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원래 어떤 말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대체 불가한 ‘신조어’가 있다. 우리의 마음을 곧이곧대로 대변해주는 것은 물론 입에 착 달라붙는 어투 덕에 신조어는 어느새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일상어가 돼가고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르면 나만 바보 되는’ 신조어들을 소개한다.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를 이제는 일상생활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라는 지적도 받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도 제법 있다. 이제 신조어 이해는 젊은 세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필수 단어들
▲고흐흑 바흐흑 = 우는 소리를 표현한 신조어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천재 화가 고흐의 이름 마지막 글자가 ‘흐’로 끝나는 것에 착안해 탄생한 말이다. 우는 소리를 흉내 낼 때 흔하게 사용하는 ‘흐흐흑’을 바흐와 고흐의 이름 끝에 붙여 ‘바흐흑’ ‘고흐흑’이라는 재치있는 단어를 만들었다.
웃긴 상황서 쓰는 용어도 있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이름 끝에 ‘키키’를 붙여 웃음소리를 흉내 냈다. 매우 웃긴 상황에선 ‘키키’의 갯수를 늘려 ‘차이코프스키키키키…’ 등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패고 = ‘패션고자’의 줄임말이다. 중요한 생활 감각이 된 패션 안목이 떨어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대략 2010년 전후부터 ‘셀카고자’ ‘연애고자’ 등과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
고자는 남성의 성적 불능을 의미하므로 기성세대에겐 혐오감을 줄 만하지만 젊은 세대에겐 좀더 약화된 의미인 ‘훌륭하지 않음’ ‘초보임’ 등으로 받아들여진다. ‘나, 패고인데 옷 좀 봐주라 ㅜㅜ’처럼 젊은 세대는 자신을 기꺼이 고자라 부르기도 한다.
▲참각막 = 안목이라는 말과 뜻이 비슷한 2017년 신조어다. 참은 ‘진짜’라는 뜻의 접두어, 각막은 ‘분별력의 심벌’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듀스 101>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 팬들이 가수 지망생들을 분별하면서 유행시켰다. 사용 예는 “난 정말 참각막을 가졌던 것이야”처럼 자기 인정, “님들 참각막 칭찬 칭찬”처럼 타인 인정의 부류로 나뉜다.
해마다 사전 발매
기성세대에 인기
▲카공족 = 카페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는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nomad 유목민)도 늘어나고 있어 이동이 자유로운 업무공간을 찾는 카공족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고막여친(남친) = 음색이 달달하고 속삭이듯 감미로워 위로가 되는 가수 또는 방송인을 부르는 말이다. 2012년께부터 윤건, 홍대광, 최낙타 등이 고막 남친으로, 2016년부터는 후아유, 심규선, 볼빨간 사춘기 등이 고막여친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나일리지 = 요즘 10대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나일리지’라고 한다. 나일리지는 나이와 마일리지의 합성어로, 나이가 많은 것을 앞세워 무조건 대우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의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마일리지와 달리 나일리지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마일리지가 쌓이는 것과 같이 나이를 먹으면서 그에 따른 이득이나 권리를 당연히 누리려 하는 기성세대의 행동을 비판한 말이기 때문이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
시대 반영 문화 표현
▲관태기 = 관태기는 ‘관계+권태기’로,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것에 회의적인 상태를 뜻한다. 관태기에 빠진 사람은 ‘관태족’이라고 칭하는데 가장 큰 원인은 인간관계서 받는 스트레스다. 이들은 ‘자발적 아웃사이더’ ‘나홀로족’ 등으로 이어진다.
▲홧김비용 = 스트레스를 받아 홧김에 소비하는 비용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홧김비용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값에 많은 지출을 한다거나 기분 전환을 위해 새로운 화장품을 사는 등 계획에 없던 즉흥적인 소비를 일컫는다.
이는 충동구매와 비슷한 소비 행태지만 ‘만약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밖에도 조금만 주의했으면 쓰지 않았을 ‘멍청비용’이라는 용어도 있다. 이는 미리 돈을 뽑아 놨다면 쓰지 않아도 됐을 현금인출기(ATM) 수수료나 할인 기간을 놓쳐 제값을 주고 상품을 구입했을 경우를 가리킨다. 또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쓰는 ‘쓸쓸비용’이라는 용어도 있다.
▲금턴 = ‘금(金)턴’은 말 그대로 금처럼 소중한 인턴이라는 의미다. 정규직 전환이 약속돼있거나 전환율이 높은 인턴 자리를 구직자들이 금턴이라고 부르는 것. 인맥이 없으면 갈 수 없는 양질의 인턴자리를 뜻하는 ‘금턴’과 반대되는 말로 허드렛일이나 단순 노동만 반복하는 ‘흙턴’도 있다.
▲궁예질 = 후삼국시대 태봉의 왕 궁예의 치세 말년에 그가 정적들을 도륙할 때 쓰던 대표적 명분인 관심법을 비꼬며 만들어진 신조어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서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주로 넷상에서 타 유저 또는 유명인의 속내를 지레 짐작하며 뭔가를 제멋대로 단정짓는 유형의 선동꾼을 비꼬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어이쿠 궁예 납셨네’ 등의 바리에이션도 있다.
나만 몰라?
신조어는 근래에 들어서만 생긴 것은 아니다. 매 세대마다 새로운 신조어가 생겨나고 기성세대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반복된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점점 더 활발해지면서 각종 편의나 재미 등을 위해서 신조어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나고 난해해지고 있다. 이제는 기성세대들도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신조어 공부를 해야 할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