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의 대북원조 시나리오

1조? 2조? 북한에 얼마나 퍼줄까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남북 경협이 시작됐다. 북핵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의 연장선이다. 남북은 최근 철도와 도로에 대한 회담을 마쳤다. 인프라 투자를 통해 이전보다 교류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대북 지원은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다분했다. 이번엔 다르다. 북한 역시 단순 원조를 떠나 경제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남북은 최근 판문점서 철도 및 도로협력 분과 회담을 연이어 개최했다. 남북 경협의 토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까닭이다. 남북은 이번 회담서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과 함께 현대화 사업을 논의했다. 이와 관련한 남북 간 협의는 지난 2008년 개성공단 회의 이후 약 10년 만이다.

철도·도로
남북 회담

철도와 도로는 교류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교통 인프라의 개선으로 가시적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남북은 이번 ‘철도회담’서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문제에 대해 다뤘다.

우선 남북은 북측구간(금강산∼두만강, 개성∼신의주)에 대한 현지 공동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어 다음 달 중순경 경의선 철도 연결구간(문산∼개성)과 동해선 연결구간(제진~금강산)을 공동점검할 예정이다.


‘도로회담’에선 경의선 도로(개성∼평양)와 동해선 도로(고성∼원산)를 현대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남북은 이를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남북은 철도와 마찬가지로 도로의 연결과 현대화를 위해 공동연구조사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공동조사는 8월 초 경의선 도로를 시작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대북제재가 유효한 상황이다. 이번 회담서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논의되지 못한 이유다. 우선 남북은 공동실태조사와 공동연구를 진행한다는 데 합의했다. 대북제재가 존재하는 상황에 발맞춰 접점을 찾은 셈이다.

이번 도로협력 회담 남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정렬 국토교통부 2차관은 제재의 현실성을 지적했다. 다만 그는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제재가 풀리면 할 수 있는 여러 사안들을 충분히 연구조사하고 준비할 사안이 있다”고 말했다. 

대북제재가 일단 존재하지만 남북 경협 및 교류를 위한 물꼬는 트겠다는 것이다.

이어 우리 측 대표단은 향후 대북제재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은 국제사회와 함께 풀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은 “일을 하다보면 제재에 저촉되거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는 기본적으로 제재 틀 안에서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하며 진행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철도·도로 회담, 남북 경협 물꼬
과거 단순 원조 떠나 인프라 투자로

이번 회담은 무엇보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서 발표한 판문점 선언의 후속조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반도 평화와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첫 출발점이라 봐도 무리가 없다는 평가다. 남북 철도 및 도로의 연결을 넘어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있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부서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여러 대북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도발로 그 신뢰가 구축되지 못했다. 대북지원이 ‘퍼주기’라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 까닭이다.

여러 정권서 있었던 대북지원은 보통 쌀과 비료 등 인도적 차원의 지원으로 귀결된다. 처음으로 북한에 쌀을 지원한 정권은 김영삼정부다. 김영삼정부는 지난 1995년 수해 지원용으로 15만톤의 쌀을 북한에 무상 지원했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통해 대북 원조의 고삐를 당겼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해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대중정부 초기부터 북한과 교류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남북 교류의 도화선이 된 것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과 김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었다. 민간 교류를 통해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다.

1998년 정 회장은 소 1001마리를 끌고 방북해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떼 방북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시작되면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기틀이 마련됐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 사람들이 관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약 100만명이 넘는 남측 관광객이 다녀갔다. 또한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2000년 5월 말까지 1만667명이 북한을 방문했다. 이는 1989년 방북 허용 이후 전체 방북 인원의 80.5%에 해당 된다.

소떼 시작
교류 물꼬

민간 교류에 힘입은 남북 관계는 김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자리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남북의 화해 협력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에 이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6·15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남북정상이 최초로 마주한 때였다.

당시 북한은 식량 상태가 좋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정부 차원서 인도적 지원에 나섰다. 김대중정부에서는 쌀 70만톤과 옥수수 20만톤 등 식량과 비료 91만5000톤이 지원했다. 각각 9085억원, 2753억원 상당의 물량이었다.


