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입법전쟁’ 여야 충돌 법안 리스트

‘밀리면 끝장’ 외나무 리턴매치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입법전쟁이 시작됐다. 정책대결이란 큰 틀에서 여야 간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공전국회가 거듭된 끝에 국회 내 계류 법안만 1만여건에 달한다. 최근 여야는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면서 국회 원 구성을 매듭지었다. 지각 출범한 국회이지만 이래저래 정상궤도에 안착한 모양새다. <일요시사>는 여야의 본격적인 정책 레이스에 있어서 충돌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해 분석했다.
 

여야는 지난 16일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면서 원 구성을 완료했다. 다만 18개 상임위원회 중 교육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오는 26일 본회의를 통해 선출된다. 두 위원회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서 분리됐다. 기존 상임위원회를 두 곳으로 나누려면 국회법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위원장은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이찬열 의원이, 문체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내정됐다. 이어 문희상 신임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국회의장단이 꾸려졌다. 후반기 국회의 진용이 갖춰진 것이다.

원 구성 완료
정상궤도 진입

여야의 거듭된 정쟁으로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여론의 비난과 성토가 쏟아졌지만 거대 중앙 이슈들이 정치권을 뒤덮었다. 남북 정상회담, 비핵화, 드루킹 그리고 6·13지방선거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의 시계는 선거 이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서 압승을 거뒀다. 다만 그 요인이 내부보다 외부에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었다. 자체적 성과에 비해 야당의 지리멸렬 등 외부적 요인이 승리를 견인했다는 것이다. 이후 여당은 악화된 고용 동향과 마주했다. 

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정부와 여당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민주당은 민생개혁입법을 통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증명하려는 모양새다.


야당은 이번 선거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야당은 지방선거 이후 당 내외적으로 존립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야당은 문재인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경제정책에 집중하고자 한다. 

경제지표 악화와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등 경제 문제가 정치권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이 사용자와 근로자 어느 한쪽서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서 야당은 정책대결을 통해 몸값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야당이 경제 난관에 가시적 성과를 보인다면 지난 지방선거의 패배를 딛고 2020 총선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경제정책에 뛰어든 형국이다.

여야는 민생법안, 개혁법안 등에 집중하면서 본격적인 정책대결 레이스를 펼칠 예정이다. 향후 여야가 갈등을 보일만한 분야는 ‘규제혁신’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 경제의 선순환을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규제혁신에 대해선 공감한다.

다만 세부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사안은 민주당의 ‘규제혁신 5법’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바미당의 ‘규제프리존법’이다.

지각 국회 계류 법안만 1만건
정책대결로 정상궤도 진입하나 

민주당은 규제혁신 5법을 추진 중이다. 규제혁신 5법은 문재인정부의 3대 경제정책 기조 중 혁신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규제혁신 5법은 혁신성장을 위한 선행과제로 통한다. 정부는 올해 초 혁신성장의 한 축으로 신산업 진흥을 꼽았다. 


또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규제샌드박스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규제샌드박스란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될 때 한시적으로 규제를 유예해주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 연장선서 규제혁신 5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규제혁신 5법은 ▲행정규제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안 ▲산업융합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지역특화발전특구규제특례법을 뜻한다.
 

행정규제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신기술을 활용한 서비스와 제품에 대해 ‘우선허용·사후규제’의 원칙을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의 규제가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안은 정보통신기술 융합 산업에 대한 사후규제를 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금융서비스를 발전시키기 위해 시장 테스트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결국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산업융합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임시허가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혁신기술로 이루어진 신제품과 새로운 서비스의 시장 출시를 위한 규제완화가 주요 내용이다.

규제혁신 공감대
법안은 내가 먼저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4차 산업혁명 등 신산업 활성화를 위해 현재의 포지티브적 규제(원칙적 금지·예외적 허용)를 네거티브적 규제(원칙적 허용·예외적 금지)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과감한 규제완화가 핵심이다. 이어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필요성 역시 명시돼있다.

