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 기죽은 야당 실상

여기저기 끼지 못하고…유령 취급?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거대 양당이 정기국회의 쟁점 이슈를 선점하면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존재감이 미약해지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새 지도부 체제를 중심으로 도약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바른미래당은 ‘당 정체성 논란’이 최근까지도 끊이질 않고 있다. 민주평화당은 현직 국회의원들의 ‘탈당설’이 제기되면서 뒤숭숭한 분위기다.
 

지난 20대 총선 결과 다당제 국회가 출범했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과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이 등판하면서 국회는 다당제 체제가 됐다. 다당제 국회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다. 다양한 정책적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다당제의 이점으로 꼽히는 협의와 합의를 국회에 녹여내기 어렵다는 우려가 공존했다. 다당제 국회는 지방선거와 북한의 비핵화 등 굵직굵직한 이슈를 통과했고, 최근 정기국회의 문을 열었다.

출범 이후
연일 제자리

바미당과 평화당은 존재감을 좀처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10월 정기국회의 첫 일정인 대정부질문서부터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그림자에 가려진 형국이다. 

게다가 두 당 내부에선 정기국회를 관통하면서 잡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지지율은 연일 답보상태다. 바미당과 평화당은 정기국회를 통해 가시적인 전환을 모색하는 모양새지만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바미당은 손학규호 출범 이후 내부 결속 다지기에 나섰다. 바미당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 합당 이후 내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선 당내 갈등이 후보 간 갈등으로 번졌고, 지방선거 참패로 이어졌다.


바미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돌입해 당 재건에 나섰다. 이후 바미당은 지난 9·2전당대회를 통해 손학규 대표를 신임 당 대표로 선출했다. 손 대표는 취임 이후 첫 당직 인선서 사무총장에 바른정당 출신 오신환 의원을, 비서실장에 국민의당 출신 채이배 의원을 지명했다. 

전당대회 과정서 불거진 계파갈등을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실제로 손 대표 취임 이후 당내 잡음은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최고참’인 손 대표는 당 전면에 나서면서 당내 갈등을 진화해 호평을 받았다.

다만 당의 완전한 화학적 결합은 요원해 보인다. 최근 바미당 내에선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 문제를 놓고 의원들 간 마찰이 있었다.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지난달 6일 국회 본회의장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여야 모든 정치 세력이 한뜻으로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고, 한국의 강력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자는 대통령과 여당의 요청에 바미당은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김 원내대표는 비핵화의 진전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준안 처리가 한미 동맹의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며 “국회 결의안을 채택하고, 이후 비준 동의를 논의하자”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의 연설이 있던 날 바미당 지상욱 의원과 이언주 의원은 국회 비준 동의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한반도 비핵화 달성이라는 당의 정강·정책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이 의원 역시 “북한의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상황서 국회가 힘을 실어줄 때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가 비핵화 진척 정도를 짚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손 대표는 같은 날 소상공인·자영업자 직능단체 대표자들과 정책간담회를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우리 의원들은 애국심과 애족심, 애당심을 가져야 한다”며 사실상 지 의원을 겨냥했다. 

민-한 거대 양당 그림자에 존재감 흐릿
바미당, 정기국회서도 당내 잡음 여전

이에 지 의원은 다음날 SNS 페이스북을 통해 “손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애국심, 애당심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며 공개 질의했다. 손 대표는 다음 날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 의원의 공개질의와 관련된 질문에 웃으면서 “됐어, 됐어”라며 즉답을 피했다. 당 의원과 당 지도부가 서로 맞서는 양상이었다.

바미당 지도부는 진화에 나섰지만 최근까지도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 여부에 이견이 있었다. 당내 갈등의 중심에 섰던 지 의원은 지도부의 ‘재신임’을 묻기도 했다. 바미당은 지난 1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서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김 원내대표는 “판문점 선언 및 평양공동선언 비준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며 “마치 당장 처리를 해 줄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논의를 시작하자는 말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내 이견과 갈등을 감안한 듯 ‘의결’보다 ‘논의’에 초점을 맞췄다. 

김 원내대표는 ▲판문점 선언 비준안 비용추계 재산정 ▲북측, 국회 비준과 동일한 효력 갖는 국내법적 절차 진행 ▲북한의 현재 핵 불능화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등 세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하며 비준동의에 있어 신중한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 의원은 전제조건에 대해 “대한민국과 달리 북한은 김정은 1인 체제 국가다. 국내법적 절차는 사문화될 수 있는 소지가 많아 효력이 발생하기 어렵다. 핵 불능화의 노력이란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주셔야 한다”라며 조목조목 따졌다. 

특히 “(김 원내대표가) 기자들한테 비준을 꼭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다니신다는 얘기도 기자들을 통해서 들려온다. 해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판문점 비준안
갈등 수면위로

그는 “원내대표님과 모든 당직자 분들도 개인의 의견이 마치 당의 뜻인 것처럼 오해가 되는 처신을 신중하게 해주시면 좋겠다”며 “또 그런 일이 생길 때는 신임을 여쭙지 않을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번 사안을 통해 바미당은 완전한 결합을 이뤄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각에선 “당 발전을 위한 건전한 갈등”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안의 무게감을 놓고 봤을 때 하나 된 목소리가 나오지 못한 점은 간과하기 어렵다.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 문제는 이번 정기국회의 최대 쟁점 중 하나로 꼽힌다. 바미당은 정기국회의 중대한 사안을 두고 불협화음이 짙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당 의원이 지도부를 향해 당의 ‘정강·정책’을 언급하며 비판한 것은 당내 통합이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평화당은 최근 일부 현역의원들의 ‘탈당설’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평화당 의원들의 탈당설은 지난 추석 연휴 전후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은 평화당 김경진·이용주 의원이었다.

