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오는 12일 ‘세기의 담판’이 시작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한국시각)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서 만난다.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시작으로 물꼬를 튼 북미정상회담은 우여곡절 끝에 회담 성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핵심 의제는 비핵화다. 두 정상이 비핵화 방식에 따른 접점을 얼마나 찾을 수 있느냐가 이번 회담의 관건이다. 또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미래와 동북아 정세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은 가시적이다.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협의는 마무리됐다. 두 정상이 회담서 다룰 의제 협의는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서 진행됐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중심으로 갖춰진 북미 대표단은 지난달 27일을 시작으로 지난 6일까지 총 여섯 차례 만남을 가졌다.
비핵화-체제보장
실무협상 마무리
핵심 의제는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안정보장 조치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단은 의견 조율을 통해 정상회담 후 발표할 문서의 초안을 다잡은 것으로 점쳐진다. 비핵화 등에 따른 양국 간 의견 차가 꽤 좁혀진 것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북미 간 실무협상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 이후 급물살을 탔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과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이후 그는 지난 1일(현지시각) 김 위원장의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친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을 갈망하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서 전달 직후 북미 대표단은 지난 2∼4일과 지난 5일에 연속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양국 간 의견 조율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4일(현지시각) 정례 브리핑을 통해 “미 대표단이 북측 대표단과 외교 협상을 계속하고 있는데 긍정적 논의와 중대한 진전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샌더스 대변인의 발언은 북·미 대표단의 5차 실무협상 뒤에 나온 까닭에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경호 등과 관련한 의전 협상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과 조지프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양국 정상의 의전 협의를 위해 싱가포르서 회담을 가졌다.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은 지난 6일, 싱가포르서 출국해 베이징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고, 미 대표단은 그보다 이른 지난 2일 출국했다.
북미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두 정상이 비핵화에 대한 간극을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회담의 성사에 이은 성과는 그 차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의 최대 승부처라 할 수 있다.
북-미 비핵화 방식 간극 좁히나
CVID와 체제보장 ‘빅딜’ 가능성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고수한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만을 허용하는 일괄 타결식 해법을 언급하며 강조된 CVID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내세우고 있다. 스스로 신뢰할만한 보상이 나오지 않는다면 핵을 일괄적으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핵화의 대가가 만족할 정도로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두 차례 방북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미, 그리고 판문각 실무협상 등 끊임없는 물밑접촉이 이어지고 있지만 핵심 의제에 대한 양국 간 격차는 쉽게 줄어들기 어렵다는 해석도 나온다. 회담 전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 발언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지난 1일 백악관서 김영철 부위원장과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6·12 회담을 두고 “과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나는 (회담이)한 번 이라고 말 한 적 없다”며 “한 번에 성사된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비핵화 의제가 단번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일괄적 CVID를 추구하지만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북한이 좀 더 전향적인 태도로 나올 수 있는 틈을 제공해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전달 이후 공식적인 발언을 일절 하지 않았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트럼프의 속도전에 대의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 간극
회담 성과 관건
두 정상이 단 한 번의 회동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맞물려 있는 만큼 이번 정상회담서 합의될 수 있는 사안은 비핵화의 큰 틀 정도로 좁혀진다. 그에 맞춰 후속조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합의가 나오려면 비핵화 방식은 완전한 핵 폐기로 수렴되는 CVID로, 그에 따른 보상은 북한이 신뢰할만한 체제안정이 나와야 한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핵을 체제 존속의 보루로 보는 공산이 크다.
반면 미국은 핵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상반된 두 의견이 접점을 찾으려면 북미 중 누군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 하는 형국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단발성 회담 가능성을 일축하고, 속도전을 언급하면서 팽팽한 양국의 줄다리기서 일련의 틈을 보였다. 그 틈은 북한에 대한 보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동시에 김 위원장의 입장을 확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상의 궤도는 CVID를 벗어나지 않는 쪽으로 잡힐 것이란 해석이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과정과 속도전을 언급해 김 위원장이 강조한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방식에 힘이 실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백악관과 미국 국무부는 단계적 비핵화는 과거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 할뿐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단호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체제 안전보장을 통해 북한의 신뢰를 얻으려 할 것이지만 이는 CVID를 향한 디딤돌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비핵화 보상의 일환으로 언급되는 체제 안전보장 조치로 종전선언이 언급된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당시 진행된 판문점 선언이 종전선언의 도화선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추진을 약속했다. 이어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그치지만 평화협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이기도 하다.
