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4년 전 묻힌 ‘김경희 파일’ 건국대-예맥 수상한 거래 추적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2.05 10:32:05
  • 호수 11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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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수록 먼지 폴폴…검찰만 몰랐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대학 법인이 이사장 지인의 화랑서 수십억원 상당의 미술품을 구입했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지만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당시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검찰 수사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고가 미술품은 재벌 비자금 세탁의 단골 메뉴였다.

김경희 전 건국대학교 이사장이 수상한 미술품 거래로 지난 2014년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건국대 학교법인은 김 전 이사장의 지인이 운영하는 화랑 ‘예맥’서 미술품 198점 28억원어치를 독점 공급 받았다는 특혜 의혹을 받았다. 미술품의 구입 가격이 경매 낙찰가보다 2배서 많게는 20배에 달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사장과 무관?
혐의 없음 종결

그러나 검찰은 이와 관련한 내용을 수사 결과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때 검찰은 김 전 이사장 자택과 갤러리 예맥 등 압수수색까지 했지만 건진 게 없었다. 이를 두고 건국대 내부에선 ‘검찰이 사건을 덮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사를 받았던 건국대 핵심 관계자는 “수사관들이 압수수색 목록에 나온 미술품을 압수하려고 갔지만 해당 미술품이 없었다”며 “피의자들도 그림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수사 과정서 석연치 않은 진술이 많았지만 검찰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린 것.  


최근 건국대 사학비리가 불거지자 미술품 수사에 대한 의혹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건국대학교 재단 현 이사장의 형사처벌 방안 등 검토 의견서’에 따르면 검찰이 미술품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이 석연치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의견서는 지난 2014년 1월 건국대의 정상화를 바라는 4개의 단체가 모 법무법인에 김 전 이사장의 비리에 대해 형사처벌이 가능한지 의뢰한 보고서다.

먼저 건국대 학교법인은 시가보다 부풀려 예맥서 미술품을 매입했다. 미술품 가액은 통상 시장서의 경매가로 결정한다. 감정가보다 미술품 시장인 K옥션과 서울옥션의 경매 기록이 가액 선정에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 

고가 미술품 독점 공급·매입 
모두 198점 28억원어치 매매  

예맥 납품 미술품 목록 상의 주요한 고가 작품들의 취득가액을 K옥션과 서울옥션의 경매기록에 비교한 결과 건국대 학교법인은 시가보다 2~20배가량 부풀려 예맥으로부터 미술품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종현 작품 = 건국대 학교법인은 2007년 12월24일 하종현 작가의 180X120cm 크기 작품 2점, 2008년 4월25일 같은 크기의 작품 1점을 예맥서 구매했다. 1점 당 6000만원으로 1억8000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경매 기록 검토 결과 하종현 작가의 같은 크기 미술품은 이보다 훨씬 못 미치는 금액에 거래되고 있었다. 2009년 6월29일 하종현 작가의 미술품이 2800만원에 경매됐다. 건국대 학교법인은 시가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에 그림을 매입한 셈이다.


▲David Gerstein 작품 = 건국대 학교법인은 2007년 12월24일 David Gerstein 작가의 130X160cm 작품 2점을 총 8400만원(각 4200만원)에, 6X1.5m 작품을 3억5000만원에 예맥서 구입했다. 더불어 위 작가의 작품 7점을 총 10억800만원에 구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하지만 경매기록 검토 결과 이 작가의 작품은 경매 최고가 기록이 1250만원에 불과했다. 경매기록상 1㎠당 가액 1183원으로 환산된다. 이러한 시가로 최고가였던 크기 6X1.5m의 작품 가격은 1억602만원에 불가하다. 따라서 시가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가격에 공급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전광영 작품 = 건국대 학교법인은 2010년 9월13일 전광영 작가의 175X142㎝ 작품과 171X143㎝ 작품 등 2점을 총 2억4000만원(각 1억2000만원)에 예맥으로부터 사들였다. 또 2011년 1월31일 162X125㎝ 크기 작품 1점을 1억원에 매입했다. 건국대 학교법인은 전관영 작가 작품을 총 3억4000만원에 샀다.

하지만 전광영 작가의 작품은 위 작품과 유사한 크기인 163X131㎝ 작품이 각각 4000만~5200만원 사이서 경매된 기록이 있다. 경매 기록상의 1㎠당 가액은 2040원이다. 건국대 학교법인이 매입한 가장 큰 175X142㎝ 작품의 가격을 환산하면 5069만원에 불과하다. 시가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에 공급됐다. 

