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모텍그룹 ‘특정 종교 강요’ 인권위 조사 착수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11.06 10:26:04
  • 호수 1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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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뽑나…기업이 종교집단?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회사는 곧 신앙생활 그 자체였다. 오너가 주관하는 예배 모임에는 근무 중에도 참석했다. 본사에서는 전도 목적 봉사활동 모임 ‘12제자’를 각 사업장 별로 결성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중견기업 오너 김병규 아모텍그룹(이하 아모그룹) 회장이 직원들에게 기독교를 강요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아모텍그룹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스닥 상장기업 아모그룹은 국내 1000대 기업에 속하는 중견기업이다. 주요 사업은 전기·전자·제어 업종의 전자제품 등을 생산한다. 주 생산제품인 스마트폰용 세라믹칩 ‘배리스터’는 시장점유율 1위로 삼성전자와 애플 등 국내외 대기업들에게 납품된다. 지난해 매출 2665억원을 기록했으며 당기순이익만 164억원에 달하는 알짜 회사다. 

순이익 164억
중견기업이…

이런 건실한 회사가 직원들에게 기독교를 강요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8월부터 이와 관련해 아모그룹 인권침해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아모그룹의 오너인 김병규 대표이사에게 공문을 보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조사 중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김 대표는 기독교인이다. 사내 예배 모임까지 주관하며 신우회에선 그가 손수 기타 연주까지 하며 찬송가를 부른다. 심지어 10여곳에 이르는 아모그룹 사업장의 가장 높은 곳에는 십자가가 세워졌다. 그가 얼마나 신실한 기독교인인지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김 대표 개인이 종교를 믿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그 종교를 강요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헌법상 종교의 자유침해다. 

헌법재판소는 “종교의 자유의 기초가 되는 신앙의 자유는 국가가 국민이 종교를 가질 권리뿐만 아니라 특정 종교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 그리고 더 나아가 종교를 갖지 않을 권리까지도 넓게 보장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판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근로기준법 제6조에는 고용과 모집·채용서 특정 종교·신념·정치적 의견·정당 가입 여부 등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오너 직원들에 기독교 강요했나
인권위 자유침해 여부 조사 착수 

그런데 아모그룹이 이런 법을 역행한 것이다. 아모그룹 전·현직 직원들에 따르면 ▲채용 면접시 지원자들에게 기독교 전도 ▲김 대표가 주관한 예배 모임 강제 참석 ▲초청된 목사 설교 시 전원 참석 ▲전도 목적이 포함된 봉사활동에 각 부서별 인원 할당 등 다수의 근로기준법 위반 의혹이 있다. 

아모그룹 채용 면접을 봤던 지원생들은 면접관으로 참석한 김 대표에게 종교 강요 압박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표가 지원자들 면접보다는 포교 활동에 더 힘썼다는 후문이다. 

아모그룹 지원자였던 A씨의 경우 30분 정도 면접을 본 뒤에 2시간 동안 김 대표의 설교를 들었다고 한다. 아모그룹 내부에선 최종면접을 이른바 ‘전도시간’이라고 부른다. 또 면접을 마칠 때쯤 김 대표가 기도문을 강독하는데 지원자들 역시 이를 소리 내어 따라 읽는다고 한다. 


또 지원자들의 아모그룹 면접 후기에 따르면 ‘아모그룹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사람을 뽑는다’ ‘우리가 만난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 자신이 있나’ ‘기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의 질문이 자주 나온다. 

또 신입사원들 경우 의무적으로 수개월 동안 아모그룹의 신앙 모임인 ‘신우회’에 참석해야 한다. B씨의 경우 김 대표에게 노골적으로 신우회 참석을 강요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4월 김 대표는 B씨에게 “왜 요즘 신우회 안 들어오느냐”며 “다음 주는 꼭 들어오라”고 말했다. B씨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우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김 대표는 “어떻게 내가 말했는데도 신우회에 안 들어오냐”며 “너는 원칙적으로 그만둬야 한다”며 역정을 냈다. 

면접관 참관
지원자와 전도

김 대표의 역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전직 회사 관계자는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서 뽑았는데, 신우회 참석을 왜 안 하느냐가 김 대표의 생각”이라며 “김 대표는 신우회에 나오지 않은 사원들을 보며 ‘면접 때는 믿겠다고 했으면서 입사만 하면 애들이 싹 바뀐다’고 타박했다”고 말했다.  
 