지역특화발전특구규제특례법은 수도권 중심의 성장과 지역산업 침체 해소를 위해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법안은 시·군·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지역특화발전제도의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 

법에 열거된 규제특례를 한정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지역특화사업에 신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의 지역특화발전특구 대신 지역혁신성장특구제도를 도입해 지역발전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제출한 규제혁신 5법은 규제혁파를 골자로 한다. 4차 산업혁명서 비롯된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4차 산업혁명과 규제혁신을 내세우며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규제프리존법’을 내세우며 민주당의 혁신 5법 처리에 소극적이다. 한국당과 바미당은 규제혁신 자체엔 민주당과 이견이 없다. 다만 혁신 5법에 앞서 규제프리존법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규제혁신 5법이 규제프리존법보다 후퇴했다는 이유에서다.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은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에 27개 지역별 맞춤 전략산업을 지정한 뒤 규제 특례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원칙적 허용의 예외적 금지인 네거티브 방식이다. 14개 시·도는 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세종·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다.


규제혁신 5법과 규제프리존법은 규제혁신이라는 측면서 맥락을 같이한다. 다만 두 법안은 몇 가지 조항서 차이를 보인다.

규제혁신 5법의 경우 규제특례심의위원회가 규제특례 구역과 기간, 규모 등을 심의한다. 심의 내용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 환경, 지역균형발전 저해 여부 및 개인정보 등이다. 

반면 규제프리존법은 전국 14개 시·도에 27개 전략산업을 우선적으로 지정한다. 규제혁신 5법은 수도권을 포함시켰지만 규제프리존은 수도권을 제외한 점이 다르다.

규제프리존법은 최근 발의된 법안이 아니다. 지난 2016년 5월30일 당시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 대표발의로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렸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특정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당시 법안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관통했다. 

일각에선 최순실과 규제프리존법을 연결 지어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 역시 규제프리존법을 ‘최순실법’이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과거 충돌 법안
이번에도 계속?

민주당과 한국당·바미당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두고도 충돌할 예정이다.

한국당과 바미당은 서비스발전기본법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서비스발전기본법 역시 규제프리존법과 마찬가지로 박근혜정부 당시 추진됐던 법안이다. 여야는 당시 서비스발전기본법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겪었다. 계류기간만 7년에 다다른다.

서비스발전기본법은 산업·교육·의료·관광 등 서비스 산업의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과 야당인 민주당은 대부분의 사항에 대해선 합의했다. 그러나 양당은 보건과 의료부문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은 의료 민영화를 우려하며 법안 통과를 반대했다. 민주당은 대기업의 의료부문 진출로 인해 의료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보건·의료 분야를 제외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의료 공공성 강화와 의료 영리화 방지를 위해 보건과 의료 분야를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는 7월 임시국회서 혁신5법과 규제프리존법 그리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두고 정면으로 맞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혁신 5법과 규제프리존법은 극명한 차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규제혁신이란 큰 틀 안에서 맥을 같이 한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역시 당시 여야가 보건·의료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선 접점을 찾았다. 7월 임시국회서 두 사안이 어떻게 풀이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외에도 여야가 충돌할 만한 법안으로 방송법이 꼽힌다.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의 임기가 내달 종료되기 때문이다.

규제, 방송…7월 관전포인트
접점 찾기 ‘글쎄’ 공전 전망도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은 방송통신위원회서 추천·임명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여당과 야당이 각각의 비율대로 이사를 선임한다. KBS의 경우 여야 7:4, 방송문화진흥위원회의 경우 6:3 비율로 이사 추천과 선임이 이뤄진다. 

이같이 선임된 KBS와 방송문화진흥위원회 이사들은 KBS와 MBC 사장을 선임한다. 결국 공영방송이 정권의 입김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해석이다.

