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4조 도박판과 S파 보스 풀스토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7.16 12:10:19
  • 호수 1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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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판돈이 수백억 ‘도박계 잡스’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동생들은 민간인을 집단 폭행해 구속됐다. 큰형님은 수천억원대 불법스포츠 도박장을 운영하다 붙잡혔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광주 집단폭행 사건을 일으킨 S파 보스 A씨가 수천억원대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불법 스포츠 도박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렸다.

지난 5월 전남 광주서 한 남성이 8명에 둘러싸여 주먹과 발로 수십 차례 구타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폭행 현장이 담긴 동영상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국민적 충격을 안겼다. 가해자 8명은 모두 S파 조직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큰형님의 대박
알고보니 사기

당시 촬영된 동영상을 보면 S파 조직원들이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조직원은 돌까지 집어 들어 폭행했다. 피해자는 폭행당하는 과정서 손가락이나 나뭇가지로 양쪽 눈을 심하게 찔려 실명 상태에 이르렀다. 눈 주위의 뼈도 무너졌으며, 수술 중에 4∼5cm 크기의 나무조각도 나왔다.

S파 조직원들의 이런 만행에 조폭업계에선 ‘어린 친구들이 조직에 돈 좀 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폭 관계자는 “S파는 지난 몇 년 사이에 불법 도박사이트로 수조원의 돈을 굴렸다”며 “S파 보스는 현재 사이트를 운영하다 걸려 징역을 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경찰은 4조원대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조폭들을 검거한 바 있다. 사이트를 운영한 조폭이 바로 S파였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2014년 5월부터 2017년 6월까지 해외에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를 개설해 회원 5만여명에게 4조1000억원을 입금 받아 2000억원을 챙긴 S파 조직원 박모씨 등 15명을 지난해 8월8일 구속했다.

불법 도박사이트 사건에 연루 의혹
5만명 4조1000억 베팅…2000억 챙겨

범행으로 거둬들인 수익으로 강남 고급 아파트서 거주하며, 수억원에 달하는 고급 외제차를 타는 등 호화생활을 즐겼다. 특히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금고에 5만원권을 수북 쌓아뒀다. 경찰은 검거 과정서 현금 14억2400만원을 압수했다.

당시 S파 보스로 불렸던 A씨는 불법 도박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그런데 4조 불법 도박과 다른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이 부분은 뒤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

S파가 운영한 도박사이트에서 근무했던 B씨는 “경찰도 A씨가 S파 보스로 도박사이트의 실질적인 운영자라는 걸 알았다”며 “하지만 S파 내부서 이미 대신 들어갈 사람들이 다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A씨까지 엮지 못했다”고 말했다.

4조 도박사건 수사 발표에 따르면 S파 조직원들이 경찰에 붙잡힌 알바생이나 직원들에게 자신들의 신변이 노출되지 않도록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 붙잡힌 알바생이나 직원들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협박 등으로 위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생들이 총대
대신 철창으로

이에 대해 일산 동부경찰서에 당시 수사 상황을 질의했지만 ‘수사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다만 수사 팀장이었던 김선겸 일산동부경찰서 사이버범죄수사팀장은 언론과 인터뷰서 “이 조직은 조직폭력배들이 관리했었고, 3년여에 걸쳐 단속이 되어도 ‘꼬리 자르기’식으로 영업을 이어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A씨가 S파의 보스라는 근거는 무엇일까. 

A씨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S파 조직원에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확인된다. <일요시사> 취재결과 A씨는 1995, 1997년에 걸쳐 S파 조직원으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 처벌 받은 전력이 있다.

또 A씨는 불법 도박장을 개설한 혐의로 징역형을 살기도 했다. 서울 강남 일대서 사설 카지노를 차려 놓고 100억원가량의 도박판을 벌여 거액을 챙긴 혐의로 2011년 8월 경찰에 적발됐다.

이때 A씨 등 S파 조직원들이 ‘롤링’(도박꾼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일)을 하며 알게 된 재력가들에게 도박을 시켜주고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A씨는 당시 ‘도박 개장죄’ ‘전자금융거래법위반죄’ 등으로 2012년 2월16일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출소 후 2013년부터 불법 도박사이트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내외적으로 A씨가 S파의 조직원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우두머리’라고 업계에선 입을 모았다. A씨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C씨는 “요즘 조폭은 돈 많은 놈이 ‘오야’(대장)다. A씨는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엄청난 돈을 벌었다”며 “토토계의 ‘스티븐 잡스’로 불린다. 자연스럽게 A씨가 S파의 실질적인 보스가 됐다”고 말했다.

