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특활비’ 해외사용 내역 공개

몰래 받아 다른 나라서 펑펑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참여연대가 공개한 국회 특활비 내역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활비는 기밀유지가 필요한 활동에 드는 경비다. 그러나 특활비가 사용된 내역을 보면 기밀 유지가 필요한 사안이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의원친선협회 방문이 대표적이다. 의원외교활동을 명목으로 의원친선협회 방문 경비에 특활비가 사용된 사례가 꽤 된다. 물론 의원외교는 기밀이 요구될 수 있다. 그러나 의원친선협회 방문 결과 보고서는 여러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지난 5일 참여연대는 국회의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 지출 내역을 공개했다. 참여연대가 공개한 특활비 자료(2011∼2013)에 따르면 3년간 240억원의 특활비가 지급됐다. 영수증은 단 한 장도 없었다. 특활비가 국회의원의 ‘제2의 월급’ ‘쌈짓돈’ 으로 불리며 비판을 받는 까닭이다.

목적에 부합
하지만 비밀?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쓰이는 비용’이다. 사용 용도가 엄격히 제한된다. 특활비를 사용하게 된 근거가 그 목적에 부합한다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특활비 사용 내역은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일요시사>는 의원외교활동 중 ‘의원친선협회 방문’에 사용된 특활비를 주목했다. 의원친선협회 방문이 기밀 유지에 해당되는 활동이었는지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친선 목적의 방문과 기밀 유지의 성격은 다소 거리가 있다.

물론 의원들의 외교활동 자체를 지적하기엔 무리가 있다. 국회의 역할과 권한에 ‘외교’도 포함된다. 국회는 ‘초청외교활동’ ‘방문외교활동’ ‘국제회의 참석’을 보장한다. 의원친선협회 방문은 방문외교활동에 속한다. 


방문외교활동은 방문국 의회 및 정부 주요인사와의 면담과 산업체 및 교육·문화시설 등의 시찰로 이뤄져있다.

또 의원들의 원활한 외교 활동을 위해 의회외교단체가 구성돼있다. 의원친선협회 역시 이 중 하나다. 

국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의회외교단체는 ‘의원외교협의회’ ‘의원친선협회’ ‘한·중의회정기교류체제’로 구성돼있다. 의원외교협의회는 주변 주요국 의회와의 상호교류 및 합동회의 개최 등을 바탕으로 한다. 또 단순한 친선단체의 성격을 넘어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전문의회외교단체를 뜻한다. 

현재 국회는 미국·중국·러시아·EU 의회와 의원외교협의회를 결성했다.

한·중의회정기교류체제는 한중 간 우호협력 관계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양국 의회 간 정기적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한·중의회정기교류체제는 협력의정서를 통해 결성된 외교단체다.

주안점을 두고 있는 의원친선협회의 경우 대한민국 국회의원과 상대국 의회 의원 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 있어서 양국 간 이해증진과 협력강화를 목적으로 결성된 외교단체다.

기밀 유지 필요 때 쓰이는 특활비
의원친선협회 방문 시 사용, 왜?


국회에선 의원외교를 위한 예산을 따로 책정한다. 그러나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의원친선협회 방문에 특활비가 사용됐다. ‘기밀을 유지할 만한’ 방문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의원친선협회의 경우 상호교류 및 기타 친선활동의 성격이 강하다. 국회사무처에 공개된 방문 결과보고서를 살펴보면 기밀 유지와 친선의 거리가 더욱 멀어 보인다. <일요시사>는 공개된 2011∼2013년 의원친선협회 특활비 사용 사례 중 각 해마다 가장 많은 특활비가 사용된 경우를 꼽았다.
 

2011년 가장 많은 특활비를 사용해 의원친선협회 방문 명목으로 상대국을 방문한 사례는 ‘한·자메이카-도미니카-파나마 의원친선협회 상대국 방문경비’다. 총 478만950원의 특활비가 사용됐다. 

국회사무처에 공개된 방문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상대국 방문은 지난 2011년 8월8일부터 17일까지 8박10일 일정이었다. 이곳을 방문했던 대표단은 총 5명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박종근·진영·이애주 의원과 민주당 이미경 의원 그리고 자유선진당(이하 선진당) 박선영 의원이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당시 박선영 국제협력관이 동행했다. 대표단이 이용했던 비행기 좌석은 모두 비즈니스석이었다.

보고서의 주요일정에 따르면 이들은 8월8일 인천을 출발해 같은 날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비행기 경유를 위해서였다. 미국에 도착한 이들은 당시 김영목 뉴욕 총영사 주최의 오찬에 참석했다. 

이후 대표단은 다음날인 8월9일 미국 뉴욕을 출발해 같은 날 도미니카 산토도밍고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날 교민 간담회를 가졌다. 다음날인 8월10일에는 도미니카 하원의장을 예방했고, 도미니카·한 의원친선협회 주최의 오찬에 참석했다. 이어 대표단은 당시 박동실 주도마니카공화국 대사 주최의 만찬을 가졌다.

