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결국 구속됐다. 법원은 앞서 두 차례 검찰과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세 번째 구속영장은 발부했다. 하지만 법원과 검찰의 속내는 복잡하다. 앞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번번이 기각되면서 수사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반면 법원은 ‘적폐수사’의 핵심 인물들의 구속 영장을 기각하며 여론의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 15일 검찰에 구속됐다. 지난해 11월, 처음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지 1년1개월여 만이다. 법원은 앞서 두 차례 검찰과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세 번째 구속영장은 발부했다.
마무리 단계
절반의 성공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한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47)는 “혐의사실이 소명되고 특별감찰관 사찰 혐의에 관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우 전 수석은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에게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과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8명,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등 공무원과 민간인의 불법사찰을 지시하고, 그 결과에 대해 보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박근혜정부 시절인 지난해 3월 국정원에 ‘정부 시책에 비판적인 교육감을 상대로 실질적으로 견제가 가능한 내용을 정교하게 파악해 보고하라’고 지시하고, 국정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 교사의 교육청 발탁, 친교육감 인사의 내부 승진 등을 보고한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2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김대중정부 시절 환경부장관을 지냈던 김명자 전 장관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하자 국정원에 과총을 상대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민정수석실은 국정원에 과총 회원들의 정치 성향 파악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천신만고 끝에 결국 우병우 구속
자신만만하더니…잇단 영장 기각
검찰이 우 전 수석을 구속하면서 한숨 돌렸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그렇게 좋은 상황만은 아니다. 최근 잇따라 적폐수사 핵심 인사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기 때문이다. 여전히 검찰 수사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평가다.
국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 사건에서 국방부와 청와대의 연결고리로 의심받아 온 김태효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실 대외전략기획관의 구속영장도 지난 13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그가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과 2012년 국군 사이버사령부 산하 심리전단에 ‘우리 사람을 증원하라’는 취지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VIP 강조사항)를 군에 전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도 같은 날 기각됐다. 지난달 25일 같은 피의자에 대해 청구한 첫 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두 번째다.
앞서 검찰은 그가 롯데홈쇼핑을 압박해 자신이 명예회장으로 있던 한국e스포츠협회에 3억3000만원을 내게 한 혐의로 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자 GS홈쇼핑을 압박해 협회에 1억5000만원을 내게 한 혐의와 기획재정부를 압박해 협회에 예산 20억원을 배정하도록 한 혐의를 추가해 영장을 재청구했다.
변한 게 없다
수사력 도마
최근 주요 사건서 구속 수사가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검찰 내부에선 “구속 재판 예측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앞서 지난주엔 국가정보원의 불법사찰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맥도날드 ‘대장균 오염 의심 패티’ 납품사 직원 3명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국정원과 교감하면서 ‘공영방송 장악’을 시도한 혐의를 받은 김재철 전 MBC 사장도 지난달 구속을 면했다.
최근 연이은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해 검찰은 법원 결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은 ‘적폐 수사’ 실무 책임자인 박찬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 명의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박 2차장은 “김 전 장관과 관련자 진술 등으로 혐의가 충분히 소명됐다며 그의 지시로 활동한 하급자가 이미 실형을 선고받아 군 조직의 특성상 최고위 명령권자인 김 전 장관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형평성 문제와 구속 결정이 이뤄진 뒤 피의자가 석방될 만한 별다른 사정 변경이 없다는 점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전 전 수석의 측근 조모씨가 풀려난 것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검 한동훈 3차장 검사가 “긴급체포 적법하게 했고, 그래서 영장전담판사도 영장을 발부한 게 아닌가. 사정 변경이 없는데도 그런 이유로 구속적부심을 인용하고 석방한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자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돌렸다.
이 수사들 모두 문재인정부 들어 파격적으로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윤석열 지검장이 주도했다. 검찰 수사가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정치권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적폐 청산 수사가 위기에 몰렸다.