또 신우회는 대부분 평일 업무시간에 열린다. 오후 3∼4시부터 약 두 시간 가량 김 대표가 직원들을 모아두고 기타 연주를 하며 찬송가를 부른다. 신우회는 사회 이슈를 포함한 설교 내용으로 채워진다. 

행사 마지막에는 직원들이 성경 한 구절씩을 돌아가면서 읽는다. 김 대표는 사실상 업무시간에 종교 행사를 주관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신우회가 있는 날은 직원들 퇴근이 최소 1시간가량 늦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표는 신우회가 있는 날에만 결재한다. 신우회가 퇴근 시간을 넘긴 6시30분에 끝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모그룹은 결재할 때 김 대표 집무실 문 앞에서 일렬종대로 줄서서 기다리는 특이한 문화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날은 퇴근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현직 직원들은 입을 모았다.

아모그룹은 한해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찬양예배제’라는 대규모 종교 행사도 개최한다. 이때는 외부서 목사까지 초청해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직원들에게 성경 교육을 시킨다. 지난해 7월 개최된 상반기 찬양예배제에선 ‘주임 대리급’ 이상 직원들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는 공지도 냈다. 

이 날은 직원들끼리 ‘휴대폰 여분의 배터리를 챙기는 것도 잊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근무시간에 성경 공부
각 계열서 12제자 차출 


김 대표는 아모그룹 계열사에 전도 목적 봉사활동 모임인 ‘12제자’를 결성하라는 지시까지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12제자는 열두 사도와 동의어로 예수가 인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가르침을 완수할 제자들의 무리를 가르킨다. 

아모그룹 총무팀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예배 준비 관련, 회장님 지시 사항 전달 드립니다”라며 “각 사업장별로 ▲열두 제자 명단(사업장/부서/직급 이름 순으로 결정) ▲각 사업장 별 후원기관 활동 내용, 사진 자료 회신 및 앞으로 계획 ▲각 사업장 12제자의 각오 및 인터뷰 등을 본사에 올리라”고 지시했다. 
 

직원들은 12제자 활동을 자발적으로는 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업장 별로 강제 할당이 돼 있는 상태. 누군가는 12제자에 들어가야 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사업장에선 12제자를 정할 때 가위바위보나 사다리타기 등을 통해 걸리는 사람을 억지로 위촉했다고 한다. 

올해 아모그룹은 김 대표가 직접 면담까지 할 정도로 신입사원 퇴사자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이런 회사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나간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지난 3월2일에 입사해 신우회 참석이 의무라는 통지를 받고 일주일 만에 퇴사한 사람도 있다. 물론 신우회 참석이 퇴사의 직접적인 이유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이런 분위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신우회 불참
사규상 해고?


이는 곧 비기독교인에 대한 차별까지도 연결된다. 전직 아모텍 직원은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서 믿는 척하며 앞잡이 노릇과 아부하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주식회사 아모그룹은 개인회사가 아니다. 왜 마음대로 사옥에 십자가를 세우며 기독교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전도하고 싶으면 교회를 세우지…”라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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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아모텍 입장은? “강요 아닌 권유였다”

아모그룹은 이번 종교 강요 의혹에 대해 ‘강요가 아니라 권유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다음은 아모그룹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아모그룹이 직원들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분위기라고 하는데 사실인가?
▲사실과 다르며, 당사는 지금까지 임직원의 종교와 관련해 어떠한 강요나 차별, 불이익한 조치 등을 취한 사실이 없음을 말씀 드린다.

-김병규 대표가 주관하는 예배 모임에 직원들이 꼭 참석해야 하나?
▲신우회 모임은 사내 기독교인 직원 중심으로 하는 모임으로 사업장별로 30∼40명의 직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신우회 모임에는 기독교인임에도 참석하지 않는 직원들도 많고, 비기독교인 직원임에도 참석하는 직원이 있는 등 직원들의 자유 의사에 따라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이런 문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모텍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관련해서 입장은?
▲종전에 근무했던 직원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사안으로 당사는 사실에 근거해 대응할 예정이다. 본 사안은 현재 진행 중인 사안으로 이와 관련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지난 6월 이와 관련된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 개선된 부분은 있나 ?
▲지난 6월 한 인터넷 매체를 통한 보도가 있은 후 당사는 신우회 및 후원기관 봉사활동 등에 관한 직원들과의 소통 및 의사전달 과정서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고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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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