예산 있는데
추가로 사용

대표단은 이튿날 8월11일 도미니카 산토도밍고를 출발해 같은 날 파나마 파나마 시티에 도착했다. 도착한 이들은 당시 두정수 주파나마 대사 주최의 만찬에 참석했다. 다음날 8월12일에는 파나마 국회의장을 예방했고, 한·파나마 의원친선협회 주최의 오찬을 가졌다. 

이후 현지 진출 국내기업과 교민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진행했다.

대표단은 이튿날 8월13일에 파나마 파나마 시티를 출발해 같은 날 자메이카 킹스턴에 도착했다. 이들은 다음날인 8월14일 교민 초청 간담회를 가졌고, 이튿날 8월15일 자메이카 하원의장을 예방했다. 

대표단은 이날 자메이카 킹스턴을 출발해 자정이 다 돼서야 경유지인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이들은 다음날 8월16일 미국 뉴욕을 출발해 인천에 도착했다.


방문 결과 보고서에 기록된 이들의 주요 일정은 오찬과 만찬 그리고 교민간담회와 예방이다. 의원친선협회의 목적인 ‘상대국 의회의원 간의 상호교류 및 친선활동’과 상통한다. 그러나 특활비가 지급된 것은 의문이다.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국정수행 활동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진 의원은 개인일정으로 7월28일 인천을 출발해 같은 날 미국 시애틀에 도착했다. 그는 개인일정 후 8월9일 미국 플로리다를 출발해 같은 날 도미니카 산토도밍고에 도착했다.

민주당 이 의원 역시 개인 일정으로 8월5일 인천을 출발해 같은 날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이후 8월8일 뉴욕에서 대표단과 합류했다. 이 의원은 대표단에 합류하기 전인 8월5∼7일까지의 체재비와 숙박비를 개인 부담했다. 
 

이 의원은 개인 사정으로 자메이카 일정에 불참했다. 자메이카 일정을 취소한 이 의원은 8월 13일 파나마 파나마시티서 출발해 같은 날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이 의원은 대표단과 달리 8월15일 미국 뉴욕을 출발해 8월16일 인천에 도착했다.

선진당 박 의원은 개인 일정으로 같은 해 7월22일 사전 출발했다. 박 의원은 8월8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서 출발해 같은 날 미국 뉴욕에 도착했고 이어 대표단과 합류했다. 이후 일정은 대표단과 같다.

2012년엔 ‘한·대만, 한·싱가포르 의원친선협회 대표단 상대국 방문경비’서 의원친선협회 방문 명목으로 가장 많은 특활비가 사용됐다. 총 297만9020원이었다. 공개된 방문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2년 5월7일부터 13일까지 6박 7일 일정이었다. 


이곳을 방문했던 대표단은 총 4명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조진형·강승규 의원과 민주통합당 유선호·박우순 의원이었다. 대표단을 지원하기 위해 당시 이덕형 국제협력관이 동행했다. 대표단이 이용했던 비행기 좌석은 모두 비즈니스석이었다.

보고서 주요 일정에 따르면 이들은 5월7일 인천을 출발해 같은 날 대만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이날 대표단은 당시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 주최의 만찬을 가졌다. 이들은 다음날인 5월8일엔 임덕복 대만 입법위원 주최의 오찬에 참석했다. 

이후 대표단은 교민 간담회를 가졌다. 이튿날 5월9일 대만 타이베이를 출발한 대표단은 같은 날 싱가포르의 수도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이날의 공식 일정은 보고서에 기록되지 않았다.

다음날인 5월10일 대표단은 주싱가포르 대사주최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싱가포르 국회부의장과 싱가포르 의원 3명이 동석했다. 이어 대표단은 주싱가포르 한인회장 주최의 만찬에 참석했다.

대표단은 그 다음날인 5월11일 싱가포르 싱가포르를 출발해 같은 날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했다. 필리핀을 방문한 까닭은 경유를 위해서였다. 이들은 이날 주필리핀 한국대사 주최의 만찬을 가졌다. 대표단은 5월13일 필리핀 마닐라를 출발해 같은 날 인천에 도착했고 공식 일정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그 사이 5월12일의 일정은 보고서에 기록되지 않았다.

대표단 역시 상대국 의회의원과 만나 교류하는 등 의원친선협회 방문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을 했다. 그러나 친선협회 방문 차 기밀을 요하는 특활비를 받은 것에 대해선 의문이다. 보고서에 기록된 대표단의 공식 일정은 오찬과 만찬 그리고 간담회뿐이었다.

밥 먹고 구경
굳이 써야?

2013년에는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의원친선협회 상대국방문 경비’서 방문외교 명목으로 가장 많은 특활비가 지급됐다. 총 721만5100원이었다. 

공개된 방문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3년 7월28일부터 8월6일까지 8박 10일 일정이었다. 대표단은 총 6명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송광호·정갑윤·신성범 의원과 민주당 백재현·이찬열 의원 그리고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이었다. 의원외교활동을 보좌하기 위해 당시 이경은·임진표 국제협력관이 동행했다.

대표단은 비행기를 총 9번 이용했다. 이 중 비즈니스석이 5번, 일반석이 2번이었다. 나머지 2번은 ‘현지항공’ 이라고 보고서에 기재됐다. 이 현지공항은 모두 일반석이었다.