이 같은 법원의 연이은 구속 영장 기각과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 전 수석이 고위 법관들 목줄을 잡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냐는 풍문도 있다.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면서 고위 법관에 대한 비리를 수집했다는 얘기가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우 전 수석은 앞서 국정원을 통해 공무원과 민간인 등을 불법 사찰을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또 지난 4월 우 전 수석은 변호인을 통해 검찰 수사 와중 “혼자 죽지 않겠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해 법조계를 긴장케 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적폐 청산 수사를 하고 있는 검사들이 정통 특수통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도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문재인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른바 ‘우병우 라인’이었던 검찰 중간 간부급들이 물갈이 됐다. 그런데 이들 상당수가 특수수사와 공안수사에 잔뼈가 굵은 검사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자리에 특수수사에 경험이 많지 않은 인사들이 채워졌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이 근거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검찰의 적폐 수사 과정서 12명의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26명은 발부됐다. 법원은 영장 발부 요건에 맞추고 있지만 일종의 ‘착시 효과’에 검찰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풀려난 피의자보다 구속된 피의자가 많은데도 일부 중요 피의자 영장이 기각돼 ‘기준 변경’을 운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 vs 법
신경전 감지
민병주 국정원 심리전단장과 댓글 사건에 개입한 양지회 회원들, ‘국정원 수사방해 TF’ 파견 검사들과 안봉근·이재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이 줄줄이 구속된 게 그 예다. 대법원 통계상으로도 올 상반기 영장기각률(19.3%)은 17∼19%를 오가는 예년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법원 내에서는 영장 발부를 신중하게 하는 기류가 형성된 것은 일부 사실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지난해 말부터 법원 정기 인사가 있었던 올 2월까지 법원이 국정농단 관련 피의자들에게 거의 예외 없이 구속영장을 전격적으로 발부해온 데 따른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당시 법원은 1기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최순실씨 등 관련자 8명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 가운데 7건(87%)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17건 중에는 13건(76%)을 발부할 정도로 발부율이 높았다.
최근 법원의 구속 영장 기각 판단에 대해선 국내 학계서도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이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실제로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2 사법연감>에 따르면 ‘구속 상태로 1심 재판을 받은 인원 비율’은 2002년 41.4%를 시작으로 해마다 줄어들어 2011년에는 10.2%까지 낮아졌다.
검, 구속 우선주의 관행 제동
법, 불구속 재판 방향 잡았나
현재 법원의 결정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그때와 다르다. 2006년엔 법원의 잇따른 석방 결정이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을 관철하기 위한 ‘사법 개혁’의 하나로 받아들여지며 높은 여론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적 화두를 검찰이 이끌어가고 있다. 여론도 김관진·임관빈 구속적부심 석방에 부정적이다.
리얼미터가 12월7일 전국 19살 이상 성인 남녀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잘못한 결정’ 의견은 63.0%(매우 잘못한 결정 50.8%·대체로 잘못한 결정 12.2%), ‘잘한 결정’은 26.3%(매우 잘한 결정 12.6%·대체로 잘한 결정 13.7%)로 나타났다. ‘잘 모름’은 10.7%였다.
법원 측은 피의자 인권 보호와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불구속 수사·재판에 충실하려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 이는 법원의 ‘자업자득’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음 차례는?
정치권 초긴장
한국은 경제선진국 42개국 가운데 사법부 신뢰도 수준이 39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 국민은 27%만 사법부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OECD 전체 사법부 신뢰 평균치가 54%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그 절반 수준인 셈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의 절대 다수는 사법부가 사회 정의를 제대로 실현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최순실 25년 의미는?
검찰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 심리로 14일 열린 결심 공판서 최순실씨에게 징역 2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또 최씨에게 벌금 1185억원과 추징금 77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최씨는 사익추구에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국가기강을 송두리째 흔들었다”며 “정부조직과 민간기업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국정을 농단해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국가 위기사태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은밀하고 부도덕한 유착과 이를 십분 활용한 대통령 비선실세의 탐욕과 악행이 이 사건 실체”라고 강조했다.
특검팀은 특히 “최씨는 재판 내내 범행을 부인하며 근거 없이 검찰과 특검을 비난했다. 참으로 후안무치 하다"고 비판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 국민 가슴에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줬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날 함께 기소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는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