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파워블로거의 파워

여론 쥐락펴락 ‘포털 황제’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드루킹 사건’의 마침표가 언제쯤 찍힐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는 포털에 게재된 뉴스 기사를 대상으로 불법프로그램을 이용해 댓글과 공감수 조작 혐의를 받고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기저 아래 운용되던 댓글이 조작이라는 범죄에 오염된 것이다. 공론의 장으로 여겨졌던 포털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파워블로거는 가상의 인터넷 공간뿐 아니라 현실세계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17일 ‘드루킹’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김씨를 포함한 3명은 문재인정부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고 공감수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됐다. 드루킹은 이들 가운데 주범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조작프로그램을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기사 댓글 2개의 공감수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치 판세
분석·전망

댓글은 ‘문체부 청와대 여당 다 실수하는 거다. 국민들 뿔났다’ ‘땀 흘린 선수들이 무슨 죄냐’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남북여자하키단일팀 구성을 두고 2030세대 사이서 정부 결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증가했던 시기를 노린 것이다. 

김씨 등은 느릅나무 출판사라는 곳에서 함께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곳에서 주로 심야 시간에 공감클릭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은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드루킹의 공범 박모씨에 대해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했다. 박씨의 필명은 '서유기'다. 


박씨는 드루킹의 지시를 받아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입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를 받은 드루킹이 기사 공감수를 조작한 것이다. 박씨는 드루킹과 함께 느룹나무 출판사 공동 대표를 맡았다. 박씨 역시 드루킹과 마찬가지로 SNS 등에 서유기라는 필명으로 여론과 관련된 글을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드루킹은 인터넷 포털을 무대로 삼았다. 대부분의 대중들이 인터넷 포털을 통해 뉴스를 이용한다는 사실에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7 언론수용자의식조사’에 따르면 지난 1주일간 미디어 이용률은 모바일 인터넷의 경우 82.3%로 TV(93.2%)의 뒤를 이었다. 

모바일 인터넷과 TV의 뉴스 이용률은 각각 73.2%, 85.5%였다. 많은 대중들이 TV만큼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이용자들이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1주일간 1일 이상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 포털 뉴스를 이용한 빈도는 70.9%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1주일간 뉴스를 이용한 포털이 무엇인지 조사한 결과 네이버가 68.4%로 가장 높았다. 드루킹이 포털 중에서도 네이버를 선택한 이유다.

대중들은 네이버 자체를 많이 이용하기도 하는 편이다. 네이버의 검색 시장 점유율은 70%가 넘는다.

각 사이트 주름잡는 베일 속 블로거
댓글·공감 매크로프로그램으로 조작

네이버는 뉴스를 유통하는 데 있어서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언론사들은 네이버와 제휴를 맺고 기사를 송고한다. 이를 바탕으로 네이버는 뉴스 서비스를 이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언론사별로 보도되는 기사와 방송영상을 카테고리 형식으로 내놓는다. 


또, 이용자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뉴스를 상단에 배치해 이슈를 선정하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네이버는 언론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포털을 언론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54.2%로 과반수를 넘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7 언론수용자의식조사’) 네이버가 뉴스의 통로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네이버는 여론 형성에 상당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조회 수에 따라 기사를 배치하는 것을 비롯해 ‘공감·비공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기사 하단 부분에 이용자들은 댓글을 남길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댓글에 공감과 비공감을 표시할 수 있다.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은 베스트댓글이 돼 댓글창 상위에 자리하게 된다. 포털을 통해 뉴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베스트댓글은 여론의 지표로 여겨지곤 한다. 반대로 비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은 창에서 내려가거나 삭제되기도 한다.

드루킹은 공감·비공감 시스템을 이용했다. 그는 네이버 아이디(ID) 614개와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특정 기사 댓글에 공감을 클릭해 댓글을 조작했다.

시스템 한계
대책이 없다?

드루킹은 베스트 댓글을 임의로 조정해 여론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댓글 시스템은 클릭이라는 다소 단순한 절차로 이루어져있다. 댓글이 순수한 대중의 참여와 조작이라는 기로에 서 있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 

댓글의 진입장벽은 낮은 편이다. 많은 이용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소득, 학력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댓글을 완전히 금지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댓글만큼 사용하기 편하고 대략적인 여론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그리 흔하지 않다.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댓글로 나타난다. 댓글문화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포털이 공론의 장으로 평가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정 기사에 대한 조회 수로 여론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댓글에는 그 기사에 대한 이용자들의 생각이 드러난다.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이번 드루킹 사태는 댓글문화가 활발하게 형성되고 있는 포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번 사건으로 댓글의 공감과 비공감 ,그리고 베스트 댓글은 대표성을 상실했다. 많은 이용자들 대신 아이디를 끌어 모으고,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앞으로는 순수한 참여마저 의심을 받고, 부정을 당할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포털을 완전히 폐쇄하기는 어렵다. 포털은 공론의 장이다. 특히나 네이버와 다음 등 뉴스를 제공하는 포털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용자들은 포털 속 뉴스들에 대해 댓글이라는 다소 손쉬운 시스템으로 여러 의견을 내세울 수 있다.


또한 포털은 이용자수가 다양하다. 포털이외에 카페, 블로그, 커뮤니티 등에서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용자수가 포털보다 적고, 특정 기호를 바탕으로 모인 곳이기에 한계가 있다. 여론을 형성할 수는 있겠지만 포털만큼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론의 장’ 역할 의문 제기
“혁신적 대안 필요하다” 지적 

공론의 장으로 여겨지는 포털에 대한 제약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논란으로 번질 우려도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직접적인 폐쇄는 대안으로 보기 힘들다. 댓글을 실명제로 전환하자는 제안도 있다. 

