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주현 기자]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새 지도부가 출범한 후 사사건건 충돌했던 홍 대표와 유 최고위원은 인사문제와 복지, 정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전당대회 1, 2위의 충돌은 숙명적”이라며 ‘안상수 대표-홍준표 최고위원’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홍 대표와 유 최고위원의 불안한 동거 내막을 살펴봤다.
당내에선 “전대 1·2위의 숙명” 분위기
홍, 안상수에게 겨눴던 공격의 부메랑?
7·4 전당대회에서 각각 1, 2위를 차지한 홍 대표와 유 최고위원은 사무총장 인선 갈등을 비롯해 크고 작은 마찰을 이어왔다. 우리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문제를 두고도 홍 대표는 국민공모주 형식의 매각을 주장했으나, 유 최고위원은 정치권이 매각방식을 권고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지난주 지명직 최고위원 인선과정에서도 극심한 의견차를 보였다.
홍 대표와 유 최고위원은 지난 7월 5일 새 지도부 출범 첫날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홍 대표는 현충원 참배 전 최고위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오늘 최고위원회에서 계파 해체를 결의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이것이 국민들이 바라는 길이다. 국민들이 보기에도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계파 활동을 하면 공천을 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유 최고위원은 “동의할 수 없다”고 즉각 반박에 나섰다.
숙명적 관계
이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이어진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미묘한 신경전은 계속됐다.
홍 대표는 “앞으로 당을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전부 취합해서 잘 이끌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유 최고위원은 “당이 상당히 어려울 때 구성된 지도부인 만큼 팀워크를 살려서 당의 변화를 꼭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민심을 되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홍 대표는 웃는 얼굴이 참 좋다. 자주 웃어주고, 당을 민주적으로 이끌어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지며 ‘불안한 동거’의 서막을 올렸다.
둘은 사무총장 등 당직 인선을 둘러싸고 충돌했다. 지난달 이 문제를 논의하던 회의장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왔고 금방 ‘멱살이라도 잡을 분위기였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홍 대표가 “당 대표가 사무총장도 마음대로 임명하지 못하면 그건 대표가 아니라 허수아비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자 유 최고위원도 격양된 목소리로 “다른 자리도 아니고 공천을 다루는 자리를 어떻게 대표 혼자서 결정하겠다는 거냐”고 받아쳤다.
홍 대표가 최고위원들에게 “김 의원을 받아주면 다른 당직은 양보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지만 유 원 최고위원은 “그래도 안 된다”며 원희룡 최고위원과 함께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기 까지 했다.
유 최고위원은 홍 대표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큰 절을 올린 데 대해 “공당의 대표로서 부적절한 처신 아닌가 생각한다”며 각을 세웠다.
우리금융지주·대우조선해양 매각 방식을 둘러싸고도 시각차를 보였다. 홍 대표는 매각 방식과 관련, “지난 청와대 회동 때 국민공모주 방식으로 국민에게 돌려줄 것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면서 국민공모주 방식 매각을 강조했다.
그러나 유 최고위원은 “ 정치권이 매각방식에 대해 자꾸 얘기하면 정부는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며 “국민주 방식이나 일반 대중에게 작은 지분을 나눠주는 방식을 전체 매각 방식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은 이번엔 전월세 상한제, 대부업체 최고이자율 상한 등 이른바 홍준표식 친서민 정책 방향을 놓고도 정면으로 맞섰다. 홍 대표가 경제문제에 관한한 KDI 연구위원출신 경제전문가인 유 최고위원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했지만 자신의 소신이란 이유로 부작용이 뻔히 우려되는 정책을 밀어붙인 게 발단이 됐다.
홍 대표는 “서민 주거안정 대책도 강도높게 추진하겠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한 지역에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부업 이자율도 30%까지 대폭 낮추겠다”며 “비정규직 문제도 ‘서민의 눈높이’에서 풀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의 이 같은 발언에 유 최고위원은 즉각 반발했다. 유 최고위원은 “전·월세 상한제는 공급 축소를 야기하므로 단기 폭등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고 대부업체 최고이자율 상한을 30%로 낮추자는 홍 대표 주장에 대해서도 “30%까지 낮출 경우 대부업체에서 대출받는 서민층의 경우에 뒷골목에서 불법사채업자에게서 자금을 조달하게 돼 더 큰 어려움에 몰리게 된다”며 “이자율 강제 인하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복지 정책 확대를 놓고도 충돌했다. 홍 대표가 “일본 민주당이 복지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 사과했다”며 “국가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퍼주기식 공약은 국가재정의 파탄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고, 이어 “무상시리즈를 남발하는 (한국의) 민주당은 이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 최고위원은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재정을 개혁하고 감세를 중단해 마련된 재원으로 복지 민생에 투입하자는 것과 일본 민주당의 사례를 놓고 비교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홍 대표가 지난달 27일 지명직 최고위원에 호남을 제외하고 충청 인사 두 명만을 천거한 데 대해 당내 친박계의 비판 수위가 높아지고 있으며 유 최고위원과 갈등도 최고조에 달했다.
유 최고위원은 “지난 2004년 박근혜 대표 당시부터 당이 호남을 위해 애정과 관심을 얼마나 보여 왔느냐. 그런데 그걸 한 방에 날려버리면 어떡하느냐”며 “인선을 철회하고 합리적 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반장 부메랑론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2위로 지도부에 입성한 홍 대표는 당시 당직 인선과 병역문제 등을 두고 안상수 대표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이에 당 관계자들은 “홍 대표가 1년 전에 했던 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한나라당 새 지도부가 구성된 지 이제 갓 한 달이 지났다. 사사건건 충돌하며 파열음을 빚고 있는 홍 대표와 유 최고위원이 향후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내년 총선과 대선을 맞이할지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