 소송을 챙겨줬다는 의혹이 있다. 더불어 대법원 내부의 현금으로 은밀히 관리하던 비자금 조성 기획 및 실행을 주도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통해 다른 재판연구관이 공무상 비밀이 담긴 박씨 특허소송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게 해 공무상 비밀누설과 직권남용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런 내용을 유 전 연구관의 사전구속영장에 포함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설 연휴 직후인 2016년 2월11일, 우병우 전 수석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후 우 전 수석은 박 전 대법관에게 직접 전화한 다음 다시 박 전 대통령에게 전화한 통화내역을 검찰이 확인했다. 

같은 날 오후 박 전 대법관이 자신의 업무용 컴퓨터서 법원 내부게시판 ‘코트넷’에 접속해 박씨의 옛 동료인 김모씨 업체가 박씨 업체 ‘와이제이콥스메디칼’을 상대로 낸 등록무효 특허소송 사건번호를 입력한 로그기록도 확인됐다.
 

당시 법원행정처 처장이던 박 전 대법관은 박씨가 피고인 특허소송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박씨의 부탁을 받고 우 전 수석에게 “박씨 사건을 챙겨보라”고 지시했고, 우 전 수석을 통해 이를 전달받은 박 전 대법관이 사건을 직접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1979년 21회 사법고시 합격했다. 1982년 9월 육군 법무관으로 군복무했으며, 1985년 9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했다. 박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의 주요 보직을 모두 거치며 양 전 대법관 뒤를 이어 차기 대법원장 0순위로 꼽히기도 했다. 

[고영한]
판사 비리 덮었나

고 전 대법관은 부산 법조비리 은폐 의혹 사건 당시 법원행정처 처장으로 고등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무마한 의혹이 있다. 2016년 부산지역 건설업자와 유착한 판사 비리가 알려지자, 당시 건설업자의 항소심 재판에 부산고등법원장 등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전달하는 등 재판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 8월30일 윤인태 전 부산고법원장은 검찰에 출석해 2016년 9월쯤 고 전 대법관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고, 고 전 대법관 요구사항을 사건을 심리 중인 재판부에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 고 전 대법관은 전국교직원노조 법외노조 소송에도 개입한 의혹이 있다. 검찰은 2014년 9월 전교조의 법외노조처분 효력을 2심 판결 때까지 정지시킨 서울고법 결정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재항고한 사건서, 법원행정처가 재항고이유서를 대필해준 의혹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청와대가 재항고이유서를 고용부에 직접 전달해 대법원에 접수한 정황을 포착한 상태다. 당시 문건은 ‘청와대 법무비서관-고용노동비서관-고용부’ 순으로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법원행정처서 작성한 문건이 청와대를 통해 고용부에 전달됐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지난 8월26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은 재항고 사건 주심이었던 고 전 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발부되지 않았다.

고 전 대법관은 1979년 21회 사법고시에 합격, 같은 해 2월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했으며 2012년 8월 대법관에 올랐다. 2016년 2월∼2017년 5월까지 법원행정처 처장을 지냈다. 

[차한성]
강제징용 묵살?

차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처장이던 시절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이른바 ‘삼청동 공관회동’에 참석해 강제징용 사건 결과를 바꿔야 한다는 등의 논의를 했다고 의심받고 있다.

차 전 대법관은 2013년 12월1일 오전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서 김 전 실장을 만나 “국외송달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징용소송의 심리불속행 기간을 넘길 수 있다”는 취지로 제안했다. 국외송달은 소송 관계 서류의 내용을 당사자에게 서면으로 알리는 여러 가지 송달 방법 중에서 재외공관 등을 통해 해외에 있는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당시 공관 회동은 같은 해 11월 말 “징용소송이 2012년 대법원 판결대로 결론 나면 한일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김 전 실장이 소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실장은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전원합의체에 넘겨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기존 판단을 뒤집어달라고 요구했다. 차 전 대법관은 여기에 국외송달이라는 절차적 문제를 구실 삼아 자연스럽게 청와대 뜻을 관철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화답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차 전 대법관은 1975년 17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80년에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래 판사를 하다가 사법정책연구실장, 법원행정처 차장을 거쳐 대법관에 임명돼 2011년 법원행정처 처장으로 3년간 재직한 차한성은 2014년 3월 대법관 임기를 마쳤다.