김 전 대통령에 이어 노 전 대통령 역시 햇볕정책을 계승했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노무현정부는 180만톤의 쌀과 160만톤의 비료를 북한에 지원했다. 각각 2조5143억원과 5119억원에 달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는 2001년을 제외하고,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연간 약 40만톤의 쌀을 인도적 차원서 지원했다. 2006년 무상지원을 제외하면 나머지 기간은 차관형식으로 북한에 지원했다. 

10년 거치 20년 분할상환에 연리 1%의 조건이 붙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운영도 지속됐다.

그러나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피살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 국면으로 진입했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은 결정적이었다. 이명박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5·24 대북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2010년 북한의 수해로 인해 5000톤의 쌀이 무상으로 지원됐지만 남북관계의 냉각기를 피할 수 없었다.

박근혜정부에선 대북 쌀 지원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간 차원의 지원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북 쌀 지원만 살펴볼 때 정부 차원에서 지원한 쌀은 모두 265만5000톤에 달한다. ▲김영삼정부 15만톤 ▲김대중정부 70만톤 ▲노무현정부 180만톤 ▲이명박정부 5000톤을 합한 것이다.


문 대통령 역시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남북교류의 시작을 알렸다. 다만 이번 남북 경협은 과거의 단순한 식량 원조를 넘어선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번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 

철도와 도로를 시작으로 경제특구 조성 등이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김정은 북한 위원장은 싱가포르 시내 투어를 통해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은 일시적 원조를 받는 것보다 자강에 힘을 쏟으려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런 연유로 현재 남북 간 이뤄지고 있는 인프라 투자는 경제 체제의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단순 원조 넘어
대규모 인프라로

최근 남북 간 철도 및 도로 회담과 함께 미국과 중국서도 북한의 경제 분야가 언급되곤 했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부동산’을 언급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각) 미국 기독교 방송 TBN과의 인터뷰서 “김정은이 북한으로 기업을 들여오고 싶어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입지 측면이나 부동산서 (북한은)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관계자가 ‘북한 해변의 콘도 건설’에 대해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될 것으로 매우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특별한 이행이 없다는 것을 고려해 대북제재를 1년 연장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부동산 언급과 함께 중국의 대북투자 역시 주목된다. 김 위원장과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은 지난 북미정상회담 이후 3차 정상회담을 개최한 바 있다. 이 자리에 북한 경제 관료들이 참여하면서 중국의 대북투자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 이전에는 북한의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 대북투자 적극적 홍보 나서
전적으로 비핵화 조치에 달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북중정상회담서 시진핑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대규모 대북 투자를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 위원장이 경제특구 공동개발과 기초 인프라 건설 협조 등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이 주목된다. 단순한 식량 원조를 떠나 경제체제가 자리 잡히길 원한다는 시각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당시 3차 북중정상회담을 두고 중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해줄 것이란 분석이 있었다. 김 위원장이 한미연합훈련 유예를 이끌어낸 것의 보상이라는 것이다. 양국이 중국의 대북투자에 힘입어 경제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대두된다.
 

북한 당국 역시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는 모양새다. 북한은 지난달 8일 국가관광총국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조선관광’을 새롭게 단장했다. 국가관광총국은 북한의 관광사업 전반을 다루는 기관이다. 

북한은 주요관광 지구를 상세하게 소개하며 투자를 권장했다. 홈페이지에 언급된 지역은 평양, 백두산, 남포, 개성, 신의주, 원산-금강산 등이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건 원산-금강산지구다. 북한은 이 지역의 현재 개발 계획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투자를 권장했다. 

북한이 외국인 투자자 유치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 역시 지난 정권과 그 궤를 같이하며 남북경협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독자적이고 직접적인 대북 지원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간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대북제재가 실행된 까닭이다. 그 연유로 남북경협 역시 국제사회의 협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제재와
투자 얽혀있어

이번 남북 경협은 단순한 원조를 넘어선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단순 원조는 북한 경제에 자극을 주기 어렵다. 반면 인프라 투자는 북한 경제의 활성화를 야기할 만한 수단으로 꼽힌다. 다만 경협 문제는 전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주목 받는 원산·갈마지구

북한이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관광 리조트를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7일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북한은 원산·갈마 해안관광 지구에 관광 리조트와 부대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김정은 북한 위원장은 원산·갈마 지구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안가를 따라 호텔과 워터파크는 물론 카지노까지 조성해 북한 경제 재건을 도모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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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