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재계 강한 압박 드라이브 내막

‘상생’ vs ‘포퓰리즘’ 치열한 기싸움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정치권과 재계가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로 치닫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이 반값 등록금, 감세 철회 등 정치권의 친서민 행보를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잇따라 반기를 들면서부터다. 여야 정치권은 경제단체장들과 기업총수를 국회에 출석시켜 결판을 내겠다고 이를 갈았지만 총수들은 이에 응하지 않고 불참해 갈등이 심화됐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에 “재벌을 더 이상 비판하지 말라”고 요청했지만 한나라당은 이에 반발, 대기업을 정면 비판하고 나서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여당은 재벌 비판 말라” 청와대, 지도부에 요청
 재계 “표에 홀려 집단이성 망각, 1년 반만 참자”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이 경제단체장과 기업총수를 국회에 출석시키겠다고 한바탕 벼른 이면에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계 때리기’를 통해 ‘서민의 대변자’ 또는 ‘친 서민’ 이미지를 부각시켜 내년 있을 선거에 유리한 입지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치권은 연일 ‘상생’을 외치지만 재계는 이를 ‘포퓰리즘’으로 규정짓고 날 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날 세우는 정치권

민주당은 지난 6월 29일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국회 공청회와 청문회에 불참한 데 대해 ‘오만불손한 태도’라며 극렬하게 비난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이날 조 회장의 불참으로 환경노동위원회 한진중공업 청문회가 무산된 데 대해 “경총과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이 모두 나서서 재벌총수의 국회출석을 반대하는 것은 국회에 대한 능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한진중공업 노사분규와 관련, “한진중공업 노동자 13명이 전쟁포로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민주당이 재벌·대기업의 반인권적, 반인도주의적, 반윤리적 태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며 재계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주목 할 부분은 ‘친 대기업’ 색깔이 강했던 한나라당 또한 연일 대기업을 때리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 황우여 체제 출범 이후 달라진 원내지도부의 색채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당이 대기업과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는 4·27 재보선에서 드러난 등 돌린 민심이 촉매제가 됐다. 대기업의 무차별적 골목상권 파고들기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富)의 편법세습 등은 재벌에 대한 서민과 자영업자들의 거센 반감을 불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당 내에서는 ‘MB노믹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MB정부는 그동안 각종 규제완화와 고환율, 법인세 감면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대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유인했지만 그동안 대기업은 자기 욕심 차리기에 바빴다.

이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 3년간 ‘친 대기업’ 정책을 펴왔지만 일자리 창출 등에서 대기업의 극히 소극적인 태도로 경제정책 전반이 어긋났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한나라당의 대기업에 대한 불편한 심기는 말에서 그치지 않고 잇따라 정책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법인세 감면 철회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한데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대기업의 편법증여에 과세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대기업이 자회사인 비상장기업에 일감을 몰아줘 상장할 때 엄청난 수익을 자녀에게 편법 증여하는 경우에 증여·상속세를 매기는 근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부 대기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자녀에게 부를 대물림하고 이를 토대로 그룹의 경영권을 쉽게 확보 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주는 통로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즉 MB노믹스에 반기를 든데 이어 대기업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법세습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다.

이런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가 파상공세 성격을 띠면서 재계의 불만도 폭발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 마디로 표에 홀려 집단이성을 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나라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일련의 수순에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며 “이명박 정부의 최대 우군이었던 기업을 표 때문에 적군으로 만들려는 일부 세력이 있다”고 꼬집었다.

경제단체들은 국회 청문회에 대기업 회장들을 대거 소환하거나 공청회에 경제단체 수장들을 세우려 했던 흐름에 정치권의 오만함이 엿보인다고 불만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단체장이 참석하면 국회의원이 무조건 호통부터 치며 망신 줄 것이 뻔한데 굳이 참석할 이유가 없다”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업인을 부르면 충분히 소명할 기회도 주지만 우리는 의원들이 호통만 칠 게 뻔하다. 그런 정치적 이벤트에 어떻게 단체장들이 가겠는가”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재계는 그러나 정치권과의 갈등이 정면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것은 원하지 않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정치권과 맞서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재계에서는 일단 ‘비바람은 피해가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재계는 내년 총선과 대선 등 중요한 선거가 다가오면 세력결집 차원에서 기업에 손을 내밀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 재계 인사는 “최악의 경우에도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1년6개월만 버티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가 정치권과의 싸움에서 전면전보다 장기전을 기획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재계가 적어도 이 대통령의 기업 프렌들리 방침은 큰 변화가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청와대는 한나라당 지도부에 대기업 비판을 자제해달라고 요청 했지만 당 지도부는 이에 반발하고 대기업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재계를 향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정책 뿐 아니라 ‘친 서민’ 정책까지 배격하는 것은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비판했다.
 
이 의장은 “대기업의 성장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관세수입조치, 고환율저금리 정책 등 시장원리에 반하는 각종 특혜를 정부로부터 상당부분 의존해온 것도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치권이 내년 선거를 앞두고 지나치게 ‘좌 클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라며 “재벌기업 역시 사회적 기여나 공정거래 관행 등에서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인 만큼 서로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불만스러운 경제계

한나라당 중진의원들은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기업 때리기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정몽준 전 대표, 김무성 전 원내대표 등은 “재벌이나 대기업은 무조건 나쁘고 서민·노동자는 무조건 옳다는 식의 획일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쓴 소리를 했다.

이에 반해 정동영 최고위원은 “재벌 대기업의 국회 무시가 도를 넘었다”며 “한진중공업 청문회를 다시 추진할 것”이라 밝혀 정치권과 경제계의 날 선 공방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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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