100여일 만에…
압수수색부터

그동안 사법 농단 수사는 답보상태였다. 지난 6월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 표명 이후, 검찰이 사건을 특수부로 재배당하고 수사를 본격화한 지 4개월 만에 ‘윗선’ 수사가 이루어졌다. 

한 정권의 각종 의혹사건 종합판에 해당하는 국정 농단 수사가 최순실씨 출석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5개월 정도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법 농단 수사는 이례적으로 속도가 늦은 셈이다.

수사가 진척되지 않았던 것은 대법원의 자료 제출 불응과 법원이 고비마다 압수수색영장을 계속 기각했기 때문이다. 사법 농단 수사 이후 두 달간 서울중앙지법의 압수수색영장 기각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두 배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7∼8월 검찰이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한 압수수색영장 4159건 중 883건이 일부 기각, 96건이 전부 기각됐다. 둘을 합친 기각률은 23.5%로, 6월 18일 사법농단 수사가 시작된 후 매달 상승세(6월 19.9%→7월 22.3%→8월 24.7%)다. 

4개월 만에 윗선으로 
최순실 때보다 느려

기각률이 증가한 이유는 사법 농단 관련 영장이 연이어 기각됐기 때문이다. 사법 농단 관련 영장을 심사하는 서울중앙지법 박범석·이언학·허경호 판사는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이 90%에 달한다. 그 사유도 “임의제출 가능성이 있다”거나 “죄가 안 된다”는 등 이례적이어서 ‘방탄 법원’ 논란을 일으켰다.

검찰은 ‘수사 방해’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정면 돌파를 택했다. 기존 특수 1·3·4부 소속 사들로 구성했던 사법 농단 수사팀에 특수2부 송경호 부장검사 등 소속 검사 일부와 방위사업수사부 소속 검사일부를 추가로 투입했다. 

사법 농단 의혹 수사팀 검사는 총 3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최순실 특별수사본부'와도 견줄 규모가 됐다. 최순실 특수본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해체 후 단일 수사팀으로서는 최대 규모로 꼽힌다. 

수사팀은 저인망식 수사로 방향을 선회했다. 관련자를 먼저 소환조사해 혐의를 소명한 뒤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 받아내는 등 통상과는 달리 우회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이어갔다. 그동안 사법농단 실무를 담당한 전·현직 법관 50여명을 소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정면돌파는 어느 정도 성과를 봤다. 9월 중순 대법원 일부와 현직 부장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성공했다. 이어 사상 초유로 전직 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에 이르렀다. 

검찰이 집행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의 피의 사실에 재판거래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박·차 전 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 구체적으로 재판거래 혐의가 적시됐다. 

해당 혐의에는 일제 강제 징용 재판과 헌법재판소 관련 내용도 있다. 과거 법원행정처가 강제 징용 소송 지연에 개입하고 과거사 재판 관련 헌재에 압력을 행사하거나 관련 평의 내용을 빼낸 행위 등의 최종 책임자가 양 전 대법원장이라고 검찰이 판단한 것이다.

정권과 거래
직접 나섰나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에 대한 강제수사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검찰은 전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처장 등 대법관에 대해 강제수사를 법원이 허가한 것은 재판거래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앞서 법원은 이번 의혹과 관련한 압수수색 영장을 '죄가 안 된다'는 이유를 대며 수차례 기각했다. 이런 상황서 법원이 검찰에게 전직 사법부 수뇌부의 수색 영장을 발부한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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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