대표단은 7월28일 인천을 출발해 같은 날 인도 델리에 도착했다. 이들은 도착 후 숙소서 휴식을 가졌다. 대표단은 다음날 7월29일 델리 시내를 시찰했다. 이후 자유오찬을 가진 대표단은 인도·한 의원친선협회장과 면담을 했다. 이후 인도 국회의장을 예방했다. 

저녁엔 대사주최 만찬을 가졌다. 이튿날 7월30일엔 인도 델리를 출발해 인도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보고서엔 이날 대표단이 전일 문화 시찰을 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다음날 7월31일 대표단은 인도 바라나시를 출발해 인도 델리로 복귀했다. 

대표단은 이날 델리 시내를 시찰하며 자유일정을 가졌다. 이들은 이날 인도 델리를 출발해 스리랑카 콜롬보에 도착했고 숙소서 휴식을 가졌다.
 

다음날 8월1일 대표단은 콜롬보 시내와 스리랑카 국회를 시찰했다. 이후 스리랑카·한 의원친선협회장을 면담했고 선물가게를 방문하는 등 시내 시찰에 나섰다. 이어 이들은 스리랑카 경제개발부장관과 만났고 숙소 체크아웃 후 골(스리랑카 도시 이름)로 향해 만찬을 가졌다.

이튿날 8월2일 골 주변을 문화시찰하고 콜롬보로 돌아와 시내시찰을 이어갔다. 이후 대표단은 대사주최 만찬으로 하루를 끝냈다.

다음 날 8월3일 이들은 스리랑카 콜롬보를 출발해 태국 방콕에 도착했다. 비행기 경유를 위해 태국에 도착한 것이다. 대표단은 공항 근처서 오찬을 가진 뒤 미얀마 양곤으로 향했다. 미얀마 양곤에 도착한 이들은 만찬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튿날 8월4일은 전일 문화시찰과 자유일정을 가졌다고 기록돼있다. 이들은 8월5일엔 미얀마 양곤을 출발해 미얀마 네피도에 도착했다. 대표단은 이날 하원 국회부의장을 예방하고 하원 국제관계위원장과 면담했다.

같은 날 오후 미얀마 네피도를 출발해 미얀마 양곤에 도착했다. 대표단은 대사주최 만찬을 가졌고 오후 늦게 미얀마 양곤을 출발해 다음날 8월6일 인천에 도착했다.

보고서에 기록된 대표단의 일정은 문화시찰 및 시내시찰과 자유일정, 면담과 예방 그리고 오찬과 만찬이 전부였다. 기밀 유지를 필요로 하는 특활비가 지급된 것에 대해 의문이 생기는 까닭이다.

의원외교 예산 따로, 특활비 따로
국회 외유성 논란 스스로 해결해야

국회에선 의원들의 외교활동을 위한 예산이 따로 책정된다. 그러나 의원들은 친선협회 방문을 명목으로 특활비를 받았다. 결과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의원들의 외교활동엔 기밀과 관련된 사안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음표가 찍히는 까닭이다. 최근 공개된 특활비 내역으로 의원 외교활동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의원외교 활동은 필요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그 절차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문제가 반복된다면 의원들의 외교활동이 자칫 외유성 출장으로만 비춰질 수 있다. 국회 스스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이 대두되는 까닭이다.

언급된 사례뿐 아니라 특활비가 사용된 대부분의 의원친선협회 방문은 오찬과 만찬, 면담과 예방 그리고 문화시찰 등으로 이뤄져 있었다. 기밀성이 요구될만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활비 논란이 부상하면서 정당들은 특활비 폐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특활비의 폐지보다 제도개선에 힘을 싣고 있다. 민주평화당 역시 이와 대동소이하다. 반면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은 특활비 폐지를 내세우고 있다.

외교? 외유성?
경계 선명해야

특활비 폐지에 앞장서고 있는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지난 8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서 의원 외교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노 원내대표는 ‘의원외교가 기밀 유지 등이 요구되기에 특활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는 질문에 “나도 의원외교를 해 봤지만 기밀을 요구하는 활동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의원 외교 명목의 특활비는 거의 다 외국 나가는 의원들에게 용돈 비슷하게 지급된 사실을 감안하면 국회에선 필요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특활비 폐지법’ 이름 올린 의원은?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지난 5일 특활비 폐지 내용을 담은 국회법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에 총 11명의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정의당 심상정·김종대·윤소하·이정미·추혜선 의원,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서형수·표창원 의원,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 그리고 민중당의 김종훈 의원이다. 

개정안은 국회의장이 국회 소관 예산요구서를 작성할 때 특활비를 제외하고, 국회의장 소속 국회예산자문위원회를 신설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도록 했다.

한편 이보다 앞서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작년 11월 특활비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 공동발의한 의원은 바른미래당 권은희·오신환·유승민·유의동·이언주·정병국·정운천·박인숙 의원 등이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국회의장이 국회 소관 예산요구서를 작성할 때 특활비 등 별도의 총액으로 제출하는 항목을 포함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수>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