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문 궁합 보니…

국가 의전서열 1-2위 ‘충돌하나’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국회가 본회의를 개의했다. 의회주의자로 통하는 문희상 국회의장은 “전반기가 청와대의 계절이었다면 후반기는 국회의 계절”이라고 밝혔다. 국회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겠다는 의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개혁을 통한 경제 활성화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규제혁신을 실현하기 위해선 입법이 보장돼야 한다.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의 호흡이 주목되는 까닭이다.
 

지난 13일 국회는 본회의 개의로 정상궤도에 안착했다. 마지막으로 열린 본회의는 지난 5월28일이었다. 꼭 46일 만이다. 국회는 남북평화무드와 6·13지방선거를 관통하면서 개점휴업 상태였다.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했다. 국회 정상화의 분수령은 지난 6월 지방선거였다. 여야는 선거결과에 따른 재정비 국면에 돌입했고, 원 구성 협상을 완료했다.

원 구성과 의장단
후반기 진용 갖춰

이어 문희상 국회의장(이하 문 의장)이 의사봉을 잡게 됐다. 문 의장은 지난 13일 본회의서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문 의장을 비롯한 여야 신임 국회 의장단이 내정·선출됐다. 후반기 국회의 진용이 구축된 것이다.

‘여의도 포청천’으로 불리는 6선의 문 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소속이다. 문 의장은 지난 13일 본회의서 단독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문 의장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자신이 대표적 의회주의자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문 의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싸워도 국회서 싸워야 한다”며 운을 뗐다. 문 의장은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전반기가 청와대의 계절이었다면 이제는 국회의 계절이 돼야 한다”며 “집권 1년차에 발표한 청와대의 수많은 개혁 로드맵은 반드시 국회의 입법을 통해야만 민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협치와 국회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 것이다.

문 의장은 지난 20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서도 협치를 내세웠다. 문 의장은 특히 제1야당과의 협치에 대해 강조했다. 또 정책연합과 같은 소연정과 야당 소속 장관의 임명 등을 언급하며 여야 간 합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청와대 역시 지난 23일 문재인정부 2기 내각의 콘셉트를 ‘협치’로 구상했다. 청와대는 ‘협치내각’을 제안하며 야당 인사의 장관 임명 등을 내비췄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하 김 대변인)은 “여당서 지방선거 이후 먼저 요청이 왔다”며 “민주당과 야당의 논의가 진전되는 것을 보면서 결정짓기 위해 기다렸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입법 절차와 협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협치 내각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협치의 범위에 대해선 “좀 많이 열려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범진보진영으로 분류되는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과 정의당뿐 아니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역시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 2기 내각의 키워드가 협치라는 점에서 문 의장의 의지와 상통한다.

문 의장, 개헌·선거제도 개편 전면
청, 개혁입법 두고 협치 내각 제안

청와대는 협치 내각을 내세우며 경제 활성화를 강조했다. 지난 전반기 국회는 남북평화와 드루킹 그리고 6월 지방선거 등 대형 이슈에 잠식된 상태였다. 지방선거를 마친 이후 국회가 정상 가동 절차를 밟게 되면서 그동안 밀렸던 현안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중 경제 문제가 가장 가시적으로 대두됐다.


6월 지방선거가 종료된 지 이틀 뒤인 지난 6월15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5월 고용동향 내용이 충격적”이라며 화두를 던졌다. 김 부총리는 이날 “정부가 그동안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경제팀 모두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야 간 경제 공방레이스가 시작됐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등 경제 이슈가 정국을 관통했다. 이는 곧 중앙 이슈로 부상했다. 개혁입법연대의 등장도 그 연장선에 있다.

특히나 여야는 최저임금을 두고 공방을 이어갔다. 민주당은 최저임금 상승에 발맞춰 후속 대책 마련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야당은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사과 발언은 여야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가뜩이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사용자와 노동자 어느 쪽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서 나온 발언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다만 최저임금 1만원 목표를 완전히 철회하지 않았다.

개혁입법 위해
협치내각 카드

여야는 스스로 경제회복의 모멘텀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국이다. 지난 지방선거서 크게 승리한 민주당은 경제성과를 필두로 유권자들의 선택을 증명하려는 모양새다. 반면 야당은 경제지표의 낮은 점수를 부각하며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야당은 경제정당을 자처하며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규제혁신을 통해 경제 회복을 노리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3대 핵심 경제정책 중 하나인 혁신성장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규제혁신은 혁신성장을 위한 마중물로 여겨진다. 

혁신성장은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해 신산업을 육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신산업 육성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민주당은 규제혁신 5법 등을 내세우며 개혁 입법을 주장하고 있다. 야당 역시 규제 혁신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한다. 다만 규제 혁신 법안이 통과될지에 대해선 미지수다. 한국당과 바미당은 규제혁신 5법이 아닌 규제프리존법과 서비스산업발전법을 주장한다. 

