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차기 유력 대권주자 중 한 명인 박근혜 전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좀처럼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히지 않고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을 통한다. 그런 이 의원에게서 박 전 대표의 활동이 ‘임박’했다는 언급이 나오면서 박 전 대표의 대권행보 시점이 내달로 점쳐졌다. 그런데 다음날 바로 ‘잘못된 말’이라고 밝혀 해프닝에 그치고 말았다. ‘미래권력’으로 점쳐지는 박 전 대표의 대권행보 꿍꿍이 속내를 짚어봤다.
이정현 의원 “임박했다” 발언으로 화제 모아
다음날 “임박했다 표현 잘못됐다” 발언 수정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3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박 전 대표의 본격 활동 시점이) 임박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정치권에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의원은 “과거 대표 때 살인적인 일정을 수행했고 국민 앞에 모든 것을 검증받고 드러냈다. 자신이 본격적으로 나서도 국민이 상식적으로 이해해줄 시점이 되면 그렇게 (활동)할 것이고, 다가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5년 임기의 대통령이 최소한 4년 동안은 일할 수 있도록 경쟁자들이 조용히 있어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지 않은 게 오히려 구태정치이자 잘못된 정치”라고 덧붙여 9월 대선 행보 개시에 힘을 실었다.
화제와 추측 남긴
박근혜의 ‘입’ 이정현
이 의원의 발언은 박 전 대표의 의중을 잘 안다는 친박(친박근혜) 인사들도 취지가 와전된 것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대표를 만났을 때 들은 기류와 다른 이야기여서 다소 의아했다”면서 “3주만 지나면 바로 정기국회이고 전국적인 수해로 국민의 고통이 심한데 본격 정치 활동에 돌입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화제가 계속되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자 이 의원은 다음날인 4일 다른 라디오 방송에 나와 “임박했다는 표현은 솔직히 잘못됐다”며 자신의 발언을 전격 수정했다.
이 의원은 “지금 당장에 활동을 시작하거나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맞지 않다”며 “한 마디로 말해서 이제는 국민 상식에 맞는 시점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 이어 “박 전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노 대통령이 일 할 수 있도록 조기 대선 붐이 일어나지 않도록 비서실을 조금 넓히는 정도의 사무실을 냈고 본격적인 활동은 그 다음해 초에 가서 했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선거를 1년 5개월여 앞둔 2006년 7월에 공식 행보에 나섰으며, 박 전 대표는 그해 8월께 소규모 캠프 활동을 시작했었다.
이 의원은 또 “대통령 임기가 5년으로 정해져 있는데 정치권도 그 분이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줘야 한다”며 “지금 이 시점만 하더라도 대통령의 임기가 19개월이나 남아있는데 이 시점에 소위 말하는 차기 예비대선 주자들이 너나없이 나서서 활동하고 얘기하고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그 쪽으로 블랙홀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일 모레 정기국회이고 대선주자라고 1년 5개월 남겨놓고 떠벌리고 돌아다니면 국가나 국민에게 도움이 안된다”며 올해 정기국회 안에는 대선행보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핵심 친박 인사도 “박 전 대표의 본격적인 활동은 내년 총선의 공정 공천과 맞닿아있다고 본다면, 그 시점은 많은 이들의 예상보다 늦은 12월 말이나 내년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측근은 “박 전 대표가 정치행보를 한다고 광고하고 그럴 스타일이 아니다. 본격 정치행보를 한다는 표현도 박 전 대표가 싫어할 것”이라며 “다만 이번에 수해현장을 조용히 방문한 것을 볼 때 앞으로도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으면 그런 기회를 자연스럽게 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열공’한 박근혜
정책분야 마스터
박 전 대표는 활동을 시작하더라도 우선은 정책비전을 밝히는 쪽에 우선순위를 둘 가능성이 높다
. 지난 3년 반 동안 내년 대선에 대비한 국정현안 파악과 정책개발에 전념해 왔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그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해 왔다. 실제 토론을 하면 박 전 대표를 당해낼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의 ‘정책 스터디’가 마무리 단계라는 것이다.
