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모드’ 중국의 한반도 플랜

시진핑은 김정은 놔줄까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북미정상회담의 시계가 빠르게 흘러가면서 중국 변수가 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혈맹국로 한반도 문제에 상당한 입지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 흐름에 로우 키(low key)로 일관하고 있다. 또 일각서 제기되는 ‘중국 배후론’과 ‘차이나 패싱론’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을 뿐 주목할 만한 행보는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은 비핵화 협상이 계속될수록 자국의 입지가 저절로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통보로 북미회담은 한때 좌초위기에 빠졌지만 다시 정상궤도에 올랐다. 오는 12일로 예정된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는 치열한 물밑협상을 ‘쓰리 트랙’으로 이어갔다. 회담 간 의제와 의전을 다룰 ‘판문각 팀’과 ‘싱가포르 팀’이 전면에 나섰고, 양국 정보당국 간 접촉도 이어졌다.

좌초위기 후
다시 본궤도

북한과 미국은 6·12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의제와 의전 등에 관한 협상을 가졌다. 북측 대표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 부국장으로 꾸려졌다. 미국 측 대표는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를 중심으로 엘리슨 후커 백악관 한반도 보좌관, 랜달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갖춰졌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한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서 첫 회담을 가졌다. 이들은 같은 달 30일에도 만나 협상을 진행했다.

또 북미는 의전·경호 등을 논의하기 위해 싱가포르서 만났다. 북한에선 ‘김정은의 집사’로 불리는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이, 미국에선 조지프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회담장에 나섰다.


북미는 이외에도 미국 CIA와 북한 정보당국 간 협상채널을 연 것으로 보인다. CIA와 접촉하는 북한의 정보당국은 통일전선부로 전해진다. 특히 CIA 산하 ‘KMC’라는 조직이 협상의 전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KMC는 코리아미션 센터를 뜻하는 말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CIA국장으로 있던 시절 대북 핵심조직으로 창설했다. KMC를 이끌고 있는 인물은 앤드류 김으로 북미정상회담 준비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비밀리에 방북했을 당시 동석했던 인물이다.

판문점과 싱가포르 외에 정보당국 간의 접촉으로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은 투 트랙을 넘어 ‘쓰리 트랙’으로 진행됐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에 도착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나 회담을 가졌다. 판문점서 다뤘던 의제에 대해 보충하며 조율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김영철 부위원장과의 만찬 이후 “아주 멋졌다”며 북미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의 기대감을 높였다.

뉴욕회담 이후 김 비핵화 의지 재확인
“북미대화 그치지 않고 협상 지속될 것”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다음날 김영철 부위원장과의 고위급 회담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와 북한의 체제보장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골자였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조건들을 설정하는 데 지난 72시간 동안 실질적 진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72시간은 판문각과 싱가포프서의 협의, 뉴욕서의 고위급회담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직 많은 일이 남아있다”며 북미정상회담의 전망만을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진행상황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어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라고 믿는다”라며 “앞으로 수주 또는 수개월간 그것이 이뤄질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의 핵심의제인 비핵화 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다. 정상회담이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닌 비핵화 궤도에 오를 수 있는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의지를 보이라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 방법에 대해 CVID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목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밝혔다. 이어 비핵화 범위에 대해 “핵 프로그램의 모든 요소들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와 이를 충족하기 위한 조건들을 강조한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의 보상 격으로 주어지는 체제보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세계가 북한에 요구하는 비핵화와 북한에 필요한 체제보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많은 대화를 했다”며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맞바꿀 수 있다는 ‘빅딜’을 암시하기도 했다. 

비핵화의 보상 격으로 주목되고 있는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선 “알 수 없다”고 언급했다.

완전 비핵화
김 결단 촉구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방법을 두고 완전한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달 개최되는 정상회담이 추가로 열릴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북한과 비핵화 합의를 하기 위해서는 한 번 넘게 회담이 필요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협상 과정이 지난할 것으로 점쳐지지만 김 위원장 역시 비핵화 의지를 언급한 점은 긍정적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만남서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변함없고 일관하며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북미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고,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가 진행되면서 중국의 입장이 주목된다. 중국은 대북 영향력이 가장 큰 국가로 꼽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의 동맹국을 넘어 혈맹국가로 통한다. 또한 중국은 과거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의 중심에 자리할 정도로 한반도 내 주도권을 쥐고있다.

중국은 과거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도발에도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를 언급하는 데 그쳤고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소극적이었다. 북한 인권문제가 UN 안전보장이사회서 논의될 때 중국은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중국이 북한의 ‘뒤’를 봐준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큼 양국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북한에 힘을 보탠 까닭은 미국과의 패권다툼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에게 한반도는 미국과의 패권을 다툴 수 있는 장으로 여겨진다. 미중 간 패권 다툼의 무대가 형성되려면 한반도의 분단과 북핵문제가 지속돼야 한다. 

