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주현 기자]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밝힌 정치적 책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시장직을 건다’는 의견이 다소 우세하지만 한나라당의 최고위원들이 연일 ‘중도사퇴는 안 된다’고 밝혔다. 16대 국회 때 이른바 ‘오세훈 정치자금법’을 만든 뒤 모든 책임을 지고 17대 출마를 고사한 오 시장이다. 물난리라는 악재가 겹쳤지만 자존심 강한 그가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궁지에 몰린 오 시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야권 “물난리에 주민투표, 제 정신이냐?”
투표 예산 182억원, 수해 복구에 써야
지난달 말 서울에 내린 물폭탄은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도 쏟아졌다.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한나라당의 텃밭 강남 일대는 물에 잠겼고, 야권의 질타와 정치 공세는 그칠 줄 몰랐다.
이런 물난리 속에서도 오 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공식 발의하며 강행했다. 오 시장은 이미 이번 투표 결과에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주민투표의 성패에 그의 정치적 명운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세이돈’ 새 별명
오 시장은 지난 1일 시의회와의 타협 대신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선택했다. 정치권에선 오 시장이 대선 출마라는 자신의 정치적 시간표에 맞춰 주민투표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적지 않다. 대권구도에서 박근혜 전 대표에 가려 대권주자로서의 존재감이 없자, 주민투표 이슈를 통해 여권의 대권지형을 바꿔보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오 시장의 주민투표 강행에 서울시민들은 경악했다. 폭우로 수많은 사람이 숨지고 엄청난 재산상 피해가 발생해 전 국민이 혼란스러운 시점에 주민투표를 강행한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 시장은 포퓰리즘을 척결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에서는 주민투표에 들어가는 182억원을 수해 복구에 써도 모자랄 판에 투표를 강행하겠다는 오 시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하고 있다.
야당의 비난도 만만치 않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오 시장이 물난리가 나도 시민에게 사과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행동만 하고 있다”며 “아이들 밥그릇 빼앗는 투표를 강행하겠다는 참 나쁜 시장”이라고 공격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수해 복구와 재발 방지에 나서야 할 시장이 직분을 내팽개치고 한가하게 내년 대권놀음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한나라당에서도 적지 않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이건 오 시장이 무리하는 것이다. 자신의 대선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 시장이 투표 성사 요건조차 충족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투표를 통해 전면 무상급식을 저지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복지 포퓰리즘에 맞선 우파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서울의 한 한나라당 의원은 “실패한 시장이란 평가를 받고 물러나는 것보다는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려다 장렬히 전사한 시장이라는 평가가 대선 행보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투표 요건을 채우지 못해 투표가 불발되면 시장직을 사퇴하고 내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고, 투표가 성립돼 전면 무상급식 반대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강단있는 지도자 이미지를 확보한 채 서울시장 임기를 마치고 차차기 대선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 시장 쪽은 정치권에서 지나치게 무리한 해석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서장은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만일 주민투표에서 오 시장이 주장한 단계별 무상급식이 선택받지 못한다면 그 자체가 주민의 심판을 받는 것인데 어찌 바로 내년 대선에 나올 수 있겠느냐”며 “반대로 단계별 무상급식이 선택을 받는다면 오 시장으로선 서울시장 임기를 충실히 채울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라 대선 출마는 시기적으로 더욱 멀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투표일은 8월24일로 정해졌다. 하지만 수해 복구 와중에 주민투표 성립의 최소 요건인 33.3%의 투표율을 달성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특히 오 시장의 지지율이 높은 강남 지역에 이번 폭우 피해가 집중된 것도 오 시장 측에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다.
만약 투표율 미달로 투표함을 개봉도 하지 못하게 될 경우 오 시장은 진퇴양난에 빠진다. 사퇴 압력은 문론 당내에서 ‘공연한 짓을 했다’는 책임론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수해 책임론에 이어 ‘무리한 투표 진행에 따른 혈세 낭비’라는 또 다른 정치적 책임론까지 감수해야 한다. 오 시장으로선 이래저래 여간 곤혹스러운 처지가 아니다.
민주당은 “이번 수해는 오 시장이 올해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결과로 나타난 ‘오세훈 인재(人災)’”라고 공세를 퍼붓고 있다. 여기에 일부 네티즌까지 가세해 오 시장을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 비유해 ‘오세이돈’이라고 비꼬고 있다.
물론 승리하면 야권의 무상복지 논쟁을 잠재운 공로를 인정받으며 한나라당 내 대권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오 시장의 승부수는?
그러나 무엇보다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오 시장의 사퇴는 10월 보궐선거로 이어지고, 그 결과에 따라 내년 총선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한나라당으로서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계파를 떠나 주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오 시장의 사퇴에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궁지에 몰린 오 시장이 쥐고 있는 히든카드는 무엇이고, 어떤 승부수를 던질지에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