김 의원의 경우 추석 연휴 때 내건 귀성인사 현수막 사건이 도마에 올랐다. 통상 국회의원 현수막엔 당명과 당 로고, 당 고유색 등이 실린다. 그러나 김 의원의 귀성인사 현수막엔 당명, 당로고가 빠져있었다. 

당 고유색도 평화당을 상징하는 연두색이 아닌 파란색이었다. 김 의원의 현수막은 파란색 바탕에 ‘고향방문을 환영합니다. 국회의원 김경진 올림’이란 글자가 적혀있을 뿐이었다. 평화당 소속인 점도 드러내지 않은 채 ‘국회의원 김경진’이라고 명시했다. 
 

이를 두고 김 의원의 탈당설에 힘이 실렸다. 일각에선 현수막 바탕색이 파란색인 것을 두고 차후 행선지를 민주당으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이 의원은 지난달 27일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해 탈당설 내막을 공개했다. 이 의원은 “추석 명절 이전 본회의가 있었는데 저를 비롯한 김 의원과 몇몇 의원들이 본회의 도중에 모여 티타임을 가졌다”며 운을 뗐다. 

이 의원은 “티타임 중 바미당발, 평화당발 향후 정계개편은 어떻게 될지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고갔다”며 “다당제 체제가 필연적으로 양당 체제로 회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12월 기점으로
탈당설 솔솔!

이어 “그렇다면 12월 쯤 현실화될 것이기 때문에, 김 의원은 어차피 그리 될 바에야 조금 일찍 탈당이라든지 정계개편의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의원은 “향후 정계개편의 여부는 정기 국회서 선거제도 개편 여부에 달려있고, 이 부분에 대한 민주당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란 이야기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평화당 의원들의 탈당 의사가 당장 확실시된 것은 아니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의원은 공통점이 제법 있다. 김 의원과 이 의원 모두 검사 출신이다. 김 의원은 광주지검서, 이 의원은 서울고검서 부장검사를 지냈다. 이후 두 의원은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나란히 2016년 총선에 출마, 국민의당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 의원과 이 의원의 의정활동서도 이들의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이른바 ‘청문회 스타’다. 김 의원과 이 의원은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서 활약한 바 있다. 김 의원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질의 과정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여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는 청문회를 통해 ‘쓰까요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의원 역시 청문회서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에게 문화계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를 연이어 18번 질의해 자백을 받아낸 바 있다.

평화당 초선의원들의 탈당설이 불거지자 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1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서 “(초선의원들이)지금은 탈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의원은 “약 한두 달 전부터 초선의원 몇 사람이랑 (탈당과 관련한)상의를 했다”며 “당내에 남아서 노선투쟁 같은 것을 해도 좋지만 탈당은 하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정계개편서 어떤 기회가 오면 함께 당에서 노력해보자고 했다”고 밝혔다.

평화당, 현역 의원 탈당설로 어수선
선거개편 주장하며 분위기 반전 시도

맥락을 살펴보면 평화당은 선거제도 개편 여부를 정계개편의 시발점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해 의원수를 늘려 교섭단체 지위 확보를 노린다는 해석이다. 바미당 역시 선거제도 영역서 자유롭지 못하다. 좀처럼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지 못하는 상황서 현행 선거제도로 총선을 맞이하기엔 무리가 있다.

지난 1∼2일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진행한 10월 1주차 주중집계에 따르면 바미당과 평화당의 지지율은 각각 6.0%, 2.5%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유권자 1만2462명에게 통화를 시도해 최종 1003명이 응답을 완료했다. 응답률 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바미당과 평화당은 이번 정기국회서 선거제도 개편을 중앙 이슈로 끌어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두 당은 선거제 개편을 통해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모양새다. 

최근 바미당과 평화당은 정의당과 민중당, 녹색당 그리고 우리미래 등과 함께 지난 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제 개혁 논의를 촉구했다. 이들 정당은 570여개의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개혁공동행동을 결성하고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은 “올해 정기국회에서도 지난 1년간처럼 정치개혁에 관한 논의가 표류한다면, 20대 국회는 명백히 퇴행적인 국회로 기록될 것”이라며 사실상 민주당과 한국당을 압박했다.

바미당 손 대표와 평화당 정 대표, 그리고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손 대표와 정 대표는 각각 바미당과 평화당의 수장으로 자리하면서 선거제도 개편을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이날 손 대표는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정 대표는 사실상 민주당과 한국당을 압박했다.

지지율 답보
돌파구 있나

최근 정 대표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 정의당 이 대표와 함께 지난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대표와 평양 고려호텔 꼭대기 층 술집서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이 대표가)우리 사회를 개혁의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선거제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위해 필요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들의 명단을 미루고 있는 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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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