방송법 개정안은 지난 2016년 당시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국회서 2년째 발이 묶여있다.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를 13인으로 구성하고 여야가 각각 7명, 6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또 특별다수제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특별다수제란 이사회가 사장을 임명·제청할 경우 재적이사 3분의 2 찬성으로 의결하는 것을 뜻한다. 결국 야당의 동의 없이 공영방송 사장 선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개정안을 발의했던 민주당은 당시 야당이었다.
 

방송법을 두고 여야는 이미 한 번 맞붙었다. 지난 4월 임시국회 당시 여야는 방송법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4월 국회가 공전국회가 된 결정적 원인이었다. 민주당이 야당이었을 당시 발의한 내용인 만큼 법안 내용은 야당에게 유리한 편이다. 

오늘날 민주당이 집권 여당이 되면서 입장이 바뀐 상황이다. 한국당과 바미당은 원안의 통과를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새로운 법안을 내놓으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방송법까지
난제 수두룩

방송법을 두고 갈등을 겪을 당시 민주당은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낙하산 사장을 통해 방송을 장악하려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 제출한 차악의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은 “방송장악을 위한 꼼수”라며 대치했다. 지난 4월 임시국회 당시 방송법 처리 문제로 국회는 정상가동되지 못했다. 이는 7월 국회 역시 주목받는 대목이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막 오른 7월 국회 18개 상임위원장 누구?

여야는 18개 상임위원장 중 16개 상임위원장 선출에 합의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분리된 교육위원장과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오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선출된다. 

운영위원장은 3선의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맡는다. 운영위원장은 관례적으로 집권당이 자리한다. 민주당은 운영위원장과 안민석 의원으로 내정된 문체위원장을 포함해 총 8개의 상임위를 맡게 됐다. ▲정무위원장 3선 민병두 의원 ▲기획재정위원장 3선 정성호 의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3선 노웅래 의원 ▲국방위원장 3선 안규백 의원 ▲행정안전위원장 재선 인재근 의원 ▲여성가족부위원장 재선 전혜숙 의원.

대부분 여야 합의
26일 본회의 선출

한국당은 총 7개의 상임위를 맡았다. ▲법제사법위원장 4선 여상규 의원 ▲환경노동위원장 3선 김학용 의원 ▲외교통일위원장 3선 강석호 의원 ▲예산결산특별위원장 3선 안상수 의원 ▲국토교통위원장 3선 박순자 의원 ▲보건복지위원장 3선 이명수 의원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3선 홍일표 의원.

바른미래당은 2개의 상임위를 맡게 됐다. ▲정보위원장은 3선 이학재 의원이 선출됐고, ▲교육위원장에는 3선 이찬열 의원이 내정됐다.

민주평화당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에 재선 황주홍 의원이 선출됐다.


<기사 속 시사> 인사청문회, 또 다른 관전포인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17일 국회 후반기 첫 회의를 열었다. 행안위는 이날 민갑룡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오는 23일 오전 10시 국회서 실시하기로 의결했다.

행안위는 당일 청문회를 실시하고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곧바로 합의·의결할 계획이다.

국회가 청문회 일자를 23일로 결정한 까닭은 인사청문회법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임명동의안 등이 제출된 날부터 20일 이내에 임명 심사 또는 인사 청문 절차를 마쳐야 한다. 부득이할 경우 대통령 등의 요청에 따라 10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민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서는 지난달 20일에 도착했다. 이미 심사 기한을 20일 넘긴 상황이지만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오는 23일이 유예기간의 마지막 날이다.

김선수·노정희·이동원 등 대법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오는 23∼25일에 예정돼있다.

정치권에선 민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무난하게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의 신상보단 수사 구조 개혁 등 현안에 치중할 전망이다. 다만 대법관 후보자들의 경우 ‘좌편향 인사’와 ‘균형 인사’ 사이에서 험난한 청문회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대치 역시 첨예할 것으로 예측된다.

7월 임시국회의 개원과 동시에 시작될 인사청문회가 향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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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