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비상’ 광역단체 역할론

임금은 아등바등 원님은 유유자적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직을 걸고 임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발표된 고용동향과 관련,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팀에게 단호히 경고했다. 지난달 취업자 증가수가 5000명에 그치면서 한국 사회가 고용쇼크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고용 위기 해소를 위해 직접 고삐를 당기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지방정부 수장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용충격’ ‘고용대란’ ‘고용참사’. 오늘날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단어다. 통계청이 지난 17일 ‘7월 고용동향’을 발표하면서 고용 이슈가 단숨에 부상했다. 자료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취업자 증가수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7월 취업자는 2708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5000명 증가했다. 신규 취업자가 500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증가폭이 1만명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 2010년 1월 1만명 감소 이후 8년6개월 만이다.

중앙 수장 일침
지방 수장 촉각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문제 해소를 위해 여러 차례 의지를 드러냈다. 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업무지시는 일자리위원회 설치였다. 문 대통령은 위원장직을 직접 맡았다. 또한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해 “매일 일자리 현황을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첫 외부일정 역시 일자리 현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하며 직원 1만명의 정규직 전환 약속을 받아냈다. 일자리의 양과 질 모두를 잡겠다는 포석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일자리 창출에 역점을 뒀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7월 고용동향의 여파로 문 대통령은 직접 말문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정부는 고용 위기 해소를 위해 좋은 일자리 늘리기를 국정의 중심에 놓고 재정과 정책을 운영했지만 결과를 보면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간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었다 해도 결과가 충분한 방증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어 문 대통령은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팀 모두가 완벽한 팀워크로 믿음을 주고 결과에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경제 투톱’으로 꼽히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의 갈등설에 선을 긋고자 한 것이다.

중앙정부 수장이 고용동향에 자성하고 강한 책임을 요구하면서 지방정부 수장들도 지역 경제 현안에 더욱 집중하는 모양새다. 지방정부 수장들은 민선 7기 출범과 함께 저마다 경제·일자리 해결을 외쳤다.
 

<일요시사>는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수도권 세 곳(서울·경기·인천)을 꼽았다.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 6·13지방선거 결과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그리고 박남춘 인천시장이 시·도정을 책임지고 있다. 지역 현안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이들은 일자리 문제 해결에 대동소이했다.

문 대통령 고용지표 악화에 엄중경고
지자체 수장들 일자리 창출에 안간힘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2일 취임사를 통해 “일자리 절벽에 직면한 오늘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일자리대장정 시즌2를 시작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서울특별시 고용동향’에 따르면 서울시의 고용률은 59.9%로 전년 동월 대비 1.1%p 하락했다. 취업자 수는 510만20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과 비교했을 때보다 2.2%(11만3000명) 감소했다.

반대로 실업률은 4.7%로 전년 동월 대비 0.5%p 상승했다. 실업자 수는 25만30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과 비교했을 때보다 10.6%(2만4000명) 증가했다.

산업별 취업자 현황에 따르면 전기·운수·통신·금융업 분야에서만 취업자가 5000명 증가했다. 이외 사업·개인·공공서비스 및 기타에 7만명, 제조업에 2만3000명, 건설업에 1만5000명 그리고 도소매·숙박·음식점업에 8000명이 줄었다.

서울시는 비교적 일자리 사업을 체계적으로 시행중이다. 서울시는 일자리 서비스를 총 6개 분야로 나눠 진행 중이다. 6개 영역은 청년·여성·중장년·어르신·노숙인·장애인이다.

서울시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표적으로 일자리 카페, 취업날개, 뉴딜일자리 정책 등을 운영 중이다.

청년 일자리 카페는 스터디룸, 취업 멘토링, 특강을 무료로 제공한다. 취업 날개 서비스는 청년들의 면접 정장을 무료로 대여해준다.

뉴딜 일자리 정책은 서울시가 채용 계획이 있는 기업을 미리 확보해 청년 구직자를 모아 2개월간 교육을 실시한 뒤 정규직 채용까지 연결하는 정책이다. 다만 기업들이 청년 구직자들을 채용해야 할 의무가 없는 데다 해당 중소기업에 취직한다 해도 근무 환경으로 인해 장기근속이 어렵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이어 서울시는 여성과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여성능력개발원과 50플러스포털 등을 시행 중이다. 또한 노숙인의 사회 복귀와 장애인들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노숙인일자리지원센터, 서울시 장애인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서울시는 우수중소기업과 공공일자리의 채용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교육훈련을 통해 취업준비생을 위한 잡콘서트 및 특강을 제공하고 있다. 여성과 고령자를 위한 교육도 따로 준비돼있다. 기술교육원 역시 운영 중이다. 기술교육원은 동부·중부·남부·북부 등 총 4곳이다.