북한이 바라는 체제 안전보장 조치는 미국과의 종전선언에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종전선언을 거친 평화협정 체결을 안전보장의 조치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외교적 관계를 맺어 정상국가로서의 도약을 바란다는 해석이다.
다만 북한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대가로 CVID를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결국 북미정상회담은 전적인 비핵화 합의보다 종전선언과 같은 정치적 선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가로 북한의 전향적인 비핵화 방식이 큰 틀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그동안 양국 접촉이 톱 다운 형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비춰봤을 때 예측불허의 두 인물이 회담에 직접 자리하는 만큼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보장 조치를 주고받는 등의 빅딜 가능성 역시 생각해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두 정상 간 극명한 의견차이로 회담 이후 북핵과 동북아 정세가 다시 난기류로 흘러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애초에 비핵화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차가 현저한 까닭이다.
회담의 성과가 가시적이지 않을 경우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 과정서 밀려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목소리를 높일 공산이 크다. 과거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러-일
개입 본격화?
중국은 대내외적으로 ‘차이나 패싱’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은 남북정상회담 이전까지 북핵 등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정세에 있어 굳건한 입지를 자부했다. 그러나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와 종전선언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틈을 파고들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과의 남중국해 갈등, 트럼프 대통령의 ‘시진핑 배후설’ 언급 등으로 비핵화 의제의 중심서 벗어났다.
다만 중국은 지난 두 차례 북중 정상회담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중, 경제사절단 교류 등으로 정세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포석을 깔아놨다. 또 북한과 우방 국가를 넘어선 혈맹국가인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남북미가 주도하는 비핵화 과정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북미정상회담이 마땅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중국은 본격적으로 정세에 개입할 확률이 크다.
러시아 역시 북한과의 수교 70주년을 맞아 올해 김 위원장에게 북러정상회담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은 이에 합의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달 31일 방북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바 있다.
북한과의 우방국인 러시아도 북미정상회담 이후 동북아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8∼10일 중국 칭다오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OC) 정상회의에 참석차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 정세 가운데 힘을 잃지 않겠다는 러시아와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회담 이후 중·러·일 개입 가시화
주변국 변수 맞물린다면 시계제로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를 향한 진전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북·중·러 구도의 삼각펜스가 강화될 조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의 비핵화 과정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양국은 미국이 나서 북핵 비핵화의 주도권을 잡는 모양새를 두고 동북아 정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에게 북핵은 동북아 정세가 이전처럼 형성될 수 있는 계기가 될 만한 사안이다.
패싱의 정점을 찍은 일본은 명분만 쥐어진다면 북핵 과정에 개입하고 싶은 의지가 다분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주변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대북 연락책을 구비하지 못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8∼9일 캐나다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앞서 지난 7일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는 이번 미일정상회담서 미국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북미정상회담의 의제로 올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북한은 ‘이미 끝난 문제’라며 못 박고 있어 의제로 설정될 지는 불투명하다.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며 북일대화의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과거 한·미·일 구도의 ‘대북 제재’를 외쳤던 일본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대북제재 무기한 연기 발표와 ‘최대한의 압박’이라는 표현을 거둬들이면서 일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의 큰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일본은 적극적으로 개입할 공산이 크다. 패싱의 중심에 선 만큼 입지를 제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하다는 이유에서다.
세기의 담판으로 불리는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를 향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관전 포인트는 CVID를 내세우는 미국과 신뢰할 만한 체제 안전보장을 바라는 북한과의 간극이 얼마나 좁아질 수 있을지다.
큰 얼개 없다면
향후 시계제로
북미가 큰 틀을 마련한다면 다시금 남북미 주도로 후속 조치와 세부 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 있어서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공전할 경우 패싱의 그늘에 가려졌던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입지를 되찾기 위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변수가 많아지는 만큼 북핵문제가 난기류에 빠질 공산이 클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