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5년 가을에 일이다. 조선조 한문 사대가 중 한사람인 이식(李植, 1584~1647)이 반정을 통해 보위에 오른 광해군을 몰아내고 조선 제16대 임금이 된 인조에게 당시의 폐단과 관련해 상소문을 올린다. 그 내용 중 일부다.
『역사적으로 혁명(革命)을 달성한 임금들이 어떻게 처신을 하고 어떻게 신하를 대했으며, 무슨 방법으로 모든 계책이 나올 수 있게 하고 모든 인재가 조정에 나오도록 했는지를 빠짐없이 살펴보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옛날을 지금의 척도로 삼아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을 취하면서 이른바 크게 진작(振作)시키고 크게 변통(變通)시켜야 할 일에 대해 조금 유념해 주신다면, 종사(宗社)를 위해서나 신민(臣民)을 위해서 그런 다행이 없겠습니다.』
이식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보위에 올랐던 반정을 혁명으로 지칭했다. 광해군 시절 폐모론이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은거하며 수차례에 걸쳐 광해군이 제수한 벼슬을 거부하다 급기야 구속되기도 했던 그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피면 그렇지 않다. 바로 이식의 마음, 어리석은 주군 인조에게 자극을 주어 조선을 정상적으로 경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리 칭했던 게다. 실제로 이식은 인조반정을 여러 기록에 ‘반정(反正)’이라 칭했다.
그러나 이식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조선조서 결국 그렇고 그런 임금, 아니 정묘호란 패배로 인해 청나라로부터 온갖 치욕을 맛보는 어리석은 군주로 역사에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래서 역사는 인조가 보위에 오른 그 사건을 혁명이 아닌 반정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인조는 후세로부터 인조(仁祖), 즉 인자했던 임금일 뿐 달리 내세울 게 없었다는 시호를 받게 된다.
이제 시선을 현실로 돌려보자. 이와 관련 지난번 <일요시사>에 게재했던 글 ‘헌법이 강령이냐!’에 대해 부연해보자. 그 글을 읽은 필자의 가까운 후배가 문재인정권이 혁명으로 규정짓고자 하는 ‘촛불시민운동’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 후배의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해본다.
“투표권을 행사한 이후 지금까지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금번에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정권서 촛불시민운동을 혁명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일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유는 차치하고 그게 혁명이 될 지 쥐약이 될 지 어떻게 이 시점에 속단합니까. 그 일이 혁명이 될지 아닐지는 시간이 흐르고 또 문정권이 그를 호기로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겨야 판단 가능한 일 아닙니까?”
필자가 왜 굳이 후배의 이야기를 언급할까. 이는 그 후배뿐만 아니라 이 나라에 거주하는 남녀노소는 물론 심지어 삼척동자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실례로 들었던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정권을 살피면 너무 조급해 보인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촛불시민운동을 혁명으로 포장하여 이명박·박근혜정권과 차별화를 기하려 하고 있고 여기에 정세균 국회의장까지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살피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아울러 후일 촛불시민운동이 ‘문 대통령 일파가 권력을 잡는 과정에 철저하게 이용당한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