취업 정책 강조
취임 후 전면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3대 기본 복지를 강조하며 성남시장 당시 화제를 모았던 ‘성남형 복지’를 경기도 전역에 안착시키고자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경기도 고용동향’에 따르면 경기도의 고용률은 62.4%로 전년 동월 대비 0.5%p 하락했다. 반면 취업자 수는 683만80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과 비교했을 때보다 1.0%(6만5000명) 증가했다.


그러나 실업률은 3.9%로 전년 동월 대비 0.1%p 상승했다. 실업자 수는 27만50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과 비교했을 때보다 2.2%(6천명) 증가했다.

산업별 취업자 현황에 따르면 전기·운수·통신·금융업에 취업자가 10만4000명, 건설업에 7만1000명, 도소매·숙박·음식점업에 1만5000명이 증가했다. 이와 반대로 사업·개인·공공서비스 및 기타에 9만1000명, 제조업에 2만9000명, 농림·어업에 4000명이 줄었다.

경기도는 일자리재단을 따로 구축해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일자리재단은 크게 고용성장본부와 여성능력개발본부 그리고 경기도 기술학교로 구성돼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여러 일자리 정책에 집중하고 있지만 역점에 두고 있는 사안은 지역화폐와 주 52시간 노동정책으로 영향을 받은 버스 관련 정책”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골자로 한다. 특히 골목상권의 부흥 등 소상공인의 경영난 해소를 목표로 한다.

다만 지역화폐는 경기도 전역서 사용할 수 없다. 통합화폐를 발행할 경우 일부 대도시권으로 쏠림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및 유흥업소 등에서도 사용할 수 없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기존 취지와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도내 31개 시·군을 대상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할 예정이다. 경기도는 해당 시·군이 지역화폐 형태를 선택하면 발행비와 플랫폼 이용료 등을 제공하게 된다. 지역화폐 형태는 종이상품권, 카드상품권, 모바일상품권 등이다.


이미 경기도는 지난달부터 경제실장을 단장으로 TF(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하고 있다. 도는 연내 지역화폐에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예산 확보 및 시·군 간 협약 체결 등에 나설 방침이다. 이르면 내년 3월부터 순차적으로 지역화폐가 지원된다.

경기도는 주 52시간 정책의 여파로 버스 대란 등이 예상되긴 했지만 현실로 드러나진 않았다. 다만 인력 확충이 필요할 전망이다. 도는 이미 올해 1월 중순경부터 버스 운전기사 양성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어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버스 기사를 추가로 양성하고 내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40억원씩 총 160억원을 투자해 4년간 8천명의 버스 기사를 충원할 예정이다.

지역화폐와 버스정책은 이 지사가 지향하는 밑바닥 경제의 연장선이다. 이 지사는 도지사 당선 이후 취임사를 통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고, 중소기업 지원과 창업 활성화, 노동권 강화로 일자리와 가처분소득을 늘려 경제가 지속성장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남춘 인천시장 역시 시장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창설해 청년 일자리를 비롯한 일자리 이슈를 논의할 예정이다. 인천시의 이번 달 고용동향은 고용률이 늘고 실업률이 감소하는 등 다소 안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인천광역시 고용동향’에 따르면 인천시의 고용률은 63.6%로 전년 동월 대비 1.4%p 상승했다. 취업자 수는 159만10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과 비교했을 때보다 2.9%(4만5000명) 증가했다.

실업률은 3.9%로 전년 동월 대비 0.2%p 하락했다. 실업자 수는 6만50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과 비교했을 때보다 2.3%(2000명) 감소했다.

지역별 방안
가지각색

산업별 취업자 현황에 따르면 제조업 분야에서 취업자가 1만8000명이 감소했다. 이외에 사업·개인·공공서비스 및 기타에 3만4000명, 전기·운수·통신·금융업에 1만9000명, 도소매·숙박·음식점업에 7000명, 건설업에 2000명이 증가했다.

