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한문 사대가 중 한 사람인 장유(張維, 1587∼1638)가 전라도 장성의 객관에 묵으며 지은 작품이다.
‘暮角聲初歇(모각성초헐) 저녁 뿔피리 소리 애잔하게 스러지고
天涯隻影遙(천애척영요) 머나먼 타향에 외로운 그림자 떠도는데
知心有短燭(지심유단촉) 짧은 촛불 있어 내 마음 알아주니
相伴度殘宵(상반도잔소) 서로 의지하며 남은 밤 지새우네’
장유 나이 서른세 살에 무고를 당해 유배 가는 나만갑(羅萬甲, 1592~1642)을 신구(伸救: 억울하다고 여긴 죄를 바로잡아 구제함)하다 나주목사로 좌천돼 한양을 떠나 장성에 이르렀을 때 지은 작품이다.
상기 작품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短燭(단촉, 짧은 촛불)은 장유에게 위안을 주는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 외롭고 기나긴 밤을 함께 지새워주니 말이다. 그런데 장유는 그 순간 다시 접하고 싶었을까.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고 시선을 현실로 돌려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을 통해 기념 메시지를 남겼다. 그 내용 그대로 인용해보자.
“오늘, 촛불집회 1년을 기억하며 촛불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촛불은 위대했습니다.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실현했습니다. 정치변화를 시민이 주도했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촛불은 새로웠습니다. 뜻은 단호했지만 평화적이었습니다. 이념과 지역과 계층과 세대로 편 가르지 않았습니다.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요구하는 통합된 힘이었습니다.
촛불은 끝나지 않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국민과 함께 가야 이룰 수 있는 미래입니다. 끈질기고 지치지 않아야 도달할 수 있는 미래입니다.
촛불의 열망과 기대, 잊지 않겠습니다. 국민의 뜻을 앞세우겠습니다. 국민과 끝까지 함께 가겠습니다.”
상기 내용을 살피면 그야말로 아리송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워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본인이야 그 촛불로 인해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그리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를 공개적으로 밝힌 부분 그리고 함께하겠다는 부분에선 정말로 유구무언이다.
먼저 공개적으로 밝힌 부분에 대해서다. 촛불집회의 시작 동기는 최순실이란 한 자연인에게 휘둘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서 비롯된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국민인 게 쪽 팔렸던 게 촛불집회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란 사람이 그 쪽팔렸던 일은 개의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그를 기념하고 있으니 망연자실이다.
다음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대목이다. 필자에게는 이 글이 촛불 집회를 지속하라는 의미로 들리는데 그렇다면 정말 문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메시지도 내지 않을뿐더러 굳이 낸다면 이 대목은 ‘촛불집회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국민여러분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로 할 것이다.
각설하고, 장유 할아버지께서 저 세상서 이 메시지를 본다면 뭐라 하실까. 이런 말씀하지 않으실까. ‘촛불, 지긋지긋하지도 않냐!’라고.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