이들은 규제프리존법이 민주당의 규제혁신 5법보다 먼저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의 규제 혁신 의지가 국회의 문턱에 가로막힐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문 대통령은 협치 내각을 제안해 법안 통과를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야당은 경제회복을 위한 규제혁신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 그러나 협치 내각에 대해선 반응이 제각각이다.


야, 개헌·선거제도 카드로 맞불
향후 정국 따라 행보 주목받을 듯

한국당은 협치 내각 국면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제1야당인 까닭이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청와대의 협치 내각에 대해 “범여권 위성정당 포섭에 나서려는 모양새”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범여권 위성정당은 평화당과 정의당을 가리킨다. 이어 김 원내대표는 “협치가 아니라 한국당을 패싱시키자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그는 청와대가 경제 정책 실패를 사과하고 협조를 요청할 경우 “적극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협치 내각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한국당과 달리 바미당과 평화당은 조건부 수용을 내비추고 있다. 이들이 제시한 조건은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이다. 개헌은 권력 구조의 개편을 골자로 한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로 여겨지는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핵심으로 한다. 선거제도 개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중심으로 한다. 선거구제 개편이 개헌과 함께 이어지는 까닭은 선거구제 개편이 권력구조 개편과 연동돼있기 때문이다.

바미당은 당 차원서 청와대의 협치 내각 제안에 대해 개헌과 선거 제도 개혁 등을 요구하는 한편, 김관영 바미당 원내대표는 협약서 제시를 제안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협치를 연정으로 평가했다. 그는 “연정을 하려면 협약서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며 “무조건 장관부터 보내라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평화당 조배숙 대표 역시 선거제도와 개헌을 언급했다. 
 

조 대표는 지난 25일,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서 “야당 앞에서 장관 한 두 자리를 놓고 유혹하는 것은 협치가 아닌 통치”라며 날을 세웠다. 이어 “협치 내각을 하려면 선거제도 개선과 개헌합의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청와대 김 대변인은 지난 24일 정례브리핑서 “청와대 또는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성격의 것이 아니다”라며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도 “모든 정치적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논의가 진행되면서 성사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협치 내각 두고
개헌·선거구 조건

문 대통령의 협치 내각 제안은 그만큼 개혁 입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은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에게 개헌과 선거구제는 부담이다. 특히 개헌의 경우 지난 전반기 국회처럼 ‘이슈의 블랙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전반기 국회에선 개헌 국회라는 명목으로 여야 간 공방이 치열했다. 

당시 국회는 개헌 정국을 관통하며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개헌의 부상은 문 대통령에게 우려로 작용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경제가 제2의 개헌 정국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본다는 것이다.

한편 야당이 청와대의 협치 내각 요구에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카드를 꺼내든 까닭은 문 의장의 발언이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다. 문 의장은 취임 이후 연이어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강조했다. 두 사안이 청와대와 야당 간 협상카드로 작용한 데에는 문 의장의 발언이 다소 결정적이었다.

문 의장은 지난 17일 제헌절 70주년 경축사를 통해 “국민의 80%가 개헌을 재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올해 연말까지 여야가 합의한 개헌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문 의장은 18일 취임 기자간담회서도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날 문 의장은 “촛불혁명의 제도적 완성은 개헌과 개혁입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의장은 개헌의 방향에 대해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며 “개헌안을 도출하기 위해 교섭단체대표들이 자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제도 개편이 따르지 않는 개헌은 의미가 없다”며 “근접거리에 합의 사항이 상당히 있다”고 밝혔다. 야당이 청와대의 협치 내각에 맞서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강조하는 배경 중 하나다.

규제 개혁을 서두르고자 하는 문 대통령과 개헌의 불씨를 다시 지핀 문 의장의 귀추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개헌을 대선 공약 전면에 내세우며 취임 이후 개헌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는 6·13지방선거와 개헌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고자 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발로 개헌은 추진되지 않았다. 당시 야당은 정부 주도가 아닌 국회 주도의 개헌을 주장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개헌에 선을 긋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개헌안이 무산될 당시 “국회는 헌법을 위반했고, 국민은 헌법을 선택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됐다”며 “이번 국회서 개헌이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기대를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그 기조는 현재진행형이다. 민주당 역시 지난 18일, 강병원 원내대변인을 통해 “개헌은 경제민생 입법들을 외면하는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와 개헌국민투표가 동시에 이뤄지지 않았고, 선거 이후 여야 간 정책대결 레이스가 펼쳐지면서 개헌 이슈는 자칫 힘을 잃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문 의장의 취임과 함께 개헌 불씨가 되살아났다. 문 의장은 개헌을 연이어 강조했다. 

대통령-의장
개헌에 시각차

그가 개헌 불씨를 쉽게 꺼트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문 의장은 후반기 정국에 국회를 전면 내세울 방침이다. 또 국회 전반기를 청와대의 계절이라 평가하면서 국회 후반기를 국회의 계절로 만들겠다고 언급했다. 국회의 존재감을 확실히 부각시키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로 풀이된다. 개헌을 불편해하는 청와대의 문 대통령과 개헌을 다시 살려낸 국회의 문 의장이 향후 정국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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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