인천시 역시 서울시, 경기도와 마찬가지로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일자리 알림에 나서고 있다. 그 외에 주목되는 사안은 인천시의 일자리위원회다. 위원회는 시장 직속이면서 위원장을 시장과 민간위원장이 공동으로 맡는다.

인천시 일자리위원회는 기업·고용·청년·복지 등 4개 분과로 구성된다. 기업 분과는 중소기업 미스매칭 해소 등을, 고용 분과는 지역특성에 맞는 일자리 창출 사업과 산업별 직업훈련 및 인력양성 등을 담당하게 된다. 

청년 분과는 청년일자리 사업 발굴 및 청년일자리 미스매칭 해소방안 등을 수행하고, 복지 분과는 여성, 노인, 장애인 취업 확대 등을 맡게 된다. 위원회는 오는 10월경 출범할 예정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강조할 만한 일자리 정책으로 ‘강화 청춘마을과 뿌리산업을 위한 정책’을 꼽았다. 인천시는 지난 5월 강화 청춘마을의 문을 열었다. 청춘마을은 주로 청년층을 대상으로 창업 및 취업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강화 청춘마을은 청년과 지역을 동시에 잡는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강화군은 노령화로 인해 청년들의 이탈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해소와 함께 지역 노령화를 방지할 수 있다.

인천시는 인천뿌리지원산업센터를 통해 뿌리기업 취업자를 위한 경력형성 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뿌리산업(주조·금형·용접·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은 제조업 전반에 걸쳐 기반성과 연계성이 높은 산업으로 제조업의 근간이다. 

근로자가 지역 내 뿌리산업 기업체에 신규 취업해 3개월 이상 근무하면 1년간 매월 15만원서 최대 30만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사업은 뿌리산업의 인력 유입을 늘리고 구직·구인 미스매치를 막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구직을 시도한 사람과 취업에 성공한 사람의 수가 적다는 점에서 효과는 가시적이지 않다. 다만 시행된 지 3개월 된 사업인 만큼 아직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뿌리지원센터는 지난 5월부터 시행 중이다.

관계자는 인천시 고용률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감소한 것에 대해 “인천시가 그간 기업을 유치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다. 인천시는 기업 유치 등에 적극적인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인천시는 지난 4년간 4400여개의 기업을 유치해 35만6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는 이 기간 경제자유구역과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기업을 유치했다. 시는 2018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일자리대상에서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받았다.

지역별 일자리 정책, 실질적 효과는?
시도지사 간담회 통해 대안 마련할까

문 대통령은 7월 고용동향에 따른 여파로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전국 17개 시도지사 간담회를 오는 30일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통해 민선 7기 지방정부가 출범한 이후 처음 개최되는 간담회다.

당초 간담회는 22일 기획됐지만 간담회는 태풍 ‘솔릭’의 북상으로 연기됐다. 전국 17개 시도의 광역단체장은 각 지역의 일자리 구상을 발표하고, 문 대통령은 중앙 정부의 지원방안을 논의해 일자리 문제 해결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었다.

한자리에 모여
지방 역할 강조

문 대통령과 전국 시도지사가 한 자리에 모이는 까닭은 고용지표 개선에 지역의 역할이 강조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문 대통령이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팀에게 “직을 걸고 임하라”며 단호히 경고한 만큼 지방정부의 수장들에게 일자리 창출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자리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중앙과 지방이 협력을 가하는 모양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숨 돌린 광역단체는?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인천을 포함해 전남과 경남 역시 고용률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감소했다.

‘7월 광주전남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남의 고용률은 62.7%로 전년 동월 대비 0.2%p 상승했다. 취업자 수는 96만5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000명 증가했다. 실업률은 2.5%로 전년 동월 대비 0.6%p 하락했다. 실업자 수는 2만5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5000명 감소했다.

‘7월 경상남도 고용동향’ 에 따르면 경남의 고용률은 62.6%로 전년 동월 대비 1.5%p 상승했다. 다만 전월에 비해 0.2%p 하락했다. 취업자 수는 178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5만명(2.9%) 증가했다. 

실업률은 2.3%로 전년 동월 대비 0.6%p 하락했다. 실업자 수는 4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9000명(18.2%) 감소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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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