갤러리 대표와 
30년 지기 친구

▲이정자 조각 = 건국대 학교법인은 2009년 10월30일 이정자 작가의 45X30X100㎝ 및 30.6X37X102㎝ 작품 2점을 예맥을 통해 총 7000만원(각 3500만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이정자 작가의 조각은 건국대 학교법인이 구입한 것보다 훨씬 큰 높이 141㎝과 144㎝ 크기 작품이 각각 630만원과 420만원에 경매된 기록이 있다. 

이정자 작가의 작품 가액은 1㎠ 당 13.85원으로 환산된다. 이런 시가를 건국대 학교법인이 산 작품인 45X30X100㎝ 작품의 크기로 환산하면 가격은 197만원에 불과하다. 건국대 학교법인은 시가보다 무려 스무 배 가까운 비싼 가격에 예맥으로부터 작품을 구입한 셈이다.
 

이처럼 예맥서 공급한 주요 작품 대부분을 시가보다 수십배 비싼 가격에 건국대 학교법인이 매입했다. 

이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한 법무법인은 “이런 미술품의 독점 공급, 그것도 부당하게 부풀려진 가격으로 공급을 통해 얻은 막대한 이익 중 상당부분은 이사장에게 전달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이를 본 복수의 화랑 관계자들도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인사동서 갤러리를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이렇게 큰 거래를 할수록 뒷돈을 안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고가 미술품은 재벌 비자금 세탁의 단골 메뉴였는데 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서 400여점의 미술품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임직원들의 이름으로 고가 미술품을 사들였다. 삼성그룹의 비자금 특검의 핵심은 고가 미술품이었다. 미래저축은행 로비 사건 때도 미술품이 등장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로비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면 ‘고가 미술품=비자금’이라는 공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때 그 작품들 어디?
공중에 뜬 차익 누가?

그렇다면 왜 건국대 학교법인은 예맥을 통해서만 고가의 미술품을 매입했던 것일까. 이는 예맥 대표 정모씨가 김 전 이사장의 절친한 친구였기에 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씨는 김 전 이사장과 30년 지기다. 김 전 이사장이 화랑서 일하던 시절 같이 근무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뿐만 아니라 정씨는 김 전 이사장의 집안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고 한다. 

김 전 이사장과 그의 둘째 딸이 전시회가 있을 때 장소 섭외는 물론 다과까지 챙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관계 때문에 당시 정씨가 예맥 갤러리와 카페 임대료 특혜를 건국대 학교법인으로부터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로 2014년 교육부 감사에서 정씨가 운영하는 카페와 화랑 갤러리가 ‘법인 수익사업체 및 대학 부속병원 임대료 책정 부적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건국대학교 병원은 지하 1층 노른자 위치인 로비공간을 정씨와 임대보증금 5000만원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건국대 병원 내 임대료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건국대 학교법인 소유 호텔 ‘더 클래식 500’에 입주한 예맥 갤러리는 당시 바로 옆 ’우리투자증권‘ 사무실의 평당 임대료와 비교했을 때 임대료가 3분의 1수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이사장과 정씨의 이런 긴밀한 커넥션이 있었음에도 검찰은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건국대 한 내부 관계자는 “당시 정씨는 참고인 조사만 받았다. 미술품 구입 형태나 미술품이 현존하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계좌 압수수색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학교법인이 소유한 그림들의 행방을 둘러싸고 뒷말도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안했나
부실수사 의혹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김 전 이사장과 정씨 그리고 건국대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답했다. 먼저 김 전 이사장은 전화 및 문자 등으로 입장을 듣기 위해 시도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정씨는 “검찰 수사도 다 받았으며 아무 문제없이 끝났다. 어떠한 비리도 없었다”고 말했다. 

건국대 관계자도 “이미 검찰서 혐의없음으로 끝난 사안이다. 현재 미술품 관리는 학교서 잘하고 있다. 당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미술품 갖고 불법적인 일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술품 수사 어려운 이유

미술품 거래는 주로 현금으로 이뤄지고 세금이 부과되지 않아 재벌가의 비자금 조성 및 탈세의 ‘온상’으로 지적돼 왔다. 미술품 거래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미술품의 특수성과 비과세 영향이 크다. 미술품은 특성상 ‘정가’를 못 박기 어렵다.

얼마든지 가격 조작이 가능해 기업의 비자금 조성 및 세탁 창구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과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 증여 수단으로도 용이하다.

과세 당국은 고가의 미술품 보유 여부를 알 수 없고, 존재 자체가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상속세나 증여세를 아예 부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술품 비자금 수사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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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