이름을 밝힌 상태서 댓글을 작성한다면 여론 조작에 아이디가 동원되거나 불법 프로그램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좀 더 투명한 여론의 반영을 꾀하는 것이다.
 

이와는 상반되는 의견도 있다. 지금처럼 댓글문화가 정착하게 된 계기에는 익명제의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름을 숨길 수 있기에 좀 더 자유로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시선서 꽤 자유로워질 수 있다.

네이버는 댓글조작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아이디 1개당 하루에 쓸 수 있는 댓글 수를 20개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댓글에 대한 답글은 40개로 제한했다. 여기에 10초의 등록 간격을 둬 댓글이 연속적으로 작성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또 동일한 IP(인터넷상 해당 컴퓨터의 주소)에서 일정 횟수 이상 로그인을 시도하거나 동일한 내용의 댓글을 반복해서 올릴 경우 ‘캡차(CAPTCHA)’가 적용된다.

네이버는 10분 내에 일정 수 이상의 공감을 클릭할 때도 캡차를 노출한다. 캡차는 사용자를 구분하기 위해 쓰이는 방법이다. 즉, 댓글을 등록하고 공감을 누르는 주체가 사람인지, 컴퓨터 프로그램인지를 구별한다는 것이다. 캡차에 있는 숫자와 영문은 기계가 알아볼 수 없도록 설정돼있다. 

이를 통해 매크로 작업이 벌어지게 된다면 자동으로 멈추게 된다.

현재 대책
허점 있어

현재 네이버의 댓글 노출 순서는 순공감순이다. 순공감순은 공감수에서 비공감수를 뺀 것을 의미한다. 네이버는 이에 대해 노출 순서를 최신순으로 변경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도 댓글을 순공감순, 최신순, 공감비율순으로 선택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순공감순이 기본으로 돼있다. 또한 아이디 1개당 하루에 허용되는 댓글 수를 현재 20개서 그 이하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드루킹 사건을 미루어 볼 때 방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이버 측은 “댓글 조작을 알고서도 방치한 게 아니다”라며 “조작 의혹 댓글들을 자체적으로 파악해 처리할 것은 처리하지만 모두 다 찾아 대응하는 건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매크로는 물론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아이디로 접속하는 식의 수작업을 하면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네이버는 머신러닝과 딥러닝 등 AI 기술을 도입해 댓글의 어뷰징 탐지기술을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월 1회 댓글정책이용자패널 간담회를 통해 사용자 의견을 수렴할 입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네이버는 매크로 모니터링를 강화하고 뉴스 편집을 AI에 100% 맡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이 댓글과 공감조작의 위험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아웃링크 방식을 고려할 만하다. 현재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은 인링크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포털이 언론사 기사를 자신의 사이트에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용자는 언론사가 제공한 뉴스를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가 아닌 네이버 포털 서비스 내에서 읽고 있다. 이와 반대로 아웃링크는 뉴스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의 홈페이지로 옮겨가는 방식을 뜻한다. 현재 구글, 페이스북 등이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아웃링크 방식은 공감수에 따라 댓글 순서가 정해지는 포털 내에 부작용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인링크 방식에 따라 이용자 다수는 한 공간에 모여 특정 기사에 대해 댓글을 작성하고 공감과 비공감을 채택할 수 있게 된다. 

인링크 방식이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통한 기계적 여론조작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언론사들의 기사는 모아두되 기사를 클릭하면 이용자들이 각 언론사 홈페이지로 분산되도록 해 부작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포털 자체가 문제라 하더라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양한 언론사의 기사를 모아 사용자들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은 포털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다른 플랫폼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네이버와 같은 포털처럼 여론을 가늠해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른 여러 사이트에서도 뉴스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커뮤니티에선 많은 이용자들을 확보해 뉴스를 바탕으로 한 비판과 참여가 이루어져 있다. 포털과 비슷한 댓글 및 공감·비공감 체계도 갖추고 있다.

다만 포털은 공통된 관심사와 성향으로 뭉친 커뮤니티와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포털은 뉴스를 공급하기 이전부터 이메일을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 까닭에 커뮤니티에 속해있는 이용자들보다 더 많은 이들을 확보하고 있다. 포털을 여론의 가늠추로 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강한 영향력
포털의 책임?

포털 내 기사를 바탕으로 공감수를 조작한 김씨는 여론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기사에 대한 댓글을 다소 공인된 여론으로 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를 막지 못한 포털의 책임이 제기 될 수밖에 없다.

반면 일각에선 무조건적인 책임 제기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포털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 하더라도 여론조작 사건과 의혹은 과거부터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미뤄봤을 때 기존 포털 플랫폼이 아닌 새로운 대안 플랫폼을 찾아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드루킹 뜻은?

김씨는 여론조작 사건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의 필명인 드루킹의 뜻 역시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드루킹이라는 필명의 뜻은 온라인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드루이드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2009년 SNS상에서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하고 있음을 밝힌 적이 있다. 또한 드루킹은 ‘피의자들의 수장’이라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


<기사 속 기사> 국정원도 댓글 조작?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은 지난 2012년 12월11일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의원들이 인터넷에 불법 댓글을 올린다는 제보를 받고 역삼동 오피스텔을 찾아가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와 대치하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심리전단국 직원들을 동원해 SNS와 인터넷 게시판 등에 댓글을 남겨 정치와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상고심에서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도 유죄로 확정됐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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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