“요즘 조폭은
돈 많으면 대장”

실제로 A씨는 수백 개의 불법 도박사이트 관리를 S파 조직원들에게 맡기며, 피라미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고 한다. 업계에선 이를 ‘내려준다’고 표현했다. A씨는 각각의 도박사이트를 S파 직계 조직원들에게 내려주며, 지분을 정해 수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직접 사이트를 운영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수사를 피할 수 있었다. 지난해 구속된 S파 박씨는 A씨의 직계 조직원이다. 박씨와 A씨는 전남 해남 출신으로 함께 조직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수사에서도 박씨가 도박사이트의 실질적인 총책으로 지목됐다. 박씨가 A씨 대신 수사를 받았던 셈이다.


그런 A씨가 현재 도박장 개설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4조 도박 사건서 A씨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당시 수사를 피해 싱가포르에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경찰 수사가 끝날 무렵인 지난해 중순 한국에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다른 조직원들이 대신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돌아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검찰은 A씨를 도박장 개설 혐의로 돌연 구속했다. 4조 도박 사건과 별건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국민체육진흥법위반’(도박장개장 등) ‘도박공간 개설’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꼬리 자르기로 수사망 피해
다른 혐의로 구속돼 재판 중

혐의가 인정돼 법원은 지난 1월16일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으며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A씨는 도박사이트의 실질 운영자는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3년 5월부터 중국 청도에 사무실을 두고 스포츠 경기의 승패 및 달팽이, 사다리 게임을 운영했다. 더불어 A씨는 팀장급 직원들을 두며, 중간 운영자로서 사이트를 체계적으로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특정 다수의 회원들에게 2217억원을 입금 받았다.

A씨의 혐의는 4조 도박사건과 상당 부분 겹친다. 먼저 이 판결문에는 A씨가 ‘범행을 계획했다’ ‘사이트를 운영했다’ ‘지휘하여’ ‘큰사장으로’ ‘임금 받았다’ 등의 표현을 썼다. 실질적으로 A씨가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했다고 적시한 것이다.

4조 도박사건 역시 S파가 중국 청도에 도박장을 개설했으며, 사다리, 달팽이 게임 등을 운영하며 회원들에게 베팅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해외에 사무실을 두고 현지서 총괄하며, S파 출신의 국내 운영자들과 긴밀히 연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간 운영자 및 관리책, 팀장, 홍보, 통장모집책 등으로 나눠 관리한 것 역시 A씨의 사건과 수법이 유사했다.

검 수사 피해
싱가포르 도주

이 때문에 4조 도박 사건과 A씨의 혐의가 ‘한 줄기’가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이런 의혹에 대해 A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입장을 듣지 못했다. 다만 A씨의 1심 변호인과 연락이 닿았다. A씨의 변호인은 “현재 A씨의 변론을 맡고 있지 않다. 형사 사건이기 때문에 의뢰인 사건과 관련해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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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S파 보스 구속한 검사 ‘알고 보니’ 정홍원 전 총리 외아들

S파 보스 A씨를 구속한 담당 검사가 정홍원 전 국무총리의 외아들인 정우준 검사인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정 검사는 ‘드루킹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를 맡은 허익범 특별검사팀에 파견돼 수사를 맡고 있다.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업계에선 정 검사가 A씨를 제대로 수사했다고 평가했다. 당시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지난해 4조 도박 사건을 수사 때 A씨가 혐의에서 빠져나가자, 담당검사가 다른 불법 도박사이트 건으로 A씨를 구속해 유죄를 이끌어냈다”고 귀띔했다. 

<일요시사>는 정 검사에게 당시 사건에 대해 질의하기 위해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정 검사는 용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과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며 해외 저널에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공학박사를 취득한 이후 뒤늦게 사법시험에 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검사는 2009년 사법연수원을 38기로 졸업하고, 수원지검 성남지청서 검사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보다 인간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사법시험에 도전하게 됐다”며 “첨단 컴퓨터 범죄나 지적 재산권 침해 수사 전문 검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후 정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e스포츠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는 등 이른바 ‘첨수통(첨단범죄수사통)’이다. 지난 1월 인사에서 인천지검 특수부인 형사 4부에 발령 난 이후 5개월 만에 특검팀에 합류했다.

정 검사는 정홍원 전 국무총리의 외아들이기도 하다. 정 전 총리는 국무총리에 앞서 대검 감찰부장, 부산·광주지검장, 법무연수원장 등 검찰 고위직을 지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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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