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주현 기자] 한나라당에게 서울 강남과 부산·경남(PK)은 부동의 텃밭이자 정치적 뿌리였다. 2004년 ‘탄핵역풍’ 속에서 치러진 총선에서도 이 지역은 흔들림 없이 초지일관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8개월 앞둔 시점에 한나라당 텃밭이 예전 같지 않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 강남-‘강남좌파’와 수해 악재
부산·경남-중진의원 “은퇴” 배수진
한나라당에게 내년 4월 총선은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라는 불리한 환경에서 치러진다. 양극화 현상 심화 속에 진보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고 최근 수해와 저축은행사태 등 돌발악재가 불거졌다.
텃밭에 안주하는 현역 의원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감도 적지 않다. 따라서 내년 총선은 이명박 정부의 심판대로 작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는 한나라당의 아성에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자신들의 텃밭이었던 분당을 내준 상황에 이곳마저 흔들린다면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에서 안전한 곳이 없어 보인다. 자칫 잘못하면 야권이나 무소속 후보들에게 상당수 지역구를 내줄 처지다.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면 텃밭에서도 과감하게 물갈이를 하고 새 인물을 수혈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강남 불패는 옛말?
‘강남 벨트’(강남·서초·송파)는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서울 25개 자치구 대부분이 여당에 등을 돌릴 때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낸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텃밭이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좋지 않다.
최근 ‘강남좌파’라는 새로운 세력이 관심을 받으며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강남 사람이라도 좌파적 가치를 지지할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강남좌파다’는 등 강남좌파를 적극 인정하거나 스스로를 강남좌파로 부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 정당 및 기성 정치체제에 대한 혐오와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정치세력들과 다른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분당 선거에서 존재를 증명한 이들 강남좌파의 표심 향배가 최대 관건이다. 야권에서 참신하고 유력한 인사를 내세울 경우 ‘강남=한나라당’ 등식에 상당한 위협을 가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강남을 강타한 수해도 악재로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부자들이 많은 지역이지만 자신들이 직접 피해를 입은지라 불만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의 불만이 내년 총선까지 이어져 ‘반여 표심’으로 분출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 한 인터넷매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실제 강남3구 7개 선거구 중 한나라당이 안정권인 지역은 강남갑 한 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선거구도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펼치는 양상을 보였으며, 최근 선거 결과를 보더라도 강남권의 여당 지지율은 18대 총선에서 60%대였지만 작년 지방선거에선 50%대로 내려앉았다. 한나라당 위기론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PK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의 위기감도 예사롭지 않다. PK지역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친박 무소속 돌풍의 진원지였다. 그때만 해도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 다툼에 따른 것이었을 뿐 결과적으로는 한나라당의 승리였다.
하지만 동남권 신공항 사업이 물 건너 간 데 이어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터지면서 피해자가 속출했고, 최근 한진중공업 사태로 민심 이반이 가속화 되고 있다.
게다가 야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9일 개최한 자서전 출간 기념 ‘북콘서트’에서 “울산을 포함해 부산, 경남 지역 의석(총 41석) 중 절반가량을 얻어야 의미 있는 변화”라며 ‘20석’이라는 희망 의석수까지 제시했고 김정길 전 장관도 ‘내년 총선에서 역할을 다 할 것’이라 밝히는 등 야권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이런 이유로 최근 PK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역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민심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4선의 김무성(부산 남구을) 전 원내대표는 최근 지역구에서 일주일 사이에 9차례 의정보고회를 갖고 지역 주민들에게 “내년 총선에서 5선을 하면 임기를 마치고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중진의원이 정계은퇴라는 배수진을 친 자체가 부산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한나라당이 부산저축은행 피해 대책과 관련해 현행법을 고쳐서라도 피해자 전원을 구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악재 겹친 PK
이 같은 위기론이 대두되자 실질적 공천 실무자인 김정권 사무총장은 지난 2일 “내년 대선을 위해서도 총선에서 자기희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연말연시가 되면 당 중진 가운데 불출마선언이 잇따를 것이다”고 말했으며, 정두언 여의도연구소장도 “당 지지율보다 개인 지지율이 현저히 낮은 후보는 교체지수에서 반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미 ‘물갈이론’을 언급한 것이다.
주호영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장은 지난 4일 총선 민심과 관련해 “야당이 낙관하고 여당이 우려하는 상황이 (한나라당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밝혔다.
주 위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부산·경남지역의 경우 야권에서 많은 의석을 뺏어올 자신이 있다고 한다’는 질문에 “민주당의 희망사항이다. 아직 9개월은 선거에 있어 많은 시간이기에 끝까지 진정성을 갖고 겸손하게 국민들에게 다가가면 한나라당에 불리하지만 바뀔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들의 발언은 자신들의 텃밭이 흔들리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위기를 맞고 있는 한나라당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 국민들의 민심을 사로잡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