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검사들이 무더기 구속됐다. 개국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전 정권 검찰총장들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재임 시절 부하 검사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마당에 김수남·김진태 전 총장의 책임도 중하다는 것. 퇴임 후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전 총장들의 근황을 살폈다.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장호중 검사장 등 현직 검사 2명이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지난 7일, 위계 공무집행방해 및 위증교사 등의 혐의로 청구된 장 검사장, 이제영 대전고검 검사,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 고모 전 종합분석국장 등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편치 않은 나날
돌연 미국행 왜?
강 판사는 구속영장 발부 배경에 대해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밝혔다.
장 검사장 등은 국정원 파견 당시 내부 태스크포스(TF)팀 소속이었다.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기는 게임회사 넥슨서 각종 특혜를 받은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된 진경준 전 검사장에 이어 검찰 역사상 두 번째다.
이들은 이미 구속된 김모 전 심리전단장, 문모 전 국익정보국장과 함께 검찰의 국정원 압수수색에 대비해 미리 위장 사무실을 마련하고 수사나 재판과정서 직원들에게 증거를 없애고 허위 진술을 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장 검사장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앞서 영장심문포기서를 제출했다.
지난달 30일 부산지검장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된 바 있다. 이제영 의정부지검 형사5부장검사 역시 같은 날 대전고검 검사로 발령났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비지휘 보직으로 인사조치된 것이다.
이날 영장심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는 당시 법률보좌관이었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수사팀은 “고인 및 유족에 대해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는 바이며 매우 안타까움 심경을 금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문무일 검찰총장 역시 이날 변 검사 빈소를 찾아 “비통한 심정이다. 고인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일각에선 변 검사의 죽음과 관련해 ‘문무일 책임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정권교체 후 진행된 ‘적폐 수사’ 방식에 대한 이견이 검찰조직 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적폐 수사 과정에선 전임 검찰총장이 정권 입맛에 맞춰 외면 혹은 은폐했던 정황도 드러나고 있는 상황. 이 때문에 일각에선 김수남·김진태 전 검찰총장이 공수처 1호 대상에 오를 것이라고도 입을 모으고 있다.
전 정권 정치 검사들 줄줄이 구속
적폐 낙인 찍힌 구세력 숙청 작업
김수남 전 총장은 지난 5월 문재인정권이 들어선지 한 달도 안 돼 중도 하차했다. 김 전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2015년 12월2일 취임했으며, 내달 1일이 임기 만료일이다. 그는 임기를 6개월여 남겨두고 검찰을 떠났다.
이후 김 전 총장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채 지난 8월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총장이 미국 서부의 한 대학서 연수받으며 장기 체류할 계획이다. 실제로 김 전 총장은 검사 시절 미국 동부의 조지 워싱턴대로 연수를 간 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김 전 총장이 현 정부의 ‘적폐 청산’ 수사라는 소나기를 피해 미국에 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했다. 김 전 총장이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김 전 총장은 박근혜정부서 굵직한 사건들을 진두지휘했다. 수원지검장 시절(2013년)엔 ‘이석기 전 국회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박근혜정권의 눈엣가시였던 통합진보당 해산에 혁혁한 역할을 했다.
그해 말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돼 이듬해 11월의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최순실씨 전 남편인 정윤회씨가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 등과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담긴 문건 관련 수사였다. 검찰은 문건 내용보다는 유출 경위를 집중 수사했다.
박 대통령이 “시중의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라며 수사 가이드라인을 밝힌 이후였다. 이에 대해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당시 민정비서관이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밑그림을 짠 것으로 전해진다.
자주 통화한 정황
김기춘 꼭두각시?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있는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서 집행유예를 받은 한일 경위도 “당시 민정비서실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라는 회유가 있었다. 당시 검찰이 압수한 휴대전화에 ‘최순실이 대통령의 개인사를 관장하고 대한승마협회 등에 갑질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검찰은 문건이 언론에 유포된 불법 유출 경위에 대한 수사만 이루어졌으며 비선 개입 의혹 등은 전혀 수사하지 않았다. 비선 개입 관련 수사를 하지 않은 게 결국 ‘최순실 게이트’로 번지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 당시 박영수 특검은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 관련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김 전 총장 역시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특검 과정서 김 전 총장이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 됐음에도 그와 수차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2일 박영수 특별검사는 김 전 총장이 2016년 8월16일, 8월23일, 8월26일 세 차례에 걸쳐 우 전 수석과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진태 전 총장은 2012년 12월부터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냈으며 이듬해 4월 현직서 물러나 8월부터 법무법인 ‘인’의 고문변호사로 재직했다. 그러다 채동욱 전 총장이 중도 하차하면서 2013년 12월2일 제40대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김진태 전 총장은 2년의 임기를 마치고 2015년 12월에 퇴임했다.
세월호 의혹에
문건 은폐 의혹
퇴임 후 김진태 전 총장은 현재 변호사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김진태 전 총장에게 지난 5월 변호사 개업 자제를 권고했다. 그는 검찰총장 임명 전 이미 변호사 활동을 한 바 있어서 개업 신고만 하면 사건 수임이 가능하다.
김진태 전 총장은 <경북일보>에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김진태의 고전시담’이라는 칼럼을 쓰고 있다.
김진태 전 총장 역시 김수남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해 비판을 샀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등 정치권과 연루된 사건 처리 당시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김진태 전 총장은 청와대의 ‘광주지검 세월호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 당시 김진태 전 총장이 변찬우 광주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세월호 해경 수사팀을 해체하라고 압력을 넣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청와대가 당시 검찰총장까지 동원해 수사팀에 압력을 넣은 것으로 해석된다.
광주지검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고가 터진 이후 윤대진 형사2부장을 팀장으로 한 해경 수사 전담팀을 꾸렸다. 당시 광주지검은 ‘해경 부실구조 의혹’이 제기된 만큼 해경이 참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와 별개로 자체 팀을 꾸렸다.
임기 못 채우고 중도 하차
언제 불려갈까 ‘좌불안석’
하지만 청와대는 6·4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서 해경 수사를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총장이 변 지검장에게, 우병우 전 수석(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은 윤 팀장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수사팀 해체는 물론 지방선거 뒤까지 수사를 미루도록 압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김 전 총장과 우 전 수석은 검찰 수사 과정서 번번이 훼방을 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김진태 전 총장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수시로 통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 2014년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당시 정윤회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김진태 전 총장의 지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은 김진태 전 총장이 일과 중 김기춘 전 실장의 전화를 수시로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김진태 전 총장이 대검 8층 집무실서 간부들과 회의를 하다가도 ‘실장 전화다’면서 받았다” “어떤 사안을 논의하기 전에 ‘실장한테서 전화를 받았다’는 말을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털어놨다.
또 “그 때 김기춘 실장이 총장에게 수시로 전화를 건다는 것은 대검 과장급 이상 간부들이면 다 아는 일이었다”는 말도 소개했다.
‘대통령의 뜻’
청 하명 증거?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도 김진태 전 총장이 김 전 실장의 하명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록돼있다. 정윤회씨 집을 제외한 압수수색 이틀 전, 일지 메모엔 ‘령뜻 총장 전달-속전속결, 투트랙’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메모서 령뜻은 ‘대통령의 뜻’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