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수사’ 검찰 성적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12.18 11:35:37
  • 호수 1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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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빈수레…MB는 웃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결국 구속됐다. 법원은 앞서 두 차례 검찰과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세 번째 구속영장은 발부했다. 하지만 법원과 검찰의 속내는 복잡하다. 앞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번번이 기각되면서 수사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반면 법원은 ‘적폐수사’의 핵심 인물들의 구속 영장을 기각하며 여론의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 15일 검찰에 구속됐다. 지난해 11월, 처음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지 1년1개월여 만이다. 법원은 앞서 두 차례 검찰과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세 번째 구속영장은 발부했다.

마무리 단계
절반의 성공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한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47)는 “혐의사실이 소명되고 특별감찰관 사찰 혐의에 관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우 전 수석은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에게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과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8명,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등 공무원과 민간인의 불법사찰을 지시하고, 그 결과에 대해 보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박근혜정부 시절인 지난해 3월 국정원에 ‘정부 시책에 비판적인 교육감을 상대로 실질적으로 견제가 가능한 내용을 정교하게 파악해 보고하라’고 지시하고, 국정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 교사의 교육청 발탁, 친교육감 인사의 내부 승진 등을 보고한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2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김대중정부 시절 환경부장관을 지냈던 김명자 전 장관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하자 국정원에 과총을 상대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민정수석실은 국정원에 과총 회원들의 정치 성향 파악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천신만고 끝에 결국 우병우 구속 
자신만만하더니…잇단 영장 기각

검찰이 우 전 수석을 구속하면서 한숨 돌렸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그렇게 좋은 상황만은 아니다. 최근 잇따라 적폐수사 핵심 인사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기 때문이다. 여전히 검찰 수사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평가다. 

국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 사건에서 국방부와 청와대의 연결고리로 의심받아 온 김태효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실 대외전략기획관의 구속영장도 지난 13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그가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과 2012년 국군 사이버사령부 산하 심리전단에 ‘우리 사람을 증원하라’는 취지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VIP 강조사항)를 군에 전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도 같은 날 기각됐다. 지난달 25일 같은 피의자에 대해 청구한 첫 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두 번째다. 


앞서 검찰은 그가 롯데홈쇼핑을 압박해 자신이 명예회장으로 있던 한국e스포츠협회에 3억3000만원을 내게 한 혐의로 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자 GS홈쇼핑을 압박해 협회에 1억5000만원을 내게 한 혐의와 기획재정부를 압박해 협회에 예산 20억원을 배정하도록 한 혐의를 추가해 영장을 재청구했다.

변한 게 없다
수사력 도마

최근 주요 사건서 구속 수사가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검찰 내부에선 “구속 재판 예측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앞서 지난주엔 국가정보원의 불법사찰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맥도날드 ‘대장균 오염 의심 패티’ 납품사 직원 3명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국정원과 교감하면서 ‘공영방송 장악’을 시도한 혐의를 받은 김재철 전 MBC 사장도 지난달 구속을 면했다. 

최근 연이은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해 검찰은 법원 결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은 ‘적폐 수사’ 실무 책임자인 박찬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 명의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박 2차장은 “김 전 장관과 관련자 진술 등으로 혐의가 충분히 소명됐다며 그의 지시로 활동한 하급자가 이미 실형을 선고받아 군 조직의 특성상 최고위 명령권자인 김 전 장관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형평성 문제와 구속 결정이 이뤄진 뒤 피의자가 석방될 만한 별다른 사정 변경이 없다는 점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전 전 수석의 측근 조모씨가 풀려난 것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검 한동훈 3차장 검사가 “긴급체포 적법하게 했고, 그래서 영장전담판사도 영장을 발부한 게 아닌가. 사정 변경이 없는데도 그런 이유로 구속적부심을 인용하고 석방한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자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돌렸다.

이 수사들 모두 문재인정부 들어 파격적으로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윤석열 지검장이 주도했다. 검찰 수사가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정치권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적폐 청산 수사가 위기에 몰렸다. 
 

