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작> 주인공 흑금성 스토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8.20 16:57:40
  • 호수 1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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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만나 나눈 대화가…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흑금성 사건을 조명한 영화 <공작>이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개봉 2주 만에 박스오피스 1위에 도달했다. 흑금성인 박채서씨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는 안기부 특수공작요원으로 김정일까지 직접 만났다. 007 영화에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이건 실화다. 
 

지난 1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공작>은 지난 15일 광복절에 47만 5964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1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누적관객수는 309만 9024명에 달한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한 국가안전기획부(현 안기부) 특수공작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정보사에서 장교로 복무하다 1993년 안기부 대북 공작원으로 활약한 박채서씨가 실존 모델이다.

그는 누구?

1990년대 초반,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남북 위기가 절정에 치달았을 당시 안기부 스파이 흑금성 박씨는 북핵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북한 핵심 간부에 대북사업을 제안하며 접근했다. 당시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로 경제위기가 심각했던 북한의 자금난을 역이용했던 것이다.

박씨는 북한 간첩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가족마저 속이고 제 운명을 바꾸며 조국을 위해 철저히 위장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한 안기부의 북풍 사건에 직면했다. 

결국 조국의 이념이란 미명에도 개인의 신념을 지켰으나 이로 인해 안기부의 버리는 카드가 됐다. 만천하에 정체가 폭로됐으며 이중간첩으로 몰려 온갖 ‘국가안보법 위반’이란 죄명으로 옥살이를 했다. 


스파이 활동은 국제법상 금지된 범죄 행위인 만큼 어떤 나라도 자국의 스파이 행위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작>은 국내 일부 정치 세력과 안기부의 이해관계 때문에 스스로 비밀공작원을 공개하고 법정에 세운 충격적 사건의 전말과 치부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흑금성 박씨는 한국 첩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공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 이면엔 철저하게 정치적 희생양으로 전락한 흑금성 사건을 통해 분단국가의 구조적인 모순을 드러냈다. 

박씨는 충북 청원 출신으로 1977년 육군 제3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육군 소위로 임관했고 육군대학 졸업식 때는 참모총장상을 받을 만큼 뛰어났다. 1990년 소령 계급장을 달고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공작단 본부에 배속됐다. 

그는 정보사에서 한미합동공작대(902정보대)에 파견된다. 당시 그는 미국 정보 요원들과 함께 북한 핵개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1991년부터 정보사 소속의 한미 합동공작대 A-23팀서 대북 우회 침투 공작에 참여했다. 이 시기 그는 북한 공작 조직이 당면한 자금난을 이용하는 공작안을 기획했는데 이것이 상부에 의해 채택됐다. 
 

그러자 그는 곧 유능한 엘리트서 무능하고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180도 바뀌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돈을 빌리고도 제대로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런 행위는 감찰에 걸리고 말아 결국 1993년 3월 그는 소령 신분으로 제대하고 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작전에 따른 것이었다. 박씨는 안기부 203실(해외공작실) 공작원이 되어 대북활동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가 참여한 공작은 ‘편승공작’으로 대북사업에 열의가 있는 사업가를 지원하고 거기에 편승하는 방식으로 대북활동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박씨 공작팀의 눈에 들어온 인사가 광고 프로듀서 출신의 박기영씨다. 박씨는 먼저 박기영씨의 이웃집으로 이사를 간 후 그와 친분 쌓기에 주력했다. 박기영씨가 한국 광고를 북한에서 촬영하려는 방안을 꿈꾸고 있음을 알아냈다. 

박씨는 박기영씨와 그 방안을 현실화하기 위해 자본을 물색하던 중 미진양행 운영자 정진호씨와와 접촉했다. 박채서, 박기영, 정진호는 1995년 ‘커뮤니케이션 아자(AZA)’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박기영씨는 대표를, 박씨는 전무를 각각 맡았다.

박씨는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한과도 접촉을 시작했다. 회사 설립 이전에는 조총련계를 통하여 북한 국가보위부장 대리인 김명윤과 접촉. 이때 박씨는 북한의 다른 정보기관들이 제안한 거래를 거부하고 오직 국가보위부하고만 거래를 이어나갔다. 

정보사 출신 특수공작원…북 고위층 접촉
정권 바뀌고 이중간첩으로 몰려 실형 살아 

이 때문에 박씨는 국가보위부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북한 관련 정보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회사 설립 전후에는 광명성경제연합회 베이징 대표부의 ‘리철’을 접촉했다. 영화 <공작>서 리명운은 리철을 모티브했다. 그리고 박씨는 북한에게 달콤한 제안을 하나 내밀었다.

흑금성이 내민 제안은 바로 ‘광고 촬영’이었다. 그는 “광고 촬영이 북한에게 돈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구슬렸다. 당시 북한은 90년대부터 동구권의 붕괴, 제1차 핵 위기, 자연재해, 고난의 행군 등의 사건들을 겪으며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었다. 

그런 상황서 북한 지도부는 박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997년 2월 박씨는 리철과 함께 남북한의 관계자들을 끌어 모아 실무회의를 가졌다. 남에서는 박기영씨를 비롯한 아자 직원들, 북에서는 방종삼 총사장을 비롯한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 관계자들이 만났다. 
 

며칠 간의 회의 끝에 양측은 2월 14일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서 대북광고사업 조인식을 가졌다. 이를 통해 박씨에게 북한 광고 독점사업권이 넘어오게 됐다.

박씨는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하게 된다.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도 직접 만났다. 김정은에게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도 자주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은 점차 크기가 커져갔다. 

북한 내 광고촬영 독점권을 얻은 박씨는 삼성 애니콜 광고의 북한 촬영 건도 담당하게 됐고, 북한 내 TV 촬영 독점권과 MBC와의 합작에도 관여했다. 

물론 그는 이런 활동 와중에도 첩보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만났던 김정일 위원장과의 대화도 녹음해 안기부에 보고했다. 북한으로부터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 남한 쪽 정보도 과감하게 넘겨줬다. 

한편 첩보 활동을 위한 자기관리도 철저하게 했다. 박씨는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흑금성의 공작 활동은 1997년까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1998년 안기부는 큰 위기에 빠졌다. 바로 제15대 대통령 선거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관련자들이 북한에 총을 쏴달라고 부탁한 총풍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 일로 파문이 일고 검찰이 안기부에까지 수사의 손길을 뻗쳤다. 안기부 이대성 전 해외실장은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고자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과의 접촉내용이 담긴 이른바 ‘이대성 파일’을 공개했다. 

흑금성은 대북활동을 하면서 북한의 의중을 파악한 결과 제15대 대통령 선거 후보 중 신한국당 이인제 의원을 가장 선호했으며, 김대중 후보를 가장 기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박씨는 ‘적(북한)이 낙선시키려 하는 국가 지도자라면 역으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도자가 아니겠느냐’며 김 전 대통령 측과 접촉을 시도했다. 
 

박씨는 이들에게 북풍을 막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줬다. 

그러나 이런 접촉이 안기부에 노출됐다. 박씨는 당시 의심을 피하고자 김 전 대통령 측과 를 만난 이유를 ‘해외 공작원 정보 보고’ 문건에 적당히 보고했다. 하지만 ‘이대성 파일’로 이 사실이 공개되는 바람이 박씨가 안기부 소속의 공작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활동 재조명


그는 공작 활동을 더 이상 추진할 수 없었다. 1998년 안기부에서 끝내 해고됐다. 이후 박씨는 대북활동서 일종의 비선으로 활동하다가 2010년 간첩행위를 했다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대전교도소서 복역하다 2016년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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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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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