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왕의 남자’ 이재오 특임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에 동행해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뒤 곧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동해 순방단에 합류했으며, 11일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함께 귀국할 예정이다. 특임장관이 무슨 일로 대통령 해외순방에 포함된 것일까. 작년 8월30일 취임한 이래 이 대통령의 외국 방문 첫 동행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0개월간 장관직 수행하며 대통령 외국 순방 첫 동행
전대 이후 정국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 나눌 것 예상
정부 각 부처 장관들은 대통령의 순방 목적에 따라 수행단에 종종 포함된다. 그러나 국내 정치적 문제와 관련한 업무를 다루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이 대통령을 따라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7, 8월 소폭 개각설이 나도는 시점에서 전당대회 당일 떠난 이 장관의 이번 아프리카 수행은 지난 재보선 참패 이후 친이계 내부분열 및 혼란에 대해 오해를 풀고 당에 복귀해 새로운 지도부 체제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
대통령과 첫 해외 나들이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 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위해 지난 2일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길에 합류했다.
이 장관의 한 핵심 측근에 따르면 “이 장관이 이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을 수행하기로 했다”면서 “다만 이 장관이 정부의 대(對)정치권 관계를 담당하는 만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잠시 참석한 직후 따로 출국해 수행단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방점은 이 장관이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대통령과 1주일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라고 말해 이 대통령과 이 장관이 전대 이후의 정국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돌아 올 것임을 시사했다.
그 간 이 장관은 재보선 이후 한 달간 여의도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뒀었다. ‘왕의 남자’ ‘정권2인자’라고 불리던 여권의 실세 이 장관이 당·정·청 수뇌부 회동에 연달아 두 차례 불참했고 전당대회에도 개입을 하지 않으며 정치행보를 최소화 한 것이다.
이 장관의 한 달여 침묵은 4·27 재보선 참패와 친이계의 원내대표 경선 패배 후 복잡해진 심경과 무관치 않았다. 여당 내에서 자신을 겨냥한 책임론이 대두되자 이 대통령에게도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때가 아니다’며 만류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청와대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 대통령과의 회동에 앞서 “유럽특사 활동 보고 이외의 다른 정치적 의미를 낳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당에 더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한 데 대해 청와대가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기도 했다.
또 이 대통령이 ‘남 탓’만 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페이스 북에 이 대통령을 자신의 아들에 비유해 우회적으로 질타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순방 수행은 지난 4·27 재보선 참패 후 소원해졌던 대통령과의 관계를 불식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크다. 이번 순방을 통해 1주일간 이 대통령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동안 불거진 온갖 추측을 일축하고 이 대통령과의 돈독한 관계를 재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의 한 측근은 “대통령과의 사이는 전과 다를 바 없다”면서 “이번 수행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장관으로서 힘을 보태기 위한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대통령과의 불화설은 언론이 조장하고 부추겼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번 수행은 그간 홀대했던 이 장관에 대해 대통령이 주는 ‘선물’의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순방에서 둘은 국정운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으로 예상된다”고 관측했다.
전대 결과 후폭풍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한편 이 장관은 이번 7·4 전당대회와 관련해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실제 이 장관은 직원들에게 “전대와 관련해 오해를 받지 않도록 철저히 중립적인 자세를 지키고 국회나 정당 관련 업무를 보는 직원들도 말조심하고 각별히 처신에 유의하라”는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
이 장관의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대에 나선 홍준표 후보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재오 계파의 핵심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친이계 전체도 아닌 일부 친이계에서 일부 기관들과 함께 의원들에게 특정후보 지지를 강요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계파 줄 세우기’ 논란이 불거졌다.
이 장관은 지난달 27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가만히 있는 사람 끌어들여 온갖 욕설(을) 해대는 것도 부패”라고 반박했다. 홍준표, 남경필 후보 등이 자신의 계파와 친이계가 계파투표를 획책하고 있다고 한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7·4전대 당일 출국, 당과 거리두기냐, 복귀 임박이냐
친이계 내부분열 및 혼란 풀 적임자, 중책 맡을 전망?
이 장관은 “태풍걱정을 많이 했다. 피해복구를 빨리 했으면 좋겠다”고 5호 태풍 ‘메아리’를 짤막하게 언급 한 뒤 “섬사람들은 이 판국에 무슨 돈이 있어 수백명씩 호텔에 불러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표 부탁하고, 그것은 부패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장관이 말한 섬은 여의도, 사람은 국회, 정당 등의 정치권 관계자를 지칭한다. (이 장관은 최근 트위터 글 등에서 여의도 국회를 부를 때 종종 섬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이 장관은 이어 “각종 조사에서 가장 부패한 분야 1등이 항상 정치권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무엇하느냐”고 덧붙여 자신의 개입설을 전면 부정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파가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것은 당내에서 이 장관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번 순방 수행은 전대 결과에 따른 당내 후폭풍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의도로도 해석된다.
전대 결과에 한 발 물러나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 둔 상황에 당내에서 이 장관의 새로운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8월 예정된 소폭개각
장관직 물러나 당 복귀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 장관의 수행 후 행보로는 7월내지 8월로 예정된 개각을 통해 장관직에서 물러나 당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실제로 지난달 말 여권 일각에서는 ‘7, 8월 소폭 개각설’이 흘러나왔다. 이 대통령이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장차관들을 7월이나 8월에 교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달 청와대 참모진 중 총선 출마 예정자들을 내보낸 상황에서 내각에서도 총선 출마자들을 정리해 임기 마지막까지 함께 할 ‘집권 후반기 내각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의원 겸직 장관들이 총선 출마를 위해 국회로 돌아갈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고, 검찰총장 교체에 따른 내각 변화 요인 등이 있다”며 “총선 출마자들은 미리 총선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므로 총선 출마 예정 장차관들의 조기 교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7월 개각설’은 검찰총장 임기 만료와 법무부 장관의 교체 가능성과 함께 거론되고 있었다. 임기가 8월19일까지인 김준규 검찰총장의 후임을 국회 청문회를 고려해 7월에는 내정해야 한다는 계산에서다. 이에 맞춰 이귀남 법무부 장관의 교체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대검찰청 수뇌부 5명이 대거 사의를 표명했고 김 총장도 지난 4일 사의를 표명해 ‘7월 개각설’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저축은행 사건이 완료 되지 않아 총장과 수뇌부의 공백을 오래 둘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은 장관들은 이재오 특임, 진수희 보건복지,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3명이다. 이 장관과 진 장관은 지난해 8월에 취임해 7월이면 만 1년이 된다. 정 장관은 올해 1월에 취임했다.
이 중 이 장관의 경우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한나라당에 복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순방 수행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친이계와 내각을 재정비해 당내에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임무를 부여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점점 레임덕이 가속화 되고 있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의중을 파악하고 일을 맡길 만한 인재로 이 장관만한 적임자가 없기 때문으로도 풀이된다.
특임장관 임명 후 첫 순방 수행 특명을 내린 이 대통령이 그에게 과연 어떠한 ‘선물’을 안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