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북핵 문제 등을 둘러싸고 동북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북한의 대남 전단(삐라)이 곳곳서 발견되고 있다. 최근 1년여 동안 수거된 삐라만 약 200만장에 달했고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서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70년 동안 지속돼온 심리전술 삐라. 요즘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
지난 16일 인천시 남동구의 한 교회 옥상서 북한의 삐라 2만여장이 발견됐다. 해당 교회 목사는 건물 누수를 확인하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다가 뭉텅이로 흩뿌려진 삐라를 발견하고 112에 신고했다. 이 삐라에는 북한 김정은 체제를 찬양하고 군사력을 과시하는 그림과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무더기로 발견
인천에선 지난 13일에도 북한의 대남 전단 2만5000여장이 실린 풍선이 나무에 걸려 찢긴 채 발견됐다. 전단을 발견한 한 시민이 “북한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삐라가 있다”며 112에 신고했다.
전단에는 미사일 그림과 함께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문구가 적히거나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달에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신형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을 선전하는 내용의 대남 삐라 900여장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북한이 미국과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외교적 긴장 국면이 조성된 상황서 대남 선전을 강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일단 대공 용의점이 없는 것으로 보고 수거한 전단 일체를 군 당국에 인계했다.
서울과 인천 도심 등 수도권 일대서도 북한의 삐라가 잇따라 발견됐다. 같은 날 청와대 춘추관 앞 잔디밭에선 북한이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삐라가 발견됐다. 이 전단에는 ‘김정은 최고 영도자님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단호히 성명’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청와대에 따르면 잔디밭서 발견된 삐라는 청와대 경비담당인 101단이 수거했다. 이번에 떨어진 삐라는 60여장으로 과거에도 청와대 경내로 대남 전단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삐라 발견이 올해 들어서만 11번째다. 봄철과 가을철 바람이 불 때 수도권 쪽으로 많이 넘어온다. 작년엔 8차례 발견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에는 영등포구 신길동 일대서 삐라 1000여장이 발견됐고 같은 달 29일에는 용산구 원효로 노상서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서 성공했다’는 내용의 삐라가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청와대 내서 발견…올해 들어서만 11번째
종이질 및 인쇄상태 정교…국내 제작설도
삐라 살포는 아주 오래된 심리 전술이다.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위선적 행동을 일삼는 교황을 고발한 그림을 뿌린 것이 시초라는 주장이다. 우리에겐 6·25전쟁의 기억과 함께 시작했다.
우리 국군과 유엔군 측이 집중적으로 살포했다. 인민군에 대한 투항권고가 주목적이었다.
‘루터 기원설’로부터 500여년, ‘6·25 등장설’로부터 70여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뿌려지고 있다. 그만큼 효과가 크다는 역설일 수 있다.
삐라의 내용은 시시때때로 변화했다. 애초에는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하다가 지난해 말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내용과 미국을 위협하는 내용은 항상 포함됐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과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대사의 얼굴과 함께 이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쏟아낸 것으로 묘사된 삐라도 있었다. 또 ‘미국언론도 트럼프의 망발에 대한 비난 높아’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우리나라 뉴스전문채널 로고, 미국인 앵커로 보이는 여성 사진이 합성돼있는 삐라도 있었다.
물론 남한서 북한으로 날리는 삐라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한 이후 정부 차원의 전단 살포는 한 동안 중지됐지만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다시 날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구식인 쪽지성 삐라를 계속 사용하는데, 이는 익히 알려진대로 북한서 인터넷은 일부 계층만 쓸 수 있는 것이라 이를 통한 홍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서 날리는 것도 있지만 탈북자들이 조직한 대북 민간단체서 직접 비닐제 풍선에 매달아서 날리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특히 북한 주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듯 하다.
날리는 방식은 주로 보통 풍선을 사용하지만, 군대에선 포로 살포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포로 살포하는 것보다 풍선을 이용하는 것이 살포할 수 있는 삐라 양이 현격하게 많기 때문에 주로 쓰이는 방식은 아니며 이렇게 포를 이용한 살포는 특수한 상황에만 쓰인다고 봐야한다.
대북 긴장 고조될수록 늘어
대부분 미국·대통령 비하
이렇게 특수 포탄을 이용한 전단 살포는 비단 남북 사이서 뿐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쓰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대북민간단체서 전단지 날리는 기술은 탈북자 출신 과학자의 개량을 거쳐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현재의 수준은 5시간 이상 비행 가능한 대형 수소 비닐풍선과 몇몇 시한장치를 조합해 풍선 하나당 크기에 따라 1만~6만장인 7㎏분량의 삐라를 12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최장 평양까지 날려보낼 수 있는 정도다.
재질 또한 종이가 아닌 비닐을 사용해 젖는 것을 방지하고 경량화를 도모했다. 때로는 북한 라디오는 채널이 고정돼있다는 사실에 기초해 라디오를 날리거나 먹을 것, 미국 달러, 각종 간단한 생활용품을 함께 날리기도 한다.
이들 삐라는 종전과는 다르게 국내서 제작한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종이질이나 인쇄상태가 정교하다.
일각에선 삐라의 잦은 출몰에 남한 내 고정간첩 등이 자체 제작해 살포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30년째 인쇄소를 운영하는 60대 한 기업인은 전단지를 꼼꼼히 들여다보더니 국내서 제작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종이가 음식점 광고할 때 쓰는 무게 100g/㎡짜리 아트지로 보인다”며 “글자체도 명조체, 고딕체, 고딕우사체(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고딕체) 등 우리나라 인쇄소서 많이 쓰는 종류”라고 말했다. 여러 색으로 깔끔하게 인쇄된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전의 질이 떨어지는 종이나 북한의 조악한 인쇄술로 제작된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인쇄업자는 “집이나 사무실서 개인이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면서도 “중국서 제작됐거나 북한이 중국산 종이를 이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쇄기술 발달
정부는 북한이 삐라를 비닐 풍선에 담아 국내로 날려 보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목표 상공에 도달하면 시한장치를 이용해 터뜨려 살포하는 식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서 삐라를 제작·배포했다는 첩보 등이 없어 수사 중인 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