이 같은 법원의 연이은 구속 영장 기각과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 전 수석이 고위 법관들 목줄을 잡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냐는 풍문도 있다.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면서 고위 법관에 대한 비리를 수집했다는 얘기가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우 전 수석은 앞서 국정원을 통해 공무원과 민간인 등을 불법 사찰을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또 지난 4월 우 전 수석은 변호인을 통해 검찰 수사 와중 “혼자 죽지 않겠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해 법조계를 긴장케 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적폐 청산 수사를 하고 있는 검사들이 정통 특수통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도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문재인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른바 ‘우병우 라인’이었던 검찰 중간 간부급들이 물갈이 됐다. 그런데 이들 상당수가 특수수사와 공안수사에 잔뼈가 굵은 검사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자리에 특수수사에 경험이 많지 않은 인사들이 채워졌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이 근거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검찰의 적폐 수사 과정서 12명의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26명은 발부됐다. 법원은 영장 발부 요건에 맞추고 있지만 일종의 ‘착시 효과’에 검찰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풀려난 피의자보다 구속된 피의자가 많은데도 일부 중요 피의자 영장이 기각돼 ‘기준 변경’을 운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 vs 법
신경전 감지


민병주 국정원 심리전단장과 댓글 사건에 개입한 양지회 회원들, ‘국정원 수사방해 TF’ 파견 검사들과 안봉근·이재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이 줄줄이 구속된 게 그 예다. 대법원 통계상으로도 올 상반기 영장기각률(19.3%)은 17∼19%를 오가는 예년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법원 내에서는 영장 발부를 신중하게 하는 기류가 형성된 것은 일부 사실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지난해 말부터 법원 정기 인사가 있었던 올 2월까지 법원이 국정농단 관련 피의자들에게 거의 예외 없이 구속영장을 전격적으로 발부해온 데 따른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당시 법원은 1기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최순실씨 등 관련자 8명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 가운데 7건(87%)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17건 중에는 13건(76%)을 발부할 정도로 발부율이 높았다.
 

최근 법원의 구속 영장 기각 판단에 대해선 국내 학계서도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이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실제로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2 사법연감>에 따르면 ‘구속 상태로 1심 재판을 받은 인원 비율’은 2002년 41.4%를 시작으로 해마다 줄어들어 2011년에는 10.2%까지 낮아졌다.

검, 구속 우선주의 관행 제동
법, 불구속 재판 방향 잡았나

현재 법원의 결정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그때와 다르다. 2006년엔 법원의 잇따른 석방 결정이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을 관철하기 위한 ‘사법 개혁’의 하나로 받아들여지며 높은 여론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적 화두를 검찰이 이끌어가고 있다. 여론도 김관진·임관빈 구속적부심 석방에 부정적이다. 

리얼미터가 12월7일 전국 19살 이상 성인 남녀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잘못한 결정’ 의견은 63.0%(매우 잘못한 결정 50.8%·대체로 잘못한 결정 12.2%), ‘잘한 결정’은 26.3%(매우 잘한 결정 12.6%·대체로 잘한 결정 13.7%)로 나타났다. ‘잘 모름’은 10.7%였다.

법원 측은 피의자 인권 보호와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불구속 수사·재판에 충실하려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 이는 법원의 ‘자업자득’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음 차례는?
정치권 초긴장

한국은 경제선진국 42개국 가운데 사법부 신뢰도 수준이 39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 국민은 27%만 사법부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OECD 전체 사법부 신뢰 평균치가 54%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그 절반 수준인 셈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의 절대 다수는 사법부가 사회 정의를 제대로 실현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최순실 25년 의미는?

검찰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 심리로 14일 열린 결심 공판서 최순실씨에게 징역 2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또 최씨에게 벌금 1185억원과 추징금 77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최씨는 사익추구에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국가기강을 송두리째 흔들었다”며 “정부조직과 민간기업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국정을 농단해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국가 위기사태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은밀하고 부도덕한 유착과 이를 십분 활용한 대통령 비선실세의 탐욕과 악행이 이 사건 실체”라고 강조했다. 

특검팀은 특히 “최씨는 재판 내내 범행을 부인하며 근거 없이 검찰과 특검을 비난했다. 참으로 후안무치 하다"고 비판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 국민 가슴에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줬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날 함께 기소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는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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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