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진상품을 되뇌던 병사가 상자의 뚜껑을 열려 시도했다. 순간 도국이 가로 막았다.
“왜 그러는 게요?”
“몰라서 묻소. 고구려의 왕이 황제 폐하께 진상하는 물품인데 사전에 손을 대는 경거망동을 두고 보란 말이오!”
도국이 근엄하게 목소리를 높이자 병사가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워낙에 철저히…….”
말을 하다가는 아차 했는지 병사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도국이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리고 바로 옆에 있던 사신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선을 받은 사신이 앞으로 나서며 상자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도 궁금하다면 내 직접 보여드리리다.”
뒤로 물러섰던 병사는 물론 주변의 여러 병사들의 시선이 상자로 쏠렸다.
순간 저만치에 물러나 일행에서 빠져있던 상인 복장의 사람이 슬그머니 도국에게 짧은 비수를 건넸고 도국은 급히 도포 속에 감추었다.
그를 알 길 없는 당나라 병사들은 상자를 가득 채운 백금을 바라보며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근엄한 목소리
“이제 되었소!”
도국이 근엄하게 말하자 당나라 군사들이 일시에 물러서며 대전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대전에 이르자 호종 무사들이 빼곡하게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금방이라도 칼을 뽑아들 듯한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를 무시하고 안으로 들자 용상과 거리를 둔 지점에 도국 일행을 멈추도록 했다.
아울러 그 앞으로는 절대 나서지 말라는 엄한 경고까지 주어졌다.
그 자리에서 용상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리 가깝지는 않았지만 충분하다는 자신감으로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만감이 교차되는 중에 이세민이 들어서고 있었다.
시선 한번 주지 않은 이세민이 용상에 자리 잡고 거들먹거리며 아래로 눈을 깔았다.
순간 이세민과 눈이 마주쳤고, 도국이 오른 손을 왼 소매에 집어넣으며 큰절을 올리며 최상의 예를 표했다.
“무슨 사유로 고구려왕이 사신을 보냈는가?”
도국 일행이 자세를 바로하자 이세민이 아직도 사신의 출현에 대해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번 내주를 공략한 일은 저희 왕과는 무관한 일로 연개소문 막리지의 독단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희 왕께서 그 일에 대해 황제 폐하의 오해를 풀어드리자는 차원에서 저희 사신들을 보냈습니다.”
“연개소문의 독단적인 행동이라!”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미 황제 폐하께서도 아시리라 생각하옵니다만 저희 고구려는 이미 연개소문의 수중에 넘어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짐도 들어서 알고 있소.”
“하여 고구려의 왕이 연개소문의 행동에 대해 사과드리고 아울러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소신들에게 백금을 진상하라는 특별한 분부를 주셨습니다.”
“백금이라.”
백금을 되뇐 이세민의 시선이 용상 아래에 수북이 쌓인 상자로 향하자 환관이 그 중 하나를 급히 이세민 앞으로 가져갔다.
“열어 보거라.”
연개소문의 당태종 암살 지시
실패로 끝난 계획…도국의 죽음
뚜껑을 열자 가득 담긴 백금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고 이세민 역시 그를 유심히 바라보다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직접 그를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순간 도국이 가볍게 호흡하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비록 호위 병사들이 긴장감은 놓지 않고 있는 듯 보였지만 거리로 보아 일시적인 시간을 긴요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고개를 다시 이세민에게 돌리고 급히 소매에서 비수를 꺼내 힘차게 던졌다.
그러나, 아뿔싸.
운명의 장난인지 공교롭게도 도국의 손에서 단검이 떠난 바로 그 순간 용상에서 내려서던 이세민이 자신의 용포자락을 밟아 옆으로 쓰러졌다.
이세민의 얼굴을 향했던 독이 묻어 있는 단검이 터럭 한 올 차이로 이세민의 귓가를 스쳐 용상 한쪽을 맞히고 튕겨나갔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려 퍼졌고 마치 각본에 쓰여 있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호위 병사들의 행동이 이어졌다.
일사분란하게 호위 군사들이 칼을 뽑아 도국 이하 사신들의 목을 겨누며 무릎 꿇도록 했다.
“네 이놈들!”
환관들에 의해 자세를 바로하고 사태를 파악한 이세민의 얼굴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 소리와는 반대로 사신들의 입에서 아쉬운 탄식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의 소용돌이가 가라앉자 이세민이 용상에 자리하고 사신들을 노려보았다.
“네 놈들은 누구냐!”
허탈했는지 이세민의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았다.
“우리는 연개소문 막리지의 명으로 쥐구멍에 숨어 있는 쥐새끼를 잡으러 온 고구려 군인들이다.”
“뭐라!”
가라앉던 이세민의 얼굴에 다시 파란 힘줄이 돋아났다.
“그렇다면, 저 백금은.”
상자 곁에 있던 환관이 급히 백금을 하나 집어 들어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폐하, 돌에 백랍을 바른 가짜이옵니다.”
이세민이 백금에 주었던 시선을 도국에게 주었다.
“네놈들이 정말 고구려 군사들이란 말이냐!”
“쥐새끼라 사람 말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게냐. 다시 이야기해 주마. 우리는 고구려의 연개소문 막리지께서 쥐새끼를 처단하라고 보낸 고구려 군사들이다.”
이세민이 제대로 말도 못하고 그저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아울러 도국의 입에서도 더 이상 말이 나오지 못했다.
이미 호위 군사의 칼끝이 입속으로 들어가 있었던 때문이었다.
“쥐새끼야, 비록.”
“우리가 먼저 간다만 너 역시.”
“우리 연개소문 막리지의 손에 조만간 저승에 도착할 터이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마.”
고구려 사신들의 입에서 연속적으로 피가 끓는 소리가 이어졌다.
김유신의 계략
김유신이 압량주에서 군사 조련에 한창 열중인 중에 경주에서 전령이 와서 급히 궁으로 들라는 전갈을 전했다.
사유를 물었으나 그에 대한 답변은 없고 그저 빨리 궁궐로 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유신이 부관인 죽지에게 그곳의 일을 맡기고 궁에 도착하자 김춘추, 알천, 비담 등을 위시하여 대소 신료들이 설왕설래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언의 환대를 받으며 자리 잡고 대화의 요지를 가만히 새겨보았다.
대화의 요지는 백제를 쳐야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집약되고 있었다.
그를 살피며 춘추를 응시하는 중에 여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결론은 내렸습니까?”
여주가 자리를 잡으며 대전을 둘러보았다.
“전하, 아직 결론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김유신 장군의 의견을 들어보지요.”
느닷없는 요구에 모두의 시선이 유신에게 쏠렸다.
“잠시 더 관망함이 이롭다고 생각합니다.”“관망이라니!”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