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수뢰한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그동안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국가기밀활동을 이유로 국회 예산 통제에 벗어난 ‘검은돈’이었다.
검찰이 박근혜정부 시절 청와대가 국가정보원 간부들로부터 뒷돈을 상납받은 혐의를 포착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 간부들이 특수활동비 가운데 수십억원을 청와대 쪽에 상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지난달 31일 체포했다.
박근혜도?
공범 여부 수사
이 외에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뿐만 아니라 다른 청와대 수석들에게도 국정원 돈이 전달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사 결과 2013∼2016년 최소 40억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청와대 상납금으로 전달됐다. 국정원 간부는 매달 1억원가량의 현금을 이 전 비서관과 안 전 비서관에게 번갈아가면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청와대 인근 장소 등에서 이들을 만나 5만원짜리 지폐 1억여원이 든 가방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집권 기간 매달 국정원으로부터 1억원씩 전달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이 전 실장 진술 외에 검찰은 최근 화이트 리스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서 국정원 간부들로부터 뒷돈을 상납했다는 여러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정부 내내 지속적으로 거액이 전달됨에 따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등이 전원 뇌물공여 또는 국고손실죄 피의자로 입건됐다.
안봉근·이재만 월 1억 상납 의혹
조윤선도 월 500만원씩 받아 파문
이로써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이·안 전 비서관에 대해서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정사실화됐다.
정무수석으로 청와대와 정치권 사이 가교 역할을 해온 조 전 수석(재임기간 2014년 6월∼2015년 5월)에게도 매달 500만원씩 총 수천만원이 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6월 취임한 조 전 수석은 다음해 5월까지 매달 500만원씩 5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조 전 수석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면서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특수활동비 정보 및 사건 수사, 그밖에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에 사용토록 돼있다. 이에 따라 첩보활동과 비밀수사에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친박계 화들짝
정치자금으로?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재정부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정부의 특수활동비는 8870억원이었으며 올해는 8990억원으로 책정돼있다. 올해만 해도 지난해보다 120억원 가량 늘었는데 매년 증가 추세다.
특수활동비를 가장 많이 배정 받은 곳은 국정원이다. 2017년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예산은 494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86억원 늘었다. 정부 전체 특수활동비 예산의 55%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문제는 이렇게 막대한 국민 세금을 예산으로 배정했지만 이 돈들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각 정부 부처는 특수활동비와 관련해 “수사와 정보수집 등 사용처를 밝히면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수활동비를 받았다는 서명만 하면 현금으로 수령해 사용하고 사용 내역도 제출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국회나 심지어 감사원 등에서도 그 용처를 확인할 수 없다.
실제 감사원이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19개 정부기관의 특수활동비 집행실태를 점검한 결과를 보면, 49.7%가 현금으로 지원되는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면서도 언제, 누가, 왜, 비용을 얼마만큼 썼는지를 밝히는 ‘집행내용확인서’를 제대로 남기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그동안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흑역사도 많다. 공직자들의 식사 접대나 유흥비, 골프 접대 등에 사실상 쌈짓돈으로 사용돼 온 것.
2007년 5월 김성호 법무부장관은 부산시의회 의장 등과의 저녁 식사에 특수활동비로 600여만원을 써서 구설에 올랐다. 당시 비서가 신용카드로 결제했는데 법무부는 특수활동비라고 인정했다. 논란이 일자 김 장관은 뒤늦게 사비 처리했다.
정권 실세들
돈줄’역할
2009년 11월 김준규 검찰총장은 출입기자들과의 회식자리서 특수활동비로 기자들에게 50만원이 든 봉투를 돌려 입길에 올랐다. 그는 2011년에도 검찰 고위간부가 참석한 워크숍서 검찰 간부들에게 200만~300만원씩, 총 9800만원의 특수활동비를 봉투에 담아 격려금으로 돌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10년 9월, 당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서 문화부 제2차관 재임 시절 13개월간 1억9000만원에 이르는 특수활동비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개인 유흥과 골프 접대비로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3년 1월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사퇴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경우 서른여개에 가까운 의혹이 제기됐지만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건 부적절한 특정업무경비 사용이었다.
월 400만원의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통장에 넣어두고 주말 휴일에 수차례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국정원 특수활동비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박근혜정부 당시 국정원이 특수활동비로 보수 성향의 인터넷 언론을 설립해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 이명박정부 당시엔 국정원이 2012년 대선 직전 ‘민간인 여론조작팀’에 30억원의 특수활동비를 사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먼저 국정원은 특수활동비로 여론몰이용 인터넷 매체를 설립했다. 대선 7개월 전인 2012년 5월 국군 사이버사령부 530단이 국정원에 특수활동비를 받아 여론몰이를 위한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실세에 흘러간 검은돈 정체는?’
‘뇌물죄’ 전직 원장 3명 입건
이들은 정치 댓글 공작 등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사이버사에 연간 30억∼60억원의 특수활동비를 지원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사이버사 심리전단 부대원들에게 수당 성격의 활동비로 지급됐다.
국정원은 온라인 여론조작과 별도로 오프라인 심리전을 위해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 만든 단체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에 자금을 지원했다.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부터 사무실 임대료와 상근자 월급 등의 명목으로 1년간 국발협 한 지회에 5000만원가량 지원했다. 자금 출처는 온라인 여론조작과 마찬가지로 국정원 특수활동비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민간인 여론조작팀’ 3500명을 조직적으로 운영하며 한해 30억원의 예산을 썼다.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민간인으로 30개팀을 운영하며 인건비로 한 달에 2억5000만∼3억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국정원에선 이를 ‘사이버외곽팀’이라고 불렀다.
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전용 구습이 박근혜정부서 부활했다. 꼬리표 없는 특수활동비를 욕심낸 청와대 실세들과 거센 개혁 요구 속에 청와대 지원이 필요했던 국정원 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뒷거래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검찰은 청와대 인사들이 국정원이 준 돈을 착복해 활동비 등 사적 용도에 썼을 가능성을 살펴보는 중이다. 국정원의 청와대 상납금을 뇌물로 보고 있다.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없더라도 공무원이 단순히 ‘직무와 관련해’ 돈을 받기만 해도 인정된다.
무슨 속셈으로
갖다 바쳤나
검찰은 향후 박근혜정부 청와대에 흘러간 국정원 특수활동비 규모를 추가로 밝힐 예정이다. 이 가운데 일부가 박 전 대통령 ‘통치자금’으로 활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전달된 국정원 돈이 친박계 의원들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정원 돈이 청와대를 거쳐 당시 여당 등으로 흘러들어간 흔적이 나오면 국정원발 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아직 정치권과 관련해 나온 정황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