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주현 기자]한나라당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는 집권당의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심판이라는 실로 엄중한 의미로 해석되며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이 급격히 쇠퇴해 레임덕이 초가속화 되고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이 흔들리며 ‘대안론’이 대두되고 있다. 정권 말미 친이·친박 간 주도권 다툼도 본격화 되었다. 하지만 이는 정권 재창출을 이뤄내 자신의 ‘방호벽’을 쌓기 위해 고심 중인 이 대통령에게는 호재로 다가올 것으로 여겨진다. 겉으로는 ‘낮은 자세’를 운운하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을 MB의 의중을 들여다봤다.
흔들리는 ‘박근혜 대세론’, 미소 짓는 이명박
퇴임 후 ‘방호벽’ 쌓기 안간힘, 기회는 지금!
이번 서울시장 선거 참패는 내년 4·11 총선에서 여의도 권력 지형이 여소야대로 재편되는 데 이어, 12·19 대선에서도 정권 재창출이 무망함을 보여주는 일종의 예고편이 될 수 있는 선거였다.
이는 당장 임기 말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시킬 개연성도 크다. 이 대통령은 레임덕 악화와 집권당의 영향력 약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실패한 정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다가섰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개의치 않고 홀로 ‘마이웨이’ 중이다.
개의치 않는 MB
홀로 ‘My Way’
이 대통령이 선거가 끝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선거 패배 대책 수립도 당과 청와대의 책임론을 제기한 것도 아니었다. 선거 다음날인 27일 이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전혀 개의치 않고 특유의 보은인사와 회전문 인사를 강행했다.
청와대 경호처장에 어청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을 임명했고 지식경제부장관에 홍석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사장을 내정한 것.
하지만 어 처장은 지난 2008년 경찰청장 재임 시절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청와대 진입을 막기 위해 컨테이너를 쌓아 광화문 입구를 막은 일(일명 ‘명박산성’)을 지휘했던 인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소통을 차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강경하다. 자신의 퇴임 후를 지켜줄 인사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또한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임태희 비서실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이 대통령은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인적) 개편”이라며 임 실장을 교체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자신의 심복을 놓치지 않고 곁에 두려는 의중으로 해석된다.
자신을 경호해 줄 경호처장은 최측근 인사로 내정했지만 이 대통령의 가장 큰 목적은 정권 재창출에 있다.
그동안 정권재창출의 키워드는 ‘박근혜 대세론’이었다. 친이-친박이라는 치유할 수 없는 ‘앙금의 골’ 속에 정권 재창출이라는 공동의 관심사만으로 불편한 동거를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계파갈등 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정책현안 등에 대해서도 갈등을 빚어왔다. 그동안 가졌던 7번의 회동 중 5차례 회동에서 갈등을 증폭시켰다.
지난 2007년 12월 대선 승리 후 가진 첫 만남에선 협력관계 정립에 실패했고, 2008년 총선을 전후한 회동에선 공천갈등이 폭발하며 만날수록 둘의 사이는 악화됐다.
그러나 지난해 8월 회동에선 세종시 수정안 등을 놓고 양측의 갈등이 봉합되기 시작했고 지난 6월 유럽 특사보고 회동에서는 ‘정권 재창출’에 뜻을 함께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회동 당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박근혜 대세론이 정점을 찍을 때였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레임덕’을 최소화하고 국정운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 일종의 제스처였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 전 대표도 당시 불거진 ‘여성 대통령 불가설’을 의식했고 대권으로 가기 위해서는 친이계의 지원과 협조가 필요했음을 인식해 이에 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갑’과 ‘을’의 위치가 완전 뒤 바뀐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 참패로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고 친이계가 ‘대안론’을 내세우며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정권 재창출’만이 살 길인 이 대통령으로서는 ‘계륵’과도 같았고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던 박 전 대표와의 동거는 더 이상 무의미 해졌다.
‘MB 계승론’을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관계설정에 임했던 박 전 대표가 뒤통수를 맞은 형국이다.
‘MB 계승론’ 걱정하다
뒤통수 맞은 박근혜
‘미래권력’과의 ‘불편한 동거’를 끝낸 이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자신의 후계자 선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야권에서 벌써부터 ‘정권 심판론’을 운운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 보이는 이 대통령이다.
시기는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친박계 의원들은 ‘선거 패배는 MB 탓’이라며 선상반란을 꾀하고 있지만 이런 움직임은 이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박 전 대표와 등을 돌리게 해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당 내에서도 이러한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는 “박근혜 대세론으로 인해 한나라당이 안주한 것은 사실”이라며 “박 전 대표를 보완할 만한 인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친이계 의원도 “박 전 대표가 집권할 경우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이라기보다는 정권교체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온다”며 “박 전 대표가 패배한 수도권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함께 이재오 전 특임장관, 정몽준 전 대표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중 가장 무게감이 실리고 이 대통령의 히든카드로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김 지사다.
‘박근혜 대안론’에 ‘김문수 역할론’ 대두되는 한나라
‘더 이상 잃을 것 없다’ 후임 밀어주기 박차 가할 듯
김 지사는 수도권에서 단 한 번도 낙선하지 않은 지지기반이 있어 ‘박근혜 수도권 한계론’을 뒷받침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경험은 물론 한나라당의 부자정당 이미지를 불식시킬 만큼 서민계층과 잘 어울린다. 대구와 부산경남을 찾으며 지역민심을 돌봤던 점도 향후 대권행보에 유리하게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달리 학교 무상급식과 관련해 민주당이 다수당인 경기도의회와 타협을 이룬 그의 정치력과 도내 31개 전 시·군을 순회한 택시기사체험 등 현장행정도 주목받고 있다.
김 지사는 대권 의지와 관련해 누누이 “꿈을 이루기 위해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 정치적 계기로 해서 변화가 올 것으로 본다”며 정중동의 스탠스를 취해온 김 지사는 서울시장 선거결과에 “큰 충격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쇄신, 자기혁신이 없으면 미래가 없다”고 밝혔다.
김 지사의 속내가 어떻든 간에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한나라당의 대권구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 그의 ‘역할론’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김 지사가 당장 중앙정치에 뛰어들지는 않겠지만 특강과 한나라당 홈페이지 기고 등의 방식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또 국정의 축소판인 경기도정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받으며 대권으로의 도전은 불가능하기에 일단 도정에 계속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지사직을 조기에 그만둘 경우 역풍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대권 행보를 본격화한 만큼 김 지사도 하루 빨리 나서 지지율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조기등판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근혜의 위기!
이명박의 호재?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지사가 내년 1월을 전후해 대권 출마를 본격화 할 것이란 시각과 총선 직후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김 지사가 대권 출마로 비워진 경기지사 자리는 임태희 비서실장으로 채운다는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처럼 김 지사가 원하든 원치 않던 당내 경선 흥행을 위해 대권 출마가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진다.
10·26 재보선 참패는 박 전 대표에게 위기로 다가왔고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이 대통령에게는 호재로 다가왔다. 친이계의 자신과 우호적인 인물을 내세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이 대통령은 놓칠 리 없다.
이미 국정장악력을 잃어버린 시점에 ‘더 이상 잃을게 없다’는 자세로 후임자 밀어주기에 매진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만이 자신이 살 길임을 이 대통령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