실제 박 전 대표는 분과별로 전문가들과 정책토론모임을 만들어 일주일에 서너 차례 토론을 해왔다. 지난해 말 출범한 국가미래연구원은 외교·안보와 거시금융, 재정·복지 등 18개 분과별로 일주일에 두세 차례 모여 스터디를 진행했다. 18개 분과별 과제는 최근 정리 작업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식 라인은 ‘5인 스터디 그룹’이 대표적이다. 2007년 경선 전후로 박 전 대표를 도와온 인사들인 이들은 경제, 복지, 외교·안보, 교육, 과학기술 등 분야별 책임자급 인사들로 안종범(성균관대) 신세돈(숙명여대) 김영세(연세대) 김광두(서강대) 최외출(영남대) 교수 등 5명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경선 이후 4년 가까이 격주마다 스터디를 하고 의견을 청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정책은 이미 다 준비돼 있다. 어느 분야에 대해 물어도 잘 대답할 수 있을 정도”라며 “역대 이렇게 준비된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라도 했다.
4년간 정책 부분 ‘열공’ 정책 스터디 마무리 단계
지지기반 조직구성도 마무리, 민주당 예의주시
박 전 대표는 이메일이나 컴퓨터 파일보다는 종이 자료를 선호한다. 모임마다 수십~수백 쪽의 자료를 받아 읽는다. “정책에 필요한 예산이 얼마냐” “실현 가능성이 있느냐”를 따져보고 답이 미진하면 “해결책을 정리해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요구한 자료 목록을 수첩에 적었다가 보좌진에게 자료가 왔는지 꼬박꼬박 확인한다.
박 전 대표의 핸드백에는 손으로 대충 찢은 신문·잡지 기사들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시간 날 때마다 꺼내서 밑줄을 쳐가며 읽는다는 것이다. 한 친박 의원은 “여행 중 계속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신문 조각을 본 일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박 전 대표가 이론 공부에 치중하다보니 현장감각이 부족하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주어진 기회마다 정책비전을 드러내는 예열기간을 가지며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준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렇게 준비된 정책들은 8월 임시국회나 9월 정기국회에서 법안 발의의 형태로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같은 패러다임이나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 같은 법안 발의 등으로 미루어 보면 중도적 스탠스를 취할 것임이 분명 할 듯하다.
이명박 정부가 워낙 우파적으로 완고한 정책을 펼쳤다는 이미지가 강해 이에 대한 반발을 자연스럽게 지지로 전환시키면서 야권의 공세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포석이다.
또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보다 강연을 하거나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식으로도 자신의 정책기조를 밝힐 것으로도 보인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국가 위기 대응 체제, 지식 기반 사회, 복지·교육 정책의 문제점, 미래 에너지 확보 방안, 지속적 성장 방안 등 국정의 다양한 분야를 챙겨왔다. 최근엔 미래 성장 동력과 첨단 과학기술, 맞춤형 복지에 관심을 쏟고 있다.
조직구성도 마무리
민주당 초긴장 모드
정책부문에 이어 조직구성도 완료됐다는 평가다. 박 전 대표 지지 조직은 이미 전국적으로 구성이 마무리된 단계다.
‘국민희망포럼’이 대표적 조직으로 이미 지난달 16개 시·도별 조직 구성을 완료했다. 강창희 전 의원이 상임고문을 맡고 있고, 친박 핵심 이성헌 의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전직 국회의원인 H씨가 3년째 이끌어 온 모 포럼은 서민복지 등에서 박 전 대표의 정책구상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300여명의 회원이 전국 광역도시는 물론 교민들이 많이 사는 뉴욕과 도쿄, 상하이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캠프 홍보팀에서 활동했던 대기업 홍보분야 간부 출신인 B씨는 최근 마포에 사무실을 내고 박 전 대표의 홍보동영상 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과거 캠프에서 활동한 원외 인사들의 결집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대선주자로서의 활동을 본격화하더라도, 내년 총선에서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수렴 할지는 미지수다. 총선 결과에 따라 대권주자 위상에 크나큰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정치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설 경우 ‘친박표’가 복구되면서 한나라당에는 플러스가 되지만, 박 전 대표 입장에선 이명박 정권에 대해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는 점에서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국민의 다수가 박 전 대표의 대통령 당선을 ‘정권교체’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는 상황에 이명박 정권과 박 전 대표를 하나로 묶어 비판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은 박 전 대표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대응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당내에선 박 전 대표의 본격적인 행보와 관련해 “‘이명박 심판’이 아니라 ‘박근혜 선거’가 된다면 야권이 선거 연대만으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인영 최고위원의 우려와 “박 전 대표가 나서면 이명박 정부 실정의 공동 책임자라는 점이 분명해질 것”이라는 전병헌 의원의 낙관론이 엇갈리고 있다.
미래권력 박 전 대표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정치권이 요동치는 형국이다. 그만큼 박 전 대표의 가치가 높다는 방증이다. 대선을 향한 첫걸음을 어떻게 뗄지 그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