분단과 북핵이 완전히 해결된다면 중국과 미국은 패권을 다툴 명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의 한반도 내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뿐 아니라 동북아 정세의 주도권 역시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상황서 중국이 직접적인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이유다. 


남은 건 중 선택…원론만 되풀이
“패권도 주도권도 놓지 않을 것”

중국은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 협상에 있어 직접적으로 입장을 드러내거나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다. 이에 ‘차이나 패싱론’과 ‘중국 소외론’ 등이 제기됐지만 중국은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일각서 제기되고 있는 ‘차이나 패싱론’ ‘중국 소외론’ 등에 선을 그었다.

<환구시보>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한국과 미국은 중국을 경시해도, 의존해서도 안 된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신문은 “북한이 최근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강경 발언을 한 뒤 중국이 북한을 선동해 태도를 바꾸게 했다는 소문을 한미 언론이 퍼트려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배후론’을 언급한 것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개최된 2차 북중정상회담 이후 김 위원장이 강경한 태도로 나오자 ”배후에 중국이 있다“며 중국을 향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이후에도 배후론을 재차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시진핑 중국 주석을 ‘세계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라고 말한 바 있다.

발등에 불
꽤나 차분


중국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북미정상회담 취소에도 당황스러운 기색을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관망하는 모양새였다.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뉴욕회담 이후 발표에도 덤덤해 보였다. 

중국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로우 키(low key)로 기조를 이어가는 까닭은 북핵을 해결하는 데 있어 시간이 걸릴 것이고, 또 그 과정서 본인들의 입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북미정상회담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국과 북한이 핵 해결방식을 두고 큰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동시적-단계적 해결은 상반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만남 이후에도 양국은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한미의 비핵화 해결이 지난하게 흘러갈 경우 한미는 중국의 문을 두드릴 가능성이 높다. 북한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중국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 역시 한미 주도의 비핵화에 충분한 신뢰가 쌓여있지 않기에 중국을 이용할 여지가 높다. 남북미가 비핵화의 접점을 찾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결국 중국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해석에서다.

중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대표적이다. 종전선언 등은 북한에 대한 체제 보상의 일환으로 작용한다. 지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발표된 판문점 선언서 남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또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중국을 포함해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중국 역시 지난달 31일,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요 당사국이자 정전협정 서명 당사국으로서 역할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북한이 한미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로 평가받는다. 종전선언이 비록 정치적 선언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지만 종전선언이 있어야 평화협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종전선언에 중국이 설령 빠진다고 해도 평화협정에는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을 배제한다면 향후 정세가 시계제로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또, 중국은 한국전쟁 교전 당사국이면서 정전협정의 서명국이다. 그런 연유로 중국은 평화협정 체결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한국은 다시금 중재자의 위치에 서서 중국의 개입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아도 그 입지가 올라가는 까닭이다.

현재 정세는 한미가 중심이 돼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실제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데 충분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북한을 중국과 연계해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위해서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여느 국가들보다 강력하다. 중국은 북한을 통해 동북아 정세에 막강한 파급력을 행사했다. 미국과의 패권다툼 역시 북한을 사이에 둔 측면이 크다.

북한과 연대
입지 자동상승

중국이 오늘날과 같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북핵이었다. 북핵을 통해 입지를 드러낼 명분을 쌓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의 무력도발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경제적 도움을 지속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중국은 그 명분이 한미 주도의 비핵화로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가 중국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아직까지 중국은 평화와 비핵화를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향후 어떤 목소리를 낼지 주목된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러시아 움직임은?

북한과 러시아는 수교 70년인 올해 북러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데 합의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백화원 영빈관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서를 전해 받으며 정상회담에 합의했다고 지난 1일 보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김 위원장과의 만남서 러시아에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라브로프 장관과 만남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지도부가 미국의 우월주의에 저항하고 있는 것을 평가한다. 우리는 항상 이와 관련한 깊은 공조에 대해 러시아 측과 협의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와 우리의 우호 관계를 더 강화·발전시키고, 긴밀한 우리의 협력을 더 심화시키기 위한 향후 협력에 기여할 것”이라 밝혔다.

러시아는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 협의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를 언급하며 원론적 입장에 그쳤다. 

오는 12일 예정된 북미 싱가포르 회담에 대해서는 북미 정상회담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에 대해 지지를 보냈다. 비핵화 과정서 중국의 입지가 부상하는 것과 관련해 러시아의 움직임 또한 주목된다. 러시아 역시 북한의 우방국으로 통한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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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